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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15. 2023

기록하지 않는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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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조직엔 업무 종류가 많습니다. 업무가 세분되고요. 기업은 조직이 커도 특정 목표를 향해갑니다. 토스처럼 은행 이용 고객의 시간 낭비를 줄여주겠다. 애플처럼 어떤 제품을 발표해도 누구나 ‘아, 이건 애플 제품이구나’ 하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공공기관은 시민 행복, 삶의 질 향상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가집니다. 많은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당선되면, 기업 유치로 경제도시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렇다고 사기업처럼 그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일이 많다는 게 아닙니다. 시민 삶 전체를 다룹니다. 그러니 업무 종류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시청에 천 명이 근무하면, 같은 일 하는 사람은 부서별 경리 업무 담당자나 읍면동사무소에 있는 증명서 발급 담당자들 정도만 있을 겁니다.     


한 사람이 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은 보통 2년입니다. 2년이면 다시 다른 업무를 맡게 됩니다. 많은 신규 공무원분들이 무서워합니다. 입사해서 일 배운 것도 힘든데, 2년 뒤면 또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저만 해도 등본도 뗐다가, 관광업무로 해외 출장도 갔다가, 축산 업무도 보다가, 500페이지가 넘는 책 쓰는 일을 하다가, 시장님 비서도 했다가. 이런 식입니다.     


일의 진폭 자체가 넓습니다. 본인 업무가 아니라 계속 닥칠 이런 일이 무서워 그만둔 신규 공무원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 사례를 종종 신문에서 접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지요.     


업무 상황이 이러니 공무원 교육원에 업무별 맞춤 교육이 존재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임자의 자세한 업무 기록과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와도 업무가 제대로 될 수 있죠. 하지만 공무원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뭔가 자세히 기록하는 건 귀찮으니까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죠. 또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일을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괜히 자세히 해놨다가 꼬투리 잡힐까 걱정입니다.


일을 잘하면 어떨까요? 내 머릿속에 다 있는데 굳이 귀찮게 적을 필요 있나? 싶습니다.


또 이런 분들도 있죠. 내가 와서 이 업무를 이렇게 나만의 노하우로 성과를 냈는데, 다음 사람에게 주기 싫다. 가장 심하면 이겁니다. 이 일이 죽도록 싫은데, 어차피 2년만 버티면 그땐 다른 업무다. 기록 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이런 실상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신규직원들은 특히 어려움을 토로하고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충청남도에서 이를 개선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역사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무원들이 매일 쓰는 문서 시스템에도 지식, 업무 위키 메뉴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제론 업무 위키는 거의 텅 비어있고 지식에는 ppt 서식이나 한글 단축키 정보 같은 것들만 올라와 있습니다.


업무 위키 같은 메뉴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사실은 문제와 해답을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거기에 사람들이 기록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사기업엔 지식 기반 시스템이 있고, 활성화되어있기도 한 곳이 있다고 얼핏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입사 후에 교육을 철저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접했습니다.


공무원은 여러 가지 사유로 2년 뒤면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대민업무를 상대하는 특성상 비리가 발생할 소지도 있습니다. 관리자로 승진하기 위해선 다양한 업무를 알아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간혹 해당 분야 전문가가 되어 몇 년씩 일하는 예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공직에서 7~8년 차가 되면 어떤 일이든 사실 모양만 다르고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 세부적으로는 일의 특성이 다르기에 메뉴얼이나 전임자의 좋은 기록물이 없으면 업무를 능숙하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어렵게 들어온 공무원. 선배들이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그만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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