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는 밀도가 있다.

우리 사진보다 음식 사진이 많아.

by 대수니

세계여행에 반대했던 내가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은 휴전 중일 때다. 돈도 절약하고 추억도 느껴볼 겸 식전영상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나는 홀로 사진을 한데 모아놓고 추억을 심사하고 있었다. 고르기 어려우면 어쩌지란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게 정리됐다.노하우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추억들이 참 쉬웠다.

먹는 것과 관련된 사진이 참 많았다.음식 사진이거나, 먹고 있거나, 빈 접시 거나, 식당 앞이거나...

하마터면 식전영상이 맛집 도장깨기가 될 뻔했다.


둘 다 얼굴이 정상적이면서 웃고 있는 사진들을 고르니 고작 40장 정도였다. 사진첩에 먹는 사진이 푸짐하게 담겨 있는 만큼 추억의 흔적들은 영양실조급이었다.


'우리 대체 만나서 먹기만 한 거야?'



4년 연애. 우리의 시간이 허세처럼 느껴졌다.

6개월을 일주일에 2번씩 보며 놀러도 다녀본 커플과

4년을 일주일에 한 번 보고 밥만 먹어본 커플 중

서로 더 깊은 시간을 보낸 건 어느 쪽일까?

기간이 깊이를 대신할 순 없다.


사실 나는 활동적인걸 좋아하지만 우리의 연애에는

늘 감사함이 컸다. 어쨌든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랑이는 토요일까지 근무를 했고,

평일에도 11시까지 근무하는 날이 반이었다.

그래서 주로 쉬는 일요일에 한 번만 보았다.

서로의 집이 그리 멀지 않은 1시간 거리였어서

중간 즈음 만나서 얼굴 보고 밥을 먹으며 충전을 했다.

그랬기에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일찌감치 단념했다.

피곤할 월요일 대신 쉬운 일요일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사진첩의 단조로움은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대충 생각해도 결혼한다고 이런 일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단념은 무기한 연장이 되어야만 했다.

아득한 목표는 사람을 포기하게 만든다.



세계여행 정말 한번 가볼까?


나의 관성은 반론을 제기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른 거 없어. 결혼한 친구들도 그랬잖아.

서로 바쁘면 주말에도 시간을 내야지 같이 밥 먹을 수 있다고.

우리만 꼭 그런 것도 아니잖아'


마음의 동요는 생겼지만 쉽사리 결정이 되진 않았다.

한동안 계속 나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이어지는 머뭇거림에 반대로 질문을 해 보았다.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이건 분명했다.


지금 계속 이렇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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