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쓰다/22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찬송가 310장>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상실의 아픔은 남편이 더하겠지만 잔상이 떠오르며 마음이 울컥해지는 건 어머니와 함께 한 시절 속에 묵혀진 내 감정들이 되살아나서일까?
시댁과 관련된 일은 털어버린다고 털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먼지가 더 붙는 듯하다. 어제 남편과 이야기 후 내 속에 들끓어 오르는 감정에 미움이 올라온다. 여전히 애도해야 할 상처가 많은 거 같다. 15년이라는 세월 속에 담긴 혼자 속으로 삭인 시댁과 남편에 대한 묵은 감정들이 말이다.
그 시절 아이들 키우며 사느라 모르고 지났지만 되려 아이들 크고 편해지니 그때의 모르고 지나버린 힘듦이 되살아난다. 모르고 지난 힘듦은 억울함이고 애잔함이다. 어머니가 가여워 우는지 어머니가 살아계신 시댁이라는 배경 속에 내가 가여운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두 가지 전부일수도...
신혼 때부터 남편을 비롯한 시댁가족과 동떨어진다 느낀 건 단순히 그들이 날 배려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철저한 내 착각이었고 그들은 내가 아이셋을 낳아 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만의 성을 허물지 않았다. 그 성 주변을 기웃하는 외딴섬이 되고야 만 나와 아이셋, 남편이 우리에게 기거하지 않음이 가장 큰 아픔일 거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남편이 그동안 시댁을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과연 남편의 심적 거처가 어디로 향할지 사뭇 궁금하다. 주변에서는 다들 이제 가정으로 돌아올 거라 했지만 나는 모르겠다.
남편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으라고 하시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억울함이 가득하고 앞으로 남편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기에 내가 나를 복종시키면서까지 남편을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장례 이후 알 수 없는 감정의 동요가 생각보다 크다. 어떤 마음인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눈물만 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도와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 대한 기대없음일까?
오늘은 그저 내 마음을 만져주시는 주님의 찬양을 들으며 애도의 눈물을 쏟아내련다. 도대체 누굴 위한 애도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님이 가신 자리에 분명 어떠한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