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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금 일을 잘 하면 그게 이상한거야
공무원의 가장 큰 착각. 나는 일을 잘한다. 어떤가요? 공무원이 아닌 본들이 보기엔 우스우시죠. 복지부동, 무사안일로 대표되는 직종의 사람들이 일을 논하다니요. 어디나 그렇겠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요. 그 안에서 상위와 하위가 나뉘니까요. 공무원들 역시 주된 담화 주제는 일이죠. 저 직원 일 못 한다. 저 팀장 일 못 한다. 저 과장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과장이 돼서 직원들이 피곤하다. 열띤 논의가 매일 곳곳에서 이뤄집니다.
이 일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처음부터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에요.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은 본인들이 왜 이렇게 일을 못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제게 업무를 물어보러 와서 “저는 일을 너무 못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있을 때면, 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지금 일을 잘하면 그게 이상한 거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익숙해 지는 것
왜 고인 물 공무원은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신규 공무원이 자신이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까요. 바로 익숙해짐의 문제니까요. 물론 성과에서 큰 건을 만들어 내는 일도 있어요. 공무원이 아닌 분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 가실 수 있지만요. 시장, 군수, 구청장을 시민들이 투표로 뽑는 지방자치가 정착되면서 상황이 좀 변했어요. 정치인들은 성과를 만들어 내야 재선이 유리해지고, 그래서 업무에서 성과를 만들어 낸 직원들이 연공 서열을 파괴하고 승진을 빨리하는 예도 생겨나고 있어요. 그래도 근본은 공무원이죠. 성과가 낮다고 해서 잘리지 않죠. 일을 못 해도 특출난 성과를 못 내도 어느 조직에서 계속 내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누구나 나는 일 잘한다는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
조직에서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잘 할 수 있겠나?
군대에 입대했을 때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던 게 기억나요. 어깨에 노란색 작은 띠까지 달아줬죠. 그곳에선 걷는 법, 인사하는 법, 밥을 먹는 법, 옷 갈아입는 법, 자는 법까지도 새로 배워야 했어요. 스무 살 넘은 바보가 되는 거죠. 하지만 군대에서도, 아무리 강제로 끌려간 일반 병사 생활이라도,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등병과 병장의 차이는 결국 익숙함의 차이일 뿐이죠. 만약 여러분이 공무원에 입사했는데 무언가를 못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정상입니다. 내가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동기 중에서 아주 특출난 인재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직 공무원이라면 아실 거예요. 아무도 일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이 일이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건 어느 누구도 그리고 조직의 시스템 조차도 당신에게 그 일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언뜻 설마 그럴 리가?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공무원 조직엔 일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없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