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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육아서는 안녕하신가요?

이토록 현명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by 맵다 쓰다

"으에엥! 내 거야 내 거라고!"


큰 아이의 울음이 울려 퍼진다. 이건 '장난감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소리다.


'자아는 생겼고 논리는 안 생긴 18개월 둘째 vs 고집이 최고조에 다른 40개월 첫째' 자매의 격돌이다.

그놈의 콩순이가 뭔지.. 며칠을 뺏고 뺏기느라 내 정신이 뺏길 지경이다.


사놓은 지 일 년도 넘은 인형인데도 동생이 집어 들면 소유권을 주장한다.

차고 넘치게 많은 장난감 중에 왜 같은 것으로만 그러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 이건 어때? 와~이 토끼 너무 귀엽다~ "

하고 꼬드겨봐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 사준다 사줘!'며칠을 견디다가 나는 백기를 들었고 또 하나의 콩순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일 년 사이 콩순이는 조금 달라졌었는데, 옷에 그려진 그림이 토끼가 아니라 딸기라는 의상의 사소한 변경이 있었다.

이 작은 줄 알았던 차이는 2차 전쟁을 부를 만큼 엄청난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 뒤로도 제2의, 제3의 콩순이 같은 문제는 수도 없이 생겨났다.

장난감이라면 같은 것을 사주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게 그깟 콩순이가 아니라 바로 엄마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름대로는 치우침 없이 사랑과 관심을 쏟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달랐다.

저마다 조금 더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도 거절이나 결정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매 순간 현명한 결정을 해주고 거절하더라도 일관적인 훈육 태도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첫째가 아끼는 장난감을망가뜨리고 책을 찢는 둘째와의 격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자매 싸움의 판결이 나에게 돌아오면 중재도 해야한다. 속도가 다른 첫째나 둘째, 누구를 우선을 두고 육아를 해야 할지도 헷갈렸다.


날고긴다는 교육학 박사들의 육아서를 읽어봐도 아이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줘라. 각자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고 안 되는 것은 단호하게 훈육하라.

감흥 없는 글자들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건 나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되기 전에 정신줄을 놓을 것 같은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일찍 아이를 낳은 육아 고수 친구에게 sos를 날리기도 했고

존 가트맨 박사의 책에 눈물을 찍어가면서 나는 인격적 성숙한 엄마가 아니구나.. 자책과 반성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어디든 묻고 싶었다. 상황별 엄마의 대처능력을 알려주는 곳이 있다면 거금을 주고라도 가서 배워오고 싶었다.


"아.. 오은영 박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렇게 말이다.

나는 그 정답에 너무 얽매여있었던 것 같다.

'아. 이럴 때 공평하게 해줘야 하는데 이건 아이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이라고 했어!'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면서 설득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런 단계가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으니 매 순간이 거의 수학경시대회 느낌이었다.


문제집에 보면 기본개념, 이론 설명, 실전문제라는 게 있다.

아이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 기본개념이라면 여러 교육 자료와 육아서의 친절한 사례들은 이론 설명 같다.

넋 놓고 볼 때는 알겠는데 막상 연필을 집어 들고 문제와 나만 남으면 앞이 깜깜 해지는 기분이다.

맨 뒷장 해답지를 슬며시 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데 중요한 건 해답지가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늘에서 내려준 건 동아줄 같은 육아서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겐 썩은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았다.

죄지은 호랑이도 아닌데 왜 나를 미워하는 걸까.. 미움받은 아이가 삐뚤어지는 것처럼 옳은 말만 해대는 육아서가 지겨웠다.

너무 육아서처럼 하니까요. 제가 죽겠다고요!

매번 솔로몬 같은 판결을 못 내려서 미치겠고요.

이렇게 밖에 못하나 내가 싫어진다고요!


이렇게 내가 현명한 사람이기를 바랐던 적이 있을까?

적당히 하면 적당히 굴러가는 인생이었다. 크게 결정할 것 없는 비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배우고 길러졌다.그런데 갑자기 판단과 결정의 연속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어느 한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중책의 자리로 왔다.

그렇게 드러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너는 그 정도인 사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을 엄마의 시간으로 살아본 지금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자리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쉬웠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라는 걸 말이다.


인생에는 족집게 과외처럼 나올 문제만 알려줄 수 없다.

어떤 것이 나올지도 모르고 설사 안다해도 그 사이 나도, 아이도 달라질지 모른다.


현명한 엄마의 자리는 뚝 떨어지거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넘실대는 것에 몸을 맞기고 싸우기도, 물을 먹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면 파도를 즐기기도,때론 거쎈 파도에 몸을 낮춰야 하는 걸 아는 때가 오겠지..


그렇게 적응과 진화를 해 나가면서 바다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짜 현명함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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