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쓰다/20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프신지 만 3년째만이다. 어머니가 아프시면서부터 붕괴된 우리 가정이 드디어 회복되는 것일까? 내 사정을 다 아는 친구와 지인들은 이제 가정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말을 다 한 마디씩 한다. 시어머니가 주시는 마지막 선물일까?
초상 내내 어머니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한숨이 나왔다. 어머니 아들 좀 어떻게 해보시라는 소리도 나온다. 어머니와 외모도 성격도 똑같은 당신 아들 좀 부탁드린다 소리가 자꾸만 나온다.
마지막까지 당신이 머물고 싶고 믿고 싶었던 믿음의 자리에는 근처도 못 가시고 아버님 뜻대로 장례가 치러졌다. 은연중에 제사 이야기까지 오고 가며 말이다.
첫 번째로 제사를 거부한 건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시어 제사를 더 이상 지낼 수 없겠다 선언하시고 나서다. 자연히 장손인 남편에게 제사 이야기를 하셨지만 애초부터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결혼을 한 것이기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상만 차리면 된다는 남편에 말에도 절대 노! 를 고수하며 결국에는 작은댁으로 제사가 물려졌다. 돌아가신 지 이제 삼일째인데 삼오제부터 시작해서 49구제까지 벌써 이야기하시는 아버님, 다행히라면 우리에게 절을 강요하진 않으신다. 강요해도 안 했을 테지만 말이다. 어머니 초상 내 절을 하지 않은 남편에게 내심 고맙기도 하고 최소한의 믿음은 있구나 싶었다.
친정도 주변도 대부분 기독교인이라 교회장이 아닌 장례는 처음이라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며 갑자기 아이고아이고를 하라고 하시는 말에 깜짝 놀라 아이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오가는 장례만 치러보다 아이고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다르구나...
남편은 시댁 식구들이 하는 모든 것에 토 하나 달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번 장례도 그렇고 삼우제며 49제까지 자기 자리는 지킬 것이다. 물론 절은 안 한다는 최소한의 믿음만 가지고 말이다.
남편이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을 거라는 말에 내심 어머니가 진짜 천국에 가셨을까? 생각이 들며 제발 천국 끝자리라도 거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영적으로 부정적 기운이 가득한 시댁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가 마음의 평안을 얻을 곳이 하나님이라는 건 어머니가 믿음이 신실하지 않으셨더라도 느끼신 듯하다. 큰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며 회심을 한 남동생을 따라 교회에 발걸음을 하셨고 개척 교회를 하는 남동생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 어머니다. 그리고 그 아들인 남편 역시 어머니 남동생인 삼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쉽게도 코로나 때 삼촌이 돌아가시고 혹여나 충격을 받으실까 어머니는 남동생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한참 뒤에야 사망 사실을 알게 되셨다. 하필 삼촌 장례 때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서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남편에게는 가장 속상한 일이 되었다. 남편에게 삼촌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머니나 남편이나 선하디 선한 사람이기에 아버님과 그 주변 악한 기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주님은 품어주시며 내 사랑하는 딸, 아들이라며 주님의 자녀들을 붙여 주시며 지키신 것이다. 남편을 만난 나 역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가장 큰 뜻임을 안다. 물론 나에게 십자가와도 같은 뜻이지만 말이다.
결혼하고 묘하게 알 수 없는 느낌에 시댁을 위한 영적 기도를 끊임없이 나왔다. 그 이유를 결혼 생활 15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고 말이다. 그러다 3년 전 어머니가 하반신이 마비되시며 몸져눕게 되시고 간병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남편은 완전 시댁 쪽으로 돌아섰다. 그저 효자라서 그러는 줄 알고 그저 며느리 도리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까지 했는데 결국에는 남편은 시댁에 꼭두각시 노릇만 한 꼴이었다.
작년 아버님과 시누에 대한 실체를 알고 난 후 남편에게 시댁과 연을 끊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시댁에 관한 그 어느 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남편만 어머니 돌본다는 이유로 주말마다 시댁과 우리 집을 오갈 뿐이었다. 일상처럼 그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시누네 가정도 우리 가정도 붕괴위기를 겪었고 서로 미움과 원망으로 외면하는 동안 어머니는 혼자 아픔을 감내하셨고 결국에는 곡기를 끊어내신지 얼마 안 되어 응급실에 가신지 몇 시간 도 채 되지 않아 눈을 감으셨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애달픈 아들 얼굴을 보신 후에...
우리 사정을 다 아는 친구들이 남편이 이제는 가정으로 온전히 돌아올 거니 시댁에서 받지 못한 인정과 대우를 해주라 한다. 보고만 있어도 속 터지고 답답한 그 사람을 결국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 것일 텐데 사람에 의지가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로 그 사람을 품을 수만 있음을 고백한다. 결혼 16년이 지나도 갈수록 더 이해가 되지 않고 차라리 포기하고 싶은 내 마음으로는 남편을 절대 품을 수 없다. 결혼 생활이 끝나는 순간까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만이 내 결혼 생활은 유지 가능하다.
인간적인 애씀은 내 속이 썩고 썩어 남는 건 화병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인내하는 것은 화병이 아닌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평안의 때를 맞지 못하고 가신 어머니, 여러 번의 수술로 타고 남은 뼈에 철심만 가득 박혀있던 어머니, 불쌍하다 여기시어 남동생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신 어머니가 분명 천국에 입성하셨으리라 믿는다. 아픔 없는 그곳에서 남편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