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 Aug 30. 2022

다들 10억씩은 있는 거야?

마흔셋에 첫 제태크

☞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시리즈 전편 편하게 보기


2021년 연말. “윗집이 여기 집 팔고 세종시로 이사 간대.”


여기저기서 온통 아파트 이야기다. 그저 집 한 채. 이제 주택 담보 대출을 다 갚아가지만, 제태크는 10원도 모르는 그저 실거주자인 나는 낄 틈이 없다.     


아파트.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동료들은 내가 알기로 보통 거주하는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 집 가격이 올라서 이 오른 집을 팔고, 돈을 더 보태 비싼 아파트로 옮긴다. 다들 잘했다고 훌륭한 제태크라고 한다. 모두 그 행동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번 넓은 집 좋은 주거 환경으로 옮긴 사람이 그 집 가격이 오르면 비싼 값에 팔고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까? 작은 평수나 이사하기 전의 주거 환경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 내가 제태크를 몰라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집 한 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어요? 집값 오르면 오히려 재산세만 오르지 않아요?”라고 물어도 다들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딱히 그게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건지 명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동산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거주하는 집을 제외하고 추가로 집이 있어야 이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나는 투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고 아는 게 없으니 더 대화에도 끼지 못했다.     


지방인 이곳에서 커피타임 때면 다들 억, 억! 돈이 아주 쉬워진 것 같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다들 몇억씩 가지고 있나 보다. 1억은 우습고 10억씩은 다들 가진 것 같다.      


일 년에 책을 50권에서 80권 정도 읽는다. 대부분 인문, 철학책들. 경제 서적은 십이 년 전 결혼할 때 통장관리 책을 본 후로 인연이 없다. 그 책에서는 통장관리법과 투자법을 알려줬다. 그렇지만 잘 모르겠고 사회 초년생이여 투자할 돈도 없다고 생각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그래도 통장관리법이라도 잘 익혀 같은 급여를 받는 동료들보다 빨리 대출을 갚으며, 신용카드 쓰지 않고 살아온 것만도 다행이다.     


아파트 대출금을 빨리 갚았지만, 대출을 다 갚을 즈음 아내가 휴직했다. 혼자 버는 박봉이지만 대출이 없고, 신용카드 쓰지 않고 살아와서 다행히 생활하며 빚을 지지는 않았다. 작은 집에 살 때 둘째가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대출을 받고 집을 샀다. 이제 한참은 집을 옮길 필요가 없고, 아내도 복직했다. 결혼 때처럼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다시 공부가 필요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할 리가 있나. 차일피일 공부는 미뤄졌다. 갚을 대출이 없으니, 모이는 돈을 쓰게 됐다. 그러다 갑자기 직장 생활 동안 평생 만나기 힘든 10개월 장기교육에 선발됐다. 게다가 코로나 덕분에 당분간 재택 교육. 그래서 꿈에만 그리던 제주도 두 달 살기를 했다. 돈이 빠듯하겠지만, 승진 전까지 고생에 대한 보상이자 평생 없을 기회라며 아내도 응원해줬다. 그러다 보니 재정 계획을 살피지 못한 채 몇 개월이 흘렀다.   

  

우연히 책을 리뷰하는 계정에서 『돈의 속성』을 호평하는 글을 보고,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이런 제태크 냄새가 나는 책을 혐오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데, 왜 다들 돈, 돈 하면 속물이라 할까? 나도 그랬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데. 리뷰를 쓰신 분이 평소 좋은 책을 리뷰해 주는 분이어서 한 번 얼마나 좋은지 읽어 보자 싶었다.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살았던지. 충격이었다. 돈 이야기만 할 것 같지만, 내가 나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녀에게 늘 해주던 생활 속 철학의 말들이 그곳에 있었다. 다만 나는 책에서 다루는 재정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 못 하고 살아왔다. 은퇴 후의 일은 아예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나는 자랄 때부터 빚과 가난의 무서움을 알고 자랐다. 부모님이 결혼할 때 아내에게 내가 주식을 못 하도록 꼭 말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내가 주식 할 사람이 아닌걸 아시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 거 보면 부모님도 투자나 빚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런 인식 덕에 그렇게 인색하거나 초라한 삶을 살지 않고도 잘 아끼고 빚을 잘 갚으며 살았다. 빚은 주택담보대출 말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빚과 투자를 무서워했으니, 돈을 그대로 모으고 갚을 뿐이었다. 경영학부를 졸업했음에도 거기에 물가상승률을 계산해 넣을 생각을 못 했으니, 내 무지의 깊이는 꽤 깊었다.     


『돈의 속성』을 읽고 나의 무지를 처절히 깨달았다. 우선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거 같았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쉽게 도움이 될 것 같아 『EBS 자본주의』를 읽었다. 세계적 침체에도 혼자 돈을 벌었다는 투자자 ‘레이 달리오’가 자본의 500년 역사를 설명하는 『변화하는 세계질서』도 읽었다. 이 책들을 읽으며 받은 충격은 그야말로 공포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자본주의는 빚지는 사람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물가는 늘 오를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의 움직이는 큰 힘은 금리라는 것 등. 이 뒤로도 여러 권의 경제 투자 서적을 읽었다.  


내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 정도로 잘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느껴졌다.  

   

인상 깊은 책 중 존 리의 『부자 되기 습관』이 있다. 유튜브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나는 주변에서 하도 존 리 존 리 해서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도서관 경제 서적 칸을 둘러보다 존 리가 보이길래, 그래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읽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빌려왔다.     


그중 인상 깊은 내용은 대한민국에 금융자산을 10억 이상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는 내용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코인으로 돈을 벌었네, 부동산이 올라서 몇억 벌었네, 주식이 터졌네. 이런 말들을 하도 들어서 정말 다들 10억씩은 있는 줄 알았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보면 대한민국에서 금융자산 10억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0.76%라고 한다(2021년 11월). 투자를 안 하는 나만 바보 같은 느낌도 들지만,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되겠지 했었는데. 다들 뭐 사실 별거 없구만!     


합리적인 흐름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다들 별거 없으니 나도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보자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게 됐다. 사십 대가 됐는데도 뭔가 늘 새로워.         

  





표지 사진 : Photo by Annie Spratt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