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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l 26. 2023

존재가 죄송한 공무원 ... 그래도 이땐 사과하지 마라

공무원, 사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껜 죄송하다고 하자. 몇천 원쯤은 그냥 내드리자. 공무원 이전에 사람이니까.”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시리즈 전편 편하게 보기


사례1

존재 자체가 송구한 존재 ... 공무원     


사내 메일 작성 중. 동료가 내 모니터 봤다. 한마디 던진다. “아니, 뭐가 그렇게 맨날 미안한데.” 메일 시작, 이랬다. ‘주사님, 죄송한데 … ’.     


간단한 업무 질의에도, 죄송하다는 말이 습관이 됐다.     


공무원 인기가 아직 좋던 때. 딱 10년 전. 그때 이야기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신문에서 공무원 비난이 심했다. 직업을 밝히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많은 공무원이 주눅 들었다. 송구함은 기본 태도가 됐다.     


지금은 공무원 불쌍하다는 여론이 많다. 신입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처지니. 그 덕인지 비난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사례2

차관님죄송합니다.     


그 시절. 내 근무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 AI가 터졌다. 내가 읍사무소(도시로 치면 동사무소) 축산업무 담당자였다.     


내가 근무한 지역은, 축산이 주요 산업이었다. 내 업무 처리에 문젠 없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그런 중 시청직원의 연락. “농림부 차관님이 통화하고 싶어 하신데요.”

 

“차관님이, 저랑요?”


“네, 현장에 있는 담당자랑 꼭 직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데요.”     


AI가 어느 경로로 발생했는지 파악됐다. 책임소재도 명확해서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시골 8급 공무원의 차관님과 통화. 그 자체가 떨리는 일.     


휴대전화가 울렸다. 야근하느라 저녁 먹던 중. 조용한 곳으로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직원들이 묻는다. “뭐래? 뭐라고 했어?”     


“그냥 왠지 다 죄송하더라고요.” 내가 긴장할 걸 아신 건지, 원래 부드러운 분이신지. 차관님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물으셨다.     


내 답변 앞뒤로 추임새가 자동 삽입됐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신중히 생각해야 할 때     


위 두 경우엔 죄송하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인사치레거나 예의를 갖추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럼,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될 땐 언젤까? 법·제도적인 책임 소재가 걸려있을 때다.     


허가나 계약처럼 당신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업무를 볼 때. 무작정 당신 잘못이라며 다그치는 민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죄송하다 대신, ‘같이 한 번 다시 살펴보시죠.’ 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좋다.


이런 때 당황해서 무심코 튀어나온 당신의 ‘죄송하다.’ 한마디가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담당자가 자기도 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더라고.” 이렇게 된다.     


안타까운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때     


법이나 제도적으로 당신 잘못도 없고, 민원인을 도와줄 방법도 없을 때. 당신이 법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같이 확인하신 것처럼 제 권한으로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네요.” 


만약 상위기관을 통하거나, 다른 해결 방법이 있다면 안내까지 해주자.     


진솔하고 솔직한 태도.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말 한마디. 직장 생활 16년 정도 하면서, 생활에서 배운 게 있다.


그런 진심 담은 한마디가, 본인에게 좋은 일로 돌아온다.     


공무원 이전에

사람이다.     


그럼, 죄송하다고 해야할 땐 언제일까?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면사무소에 서류 떼러 오신 할머니가 5만 원을 내자, 공무원이 잔돈 없다며 돌려보냈다는 사건.


업무 보는 측에서 당연히 잔돈을 준비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그냥 그 문제는 둘째치고.


이건 태도의 문제다. 시골은 버스를 한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어르신을 그런 이유로 오랜시간 왔다 갔다 하시게 하면 안된다.


세계일보 기사 : https://m.segye.com/view/20201127516139     


이 사건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인터넷 신문에선 실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진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만약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떨까?


민원이 쭉 밀렸는데. 어르신이 “아유, 왜 이렇게 내 것만 늦게 처리해줘.” 그러신다면.


그냥 죄송하다고 하자.


“아이구. 어르신. 이게 늦게 할라고 한 게 아닌데. 어뜩한데, 순서대로 하다보니까 그러네. 빨리 해드리께요. 쫌만 기다리셔요. 이거 죄송해서 어쩐댜.”


몇천 원쯤은 그냥 내드리자. 


“어머니. 이거 어디 가서 제가 내드렸다고 말씀하시면 안 돼. 큰일 나. 저 돈 읍써. 아무나 다 와서 내달라고 하면 저 여기 못 대녀.” 이러면서.     


뭐 법적으로 얼마나 문제 될 일이 있겠는가. 공무원 이전에 사람됨을 잊지 말자.




Tima Miroshnichenk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91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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