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 Apr 03. 2023

공무원 되자마자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시리즈 전편 편하게 보기


왜 이곳에 왔나요?


공무원. 할 게 없었어요. 이것 말고는. 2년 공부하고 합격. 2008년에 처음 면사무소로 출근했어요. 그땐 대학에서 한과에 50명이 있다면 45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정도였죠. 


여러분은 어쩌다가 공무원에 들어왔나요. 제가 입사할 때나 지금이나 초임 월급이 말도 안 되게 적은 건 변함이 없어요. 그 대신 물가가 더 올랐죠. 급여 상승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지금 초임 월급으로 어쩌면 연애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겠네요. 예전엔 경기가 호황일 땐 은행으로 대학 졸업생들이 몰리고, 경기가 불황이면 공무원으로 몰렸어요. 지금은 경기가 불황이고, 공무원 채용 규모를 줄이는데도 공무원 임용 시험 경쟁률이 낮아지고 있는 어리둥절한 상황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공무원에 들어오셨나요? 


돈. 저는 돈 때문이었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당시 월급으로 120~130만 원을 받았어요. 주변에선 월급이 적다고들 했죠. 저는 매월 정기적으로 그 정도 돈이 들어오는 것이 꽤 괜찮았어요. 육체노동을 하시는 아버지가 벌어오시는 수입은 들쭉날쭉했고, 그 수입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가정에서 살았으니까요. 대학생 때 우체국에서 1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7급 공무원에게 IMF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 월급은 삭감되었지만 그래도 월급이 나왔다는 그 말도 저에게는 크게 작용했고요. 저는 그런 급여의 안정성, 즉 경험해 본 적 없는 삶의 안정성이 필요했어요. 


공무원 사직이라는 새 일상


공무원에 열풍이 불었던 건 이렇게 IMF가 큰 몫을 했겠죠. 비리 같은 큰 사건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잘리지 않는 직장. 동료가 퇴사하는 일은 일대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공무원 조직에서도 퇴사가 흔한 일이 되었어요. 퇴사해도 좋아요. 이직해도 좋아요. 창업도 좋죠. 바로 옮겨갈 일이 있고, 그곳에서 내 삶을 지속 할 수 있다면 퇴사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갈수록 생각지 못했던 직업이 생기고, SNS 운영만으로도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 시대잖아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도 요즘은 IT업체 같은 첨단 기업이 더 잘하는 것 같고요. 그들의 기술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례가 많지요. 


그럼에도. 이런 것을 다 알면서도. 공무원이 된 이유가 있을 것에요.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해졌든 어쨌든, 내 삶의 시간을 투입해 공무원이 되었을 거고요. 그런 직장을 퇴사할 때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저 못된 상사나 조직 문화 때문에,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같은 내가 아닌 남 때문인 이유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두 가지가 공무원 조직의 가장 큰 문제에요. 


퇴사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온전히 내 삶을 중심에 둔 결정이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요. 저도 늘 조기 은퇴를 꿈꾸지만, 아직 다니는 것은 조기 은퇴를 위한 삶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내 삶을 중심에 둔 퇴직이 아니라 그저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네요. 


당신의 목적지는?


자. 여러분은 왜 공무원에 들어오셨나요. 제가 공무원으로 살면서 본 공직자들이 직장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네 가지에요. 돈(편한 월급), 승진(명예), 관계(모임), 공헌(가치). 출근해서 일하고 월급 받는 공무원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요. 진부한 이야기지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길을 가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건 흥미진진한 모험이 아니라 단순 경로 이탈이죠. 


이런 거죠. 우리가 출근하면 삼 일에 한 번씩은 들을 수 있는 사내 안내방송이 있죠. “저 자식들 나랑 동긴데 승진하는데, 왜 나만 승진이 안 돼.”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물론 정말 억울한 예도 있어요. 말도 안 되게 승진이 안 된 경우를 저도 공직생활 하면서 여러 번 봤어요. 하지만 어떤가요. 직장동료가 믹스커피 원샷하면서 저 이야기를 할 때 속으로 단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사례는 없으신가요? ‘뭐야, 저렇게 생활하면서 승진을 바라고 있었던 거야?’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 동료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볼 때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직장생활도 원만하지 않은 거요? 


아니요. 그런 잘못이 아니에요. 다만 그는 그 자신의 직장 목표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뿐이죠. 그게 승진인지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편한 자리에 가서 출퇴근하는 것이 목적인지. 내 목적지가 다른 회사나 창업이라면 괜찮아요, 좋아요. 목적지를 다시 설정하면 되니까요. 그건 흥미진진한 모험이에요. 하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승진을 목적지로 정하고 편한 월급을 추구하고 있다면 방황할 수밖에 없어요. 경로 이탈이에요. 목적지만 명확해도 우리는 제대로 갈 수 있어요. 


당신의 공직생활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물론 일을 안 하면서 승진도 빨리하는 치트키를 쓰는 사람도 더러 있답니다.)





사진: Unsplash의 José Martín Ramírez Carrasco  

이전 01화 공무원 1%, 12만 꿈을 조롱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