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의 필수조건 중 하나는 개별욕실이었다. 욕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집 안의 공간 중 유일하게 1인분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령 소파나 침대는 2인용을 위한 것이 많지만 세면대나 변기가 2개씩 있지는 않듯이 말이다. 욕실은 오로지 한 개인을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모 별거 있겠냐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 많기도 하다.
숙소를 찾아보면 욕실의 구조는 의외로 다양하다. 세면대만 거실에 있기도 했고, 변기와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기도 했다. 한쪽 벽면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샤워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TMI 형태도 있었다.
구조를 정한 뒤에는 후기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하수구 냄새는 나는지, 따뜻한 물은 잘 나오는지. 수압은 좋은지.
그중에서 가장 판별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방음이다. 방음에 대해서 후기가 별로 없거니와 주관적인 부분이라 실제로 써보기 전에는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리스 메테오라
그리스 메테오라에서였다.
아테네에서 1박 2일로 다녀온 근교 투어였는데, 날씨예보에 있는 온도보다 체감은 5도 정도 낮았다. 걸칠 것 하나 가져오지 않아 하루 종일 발발 떨면서 다닌 데다 막판에는 소나기까지 맞았다. 투어에 선택권 없이 포함된 숙소는 5성급 호텔이었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뜨끈뜨끈한 물로 몸을 지졌다. 화장실 안은 금세 김으로 뽀얘졌고 내 몸은 점점 시뻘게졌다. 달궈진 피부는 몸속도 녹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추위에 얼어붙었던 몸이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욕실을 가득 채운 수증기에 취한다. 수압은 또 어찌나 세던지 한국의 집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나른함에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덥다고 느껴질 즈음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남편은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나에게 잘 씻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며 온천이 따로 없으니
어서 샤워를 해 보라고 했다. 남편은 물끄러미 날 바라보더니 푸하하 하고 웃는다.
나 '내가 아줌마 같아 보였나?'
남편 "샤워하면서 모했어?"
나 웅? 샤워하면서 샤워했지?
나는 속으로 불안했다. 질문이 당연하다 싶으면 무언가 놓친 것이니깐.
남편 "모가 그렇게 좋아? 나 ???
남편은 진심으로 우러난 나의 감탄을 욕실 벽 너머로 본의 아니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연발했던 감탄사들을 말이다.
나너무 조오아, 너무 조오호아. 너... 무 조하!
난데없이 들려오는 감탄 연발에 남편은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찬물 샤워로 가둬둔 열기가 얼굴로 뿜어져 나왔다.
차라리 시원하다고 할걸.
나의 당황함에 남편은 한참을 웃었다.
"나 정말 샤워만 했거든!"
앞으로 욕실을 사용할 때는 공간이 분리된 것이지 차단이 된 것은 아니란 걸 잊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한 지붕 아래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나 공간은 없다는 것도. 소리는 작은 틈으로도 쉽게 빠져나가니깐 말이다. 2인분의 삶에 완벽한 프라이빗이란 없다.
PS. 이날 이후로 나는 숙소를 둘러볼 때 화장실에서 소리 테스트도 해 본다. 얼마나 잘 들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