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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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메일 작성 중. 동료가 내 모니터 봤다. 한마디 던진다. “아니, 뭐가 그렇게 맨날 미안한데.” 메일 시작, 이랬다. ‘주사님, 죄송한데 … ’.
간단한 업무 질의에도, 죄송하다는 말이 습관이 됐다.
공무원 인기가 아직 좋던 때. 딱 10년 전. 그때 이야기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신문에서 공무원 비난이 심했다. 직업을 밝히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많은 공무원이 주눅 들었다. 송구함은 기본 태도가 됐다.
지금은 공무원 불쌍하다는 여론이 많다. 신입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처지니. 그 덕인지 비난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 시절. 내 근무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 AI가 터졌다. 내가 읍사무소(도시로 치면 동사무소) 축산업무 담당자였다.
내가 근무한 지역은, 축산이 주요 산업이었다. 내 업무 처리에 문젠 없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그런 중 시청직원의 연락. “농림부 차관님이 통화하고 싶어 하신데요.”
“차관님이, 저랑요?”
“네, 현장에 있는 담당자랑 꼭 직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데요.”
AI가 어느 경로로 발생했는지 파악됐다. 책임소재도 명확해서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시골 8급 공무원의 차관님과 통화. 그 자체가 떨리는 일.
휴대전화가 울렸다. 야근하느라 저녁 먹던 중. 조용한 곳으로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직원들이 묻는다. “뭐래? 뭐라고 했어?”
“그냥 왠지 다 죄송하더라고요.” 내가 긴장할 걸 아신 건지, 원래 부드러운 분이신지. 차관님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물으셨다.
내 답변 앞뒤로 추임새가 자동 삽입됐다. “죄송합니다.”
위 두 경우엔 죄송하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인사치레거나 예의를 갖추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럼,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될 땐 언젤까? 법·제도적인 책임 소재가 걸려있을 때다.
허가나 계약처럼 당신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업무를 볼 때. 무작정 당신 잘못이라며 다그치는 민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죄송하다 대신, ‘같이 한 번 다시 살펴보시죠.’ 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좋다.
이런 때 당황해서 무심코 튀어나온 당신의 ‘죄송하다.’ 한마디가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담당자가 자기도 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더라고.” 이렇게 된다.
법이나 제도적으로 당신 잘못도 없고, 민원인을 도와줄 방법도 없을 때. 당신이 법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같이 확인하신 것처럼 제 권한으로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네요.”
만약 상위기관을 통하거나, 다른 해결 방법이 있다면 안내까지 해주자.
진솔하고 솔직한 태도.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말 한마디. 직장 생활 16년 정도 하면서, 생활에서 배운 게 있다.
그런 진심 담은 한마디가, 본인에게 좋은 일로 돌아온다.
그럼, 죄송하다고 해야할 땐 언제일까?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면사무소에 서류 떼러 오신 할머니가 5만 원을 내자, 공무원이 잔돈 없다며 돌려보냈다는 사건.
업무 보는 측에서 당연히 잔돈을 준비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그냥 그 문제는 둘째치고.
이건 태도의 문제다. 시골은 버스를 한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어르신을 그런 이유로 오랜시간 왔다 갔다 하시게 하면 안된다.
세계일보 기사 : https://m.segye.com/view/20201127516139
이 사건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인터넷 신문에선 실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진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만약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떨까?
민원이 쭉 밀렸는데. 어르신이 “아유, 왜 이렇게 내 것만 늦게 처리해줘.” 그러신다면.
그냥 죄송하다고 하자.
“아이구. 어르신. 이게 늦게 할라고 한 게 아닌데. 어뜩한데, 순서대로 하다보니까 그러네. 빨리 해드리께요. 쫌만 기다리셔요. 이거 죄송해서 어쩐댜.”
몇천 원쯤은 그냥 내드리자.
“어머니. 이거 어디 가서 제가 내드렸다고 말씀하시면 안 돼. 큰일 나. 저 돈 읍써. 아무나 다 와서 내달라고 하면 저 여기 못 대녀.” 이러면서.
뭐 법적으로 얼마나 문제 될 일이 있겠는가. 공무원 이전에 사람됨을 잊지 말자.
Tima Miroshnichenk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912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