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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l 20. 2023

사람 죽였다는 민원인이, 내게 고맙다고 한 이유.

할 수 있는 건,

듣는 것뿐.     


“이거 문제가 많아. 나 가만히 안 있어. 내가 서울에서 사람 죽이고 귀향 온 사람인데. 사람 하나 더 못 죽일 거 같아!”     


민원인이다. 일자리에서 떨어졌다. 욕하고 소리친다. 욕 섞인 이야기가 한참 계속된다. 나는 그저 듣는다. 잠깐 말이 끊어진다.     


“제가 잠깐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한 번 해봐.”     


“저한테 욕하시는 건 괜찮은데, 지금 제 뒤로 보시면 사무실에 어린 여성 직원들이 많아요. 이렇게 크게 소리치시면 일하는 곳인데, 불안해할 수 있어요.


저랑 밖에 나가서 따로 이야기하시는 게 어떨까요? 저에게 욕하셔도 되는데, 제가 그거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아니 우리가 계장한테 욕하는 게 아니고. 그래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공무원이 잘 못 했으면 고쳐주면 된다. 간단한 사안이면 부서 관리자 선에서 조치. 어려우면 상급 기관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복잡한 사안이 잘 못 되었으면, 소송 같은 방법으로 고치면 된다.      


하지만 행정 일선이라 불리는 현장. 찾아오는 사람들도 소시민. 그들을 만나는 공무원도 같은 소시민이다.


그들의 일은 잘못될 일이 많지 않다. 공무원들도 그런 일에 부패하겠다고 목숨 걸지 않는다.   


소시민 사이의 민원은 보통 뭔갈 신청하고 떨어져서 발생한다. 일자리든, 보조금이든, 정부에서 주는 수당이든.


그런 민원은 대부분 해결이 불가능하다. 공무원도 보통은 절차를 잘 지켜서 일을 진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건,

사실대로 말하기     


어쩌겠는가. 절차는 어딘가 손에 닿지 않는 위에서 만들었을 테고. 나는 여기에 있고. 할 수 있는 건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  

  

“저희도 이런 일은 잘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절대 저희가 부정하게 일 처리 하지 않아요.”     


민원이 발생하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답이다. 괜히 잘 달래보겠다고 둘러대면? 그 말에 내가 묶여버릴 수 있다.     


일자리 선발은 어떤 절차로 진행됐는지. 선발은 몇 명 되었는지. 공개된 정보들을 말해줬다.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처럼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을 요구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솔직하게 규정상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더 궁금해하면 담당자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들. 상급자가 해 줄 수 있는 것들. 최고 결정권자가 판단해야만 고칠 수 있는 제도 등을 모두 이야기해 준다.     


정보 격차,

해소


민원인은 보통, 자신이 잘 모른다고 본인을 속이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 우리도 알지, 계장이 뭐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뭘 어떻게 했겠어.”     


보통 진심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걸 느끼면, 민원인도 수긍 한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다고, 가슴까지 전달되는 건 아니다. 억울한 마음이 어찌 한 번에 사그라들겠는가.     


결국. 감사실. 신문사. 시장 민원실. 시장실까지 계속 불려 다녔다.     


일관되게,

사실대로.     


만약 민원인과 첫 만남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그 뒤 감사, 신문사 취재 등에서 민원인에게 한 말과 다른 말을 하게 된다.     


그럼 민원인은 정말 공무원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턴 감당하기 힘든 민원이 된다. 일관되게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만약 혹시라도 정말 공무원인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 못 했다면, 바로 인정하는 게 좋다.


내가 해결 못 하면 상사가, 상사가 해결 못 하면 그 위 상사가 해결해 줄 수 있다. 창피한 건 길어야 하루다.


언제나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솔직함이다.     


사실,

어렵다.     


말이 쉽지, 사실 어렵다. 내가 한 때 근무했던 다른 부서에선, 내가 그 부서에 발령 받아 가기 전과 인사가 나서 떠난 후에 각각 칼 든 민원인이 찾아왔다.


민원인이 욕하면서 큰소리치면, 당황해서 얼어붙거나 욱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요즘은 이런 일이 잘 못 됐다는 인식이 일어나고 있어 다행이다. 보디캠을 하는 예도 있고, 악성 민원 대응 훈련도 한다.


잘 못 된 것은 고쳐나가고, 있는 자리에서 대응할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찾은 최적의 방법은 지금까지 말했듯 솔직함이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다 같은 소시민.     


나를 찾아온 그 민원은인 위에 말한 이런저런 채널로 민원을 제기했다. 시간이 흘렀다. 나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다른 부서로 가게 됐어요. 일자리를 얻으시면 좋을 텐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지금까지 알려드린 것 같은 내용밖에 없네요.”     


하루아침에 담당자가 바뀌면, 얼마나 또 황당할까 싶어 전화했다.    

 

다행히 내가 떠나고 다른 일자리에 붙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합격을 시켜준 것도 아니고, 인사가 나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그 민원인은 고맙다고 내가 근무하는 부서까지 찾아오셨다.     


“제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요. 그냥 이야기 하시는 거 들어드린 그것밖에 없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우리 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은. 그런 거 들어주는 거. 그게 고맙지, 뭐”     


소시민 小市民
[명사] 사회 일반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사진: UnsplashVolodymyr Hryshc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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