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맛은 전 세계가 똑같다.
내가 A형 독감에서 회복됨과 동시에 세계여행을 가네 마네로 썰전이 시작되었다.
예랑이는 내가 원치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엄청나게 나를 열심히 설득했다.
처음으로 예랑이가 영업사원을 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로 내가 안 되는 이유를 말하면 예랑이가 그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흡사 톱으로 박을 썰듯이 주거니 받거니 논리를 겨누며 자기 쪽으로 좀 더 끌어당기려고 했다.
박 속에 담길 금은보화는 곧 이긴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예비부부 박 터지는 썰전
세계 여행을 가? 말어?
#관전 포인트 일.
나
당연히 돈 때문에 안돼.
일단, 우리 결제 다 해 놓은 신행. 몰디브라고.
여기도 가라앉고 있다고 해서 가기로 한 거잖아. 지금 안 가면 언제가?
그리고 내가 비행기 티켓 어떻게 샀는지 알지?
제일 저렴할 때 간다고 신행도 결혼식 하고 일주일 뒤에 가기로 했잖아.
다른 건 몰라도 몰디브만큼은 절대 취소 못해.
그리고 우리 둘 다 쉬게 되면 기회비용으로 들어오던 월급만큼
매달 마이너스를 깔고 있는 거야.
반대로 우리가 일상생활하면서 합친 월급만큼의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봐.
생활비 쪼개 모아서 그 금액을 만드는 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
그리고 고통스럽지. 차라리 여행 가서 쓸 돈을 한국에서 쓰자.
삶의 질이라도 올라가게.
예랑이
죽을 때를 생각해봐.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할거 같아?
'아. 이번 생애는 내가 빌딩을 2채 샀는데 3채 못 사서 아쉽다'
모 이런 생각이 들까? 아니면 가족들이 생각이 날까?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한 시간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지금부터 오늘 밤 12시까지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봐.
부동산 가서 집 계약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거야?
돈을 지금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꼭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
나
당장 있을 가까운 미래는 안 중요해? 앞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건 돈이야.
그래. 돈이 있다고 꼭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야. 다만 언제 생길지도 모를 위기에는 힘이 되지.
그리고 돈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란 것도 내가 일단 많아 봐야 할 수 있는 말이야.
우리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어.
예랑이
살아갈 날이 정말 많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가 죽을 때 가장 생각나는 게 통장 잔고는 절대 아닐 거야.
#관전 포인트 이.
나
우리 20대 아니고 30대 중반이야. 일찍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
지금 아기 낳아서 키우는 것도 난 솔직히 자신이 없어.
체력이 있을 때 하루라도 먼저 아기를 키우고 싶다고. 그리고 그게 아기한테도 좋고.
35살부터는 검사비도 늘어나는데 그게 내년이잖아.
돈도 돈인데 나 병원 가는 거 엄청 무서워하는 거 알지? 나도 생각해줘.
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출산은 일찍 할수록 좋은 거잖아.
예랑이
맞아. 일찍 낳을수록 좋은 거.
병원에서 검사가 늘어나긴 하지만 예방차원에서 하는 거라서
산모가 건강하면 괜찮아.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넌 건강체질이야.
우리가 아기를 키우게 되면 나중에 성인이 될 때까지는
좀처럼 둘만의 추억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지금 아니면 40대일 거라고.
여행도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젊었을 때 우리 둘이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추억도 많이 있으면 좋겠어서야. 우리를 위한 거야.
그럼 이 시간들이 앞으로 우리가 사는데 큰 힘이 될 거야.
만약 여행 중에 아기를 만나게 되면 바로 한국으로 들어오자.
#관전 포인트 삼.
나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새로운 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야.
그랬을 때 여행의 최적기는 20대야.
20대는 시작하는 단계니깐 모든 게 다 새로 쓰일 수 있어.
그렇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마음이나 몸이 굳는다는 건 크게 보면 똑같아.
30,40,50대 모두 20대처럼 여행할 수는 없잖아? 정도의 차이인 거지.
나도 30살 넘기고 나서부터는 체력이 떨어져서 많이 다니고 싶지 않아. 마음도 마찬가지야.
우리 둘 다 가고 싶은 곳들은 가봤잖아. 난 이제 어디를 가도 크게 새롭지가 않아.
예전에는 계란도 다 달라 보였지. 근데 계란이 나라가 다르다고 맛이 달라? 똑같잖아.
내가 급격히 나이가 든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게 나야. ( 말하고보니 어쩐지 서글펐다 )
예랑이
나도 동의해. 자연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굳는 것도 맞고
그걸 방어하는 것도 쉽지 않지.
우리도 이미 20대보다는 몸도 마음도 굳어버렸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 가자는 거야.
나중에 간다고 생각해봐.
60대의 여행과 30대의 여행이 같을 수 있을까?
절대 그건 아닐걸.
일단 체력에서부터 차이가 날 거야.
그래서 나도 내가 50,60대가 되면 여행 생각이 크게 안 날 거 같아.
젊었을 때 새로운 걸 느꼈고 그때는 쉬고 싶을 거 같아.
더 늦기 전에 가자. 우리는 지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
아니요.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대화는 세계여행에서 출발해서 삶에 대한 가치관까지 휩쓸며 3주간 이어졌다.
서로의 시각에 대해서 충분히 구석구석 이해를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결론이 없었다.
그래서 결론이 나지도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원함과 원치 않음이라는 프레임은 애초에 합쳐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것을 놓고 다르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다르니깐.
서로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을 움직일 한방이 필요했다.
예비부부라 그랬는지 우리는 확실한 이심 이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