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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26. 2024

재회

혼자가 아니다.

희유는 잠시 고민하다 정말 용인으로 향했다. 울고 싶었다. 울어야 했다. 희유가 생각해 낸 통곡할 만한 자리는 오빠의 납골당이었다. 오히려 타이어 교체로 러시아워를 지나 수월하게 목적지까지 올 수 있었다. 진짜 용인으로 와 버렸다. 


희유가 희성을 찾은 것은 근 오 년 만이다. 가족과 동행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해 왔다. 희유가 오빠를 만날 때는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다. 한 번도 맘껏 오빠를 보내지 못했다. 희유는 위로받을 위치가 아니었다.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다. 긴장 상태에서 장례를 치렀고 추모를 했다. 울지도 못한 채 집에 와서 뻗어 버렸다.


드디어 오빠를 독대했다. 사실 그곳엔 오빠가 없다는 생각에 납골당 방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독대하니 마음이 한없이 울렁거렸다.



'오빠를 추모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구나. 우리 오빠 잘 살았네.'


희성의 이름, 생애를 확인하자 설움이 복받쳤다. 


'왜케 짧게 산 거니. 골골거리는 사람은 나였지 오빠가 아니었잖아.'

  

희유는 미안했다. 오빠는 그렇게 살고 싶어 했었는데 자신은 그 삶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희유는 또 미안했다.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한다는 이유로 몇 년을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리웠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희유는 드디어 펑펑 울었다. 힘들다고. 오빠가 없는 세상이 너무 어렵다고 펑펑 울었다. 자기의 인생에서 오빠가 빠질 거라는 걸 희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희희, 왜 울어?”

“오빠?”

“그래, 나야. 왜 와서 울고 그래.”

“오빠? 어딨어? 안 보이는데?”

“안 보일 거야. 여기 있어.”

“미안해……. 여기 없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안 왔어. 미안해, 엉엉”

“나 여기 없지. 너 와서 울길래 뛰어 왔잖아.”

“나 보러 온 거야? 엉엉”

“네가 날 보러 온 거지.”

“오빠, 엉엉, 잘 지내는 거야? 이제 안 아파? 엉엉 어딨어? 보고 싶잖아, 엉엉”

“야, 그만 울어.”

“엉엉, 몰라 자꾸 눈물 나. 올 수 있으면서 왜 나 보러 안 왔어?”

“너 볼 정신없다, 야. 네가 날 보러 온 거라니까.”

“힘들어. 엉엉. 나 힘들어, 엉엉. 왜 먼저 갔어? 나 두고 가면 어떡해, 엉엉”

“이봐 희희. 내가 가고 싶어서 갔겠냐?”

“힘들다고, 엉엉. 진짜 힘들어. 힘들단 말야, 엉엉”

“박희유. 힘내. 잘하고 있으면서.”

“봤어? 나 잘하는 거? 보고 있어?”

“아니. 나 안 보고 살아. 죽어서까지 네 칭얼거림을 받아줄 수 없지.”

“나 안 본다고? 애들은? 언니는? 또 언니만 보는 거야?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한테도 나타났어? 엉엉”

“아니. 희희. 사람과 얘기하는 거 처음이야.”

“왜 왔어? 엉엉, 난 왜 보러 온 건데? 엉엉”

“보고 싶다고 힘들다고 우니까.”

“엄만 더 우셨을 텐데? 엉엉”

“엄마도 봤어. 말만 안 걸었을 뿐. 아마 엄마한테 말 걸었으면 난 거기 계속 있어야 했을걸.”

“나도 이제, 자주 올게.”

“아니, 오지 마. 너 와도 나 없어.”

“있잖아.”

“특별히. 너 울지 말라고 온 거지. 이제 안 와.”

“엉엉”

“울지 말라니까.”

“응. 흑. 아무튼 이제 자주 올게.”

“오지 마. 여기 너 심심하다고 막 오는 곳 아니야. 이제 그만 돌아가.”

“싫어. 더 얘기하자.”

“그만 가야지. 신이가 불안하겠어.”

“신이 이제 엄마 안 찾아.”

“늘 있으니까 안 찾지.”

“그런가. 나 잘 없는데.”

“그래도 존재하잖아. 그럼 됐지.”


희성의 목소리가 갑자기 쓸쓸해졌다. 아마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오빠, 미안해. 내가 애들 더 잘 챙길게.”

“아냐. 괜찮아. 그냥 널 위해서 살아.”

“날 위해서?”

“응. 널 최우선에 두고 살아. 부담 갖지 말고. 네가 좋을 때 가끔 아이들 만나 주고.”

“오빠, 괜찮아?”

“괜찮아. 윤이랑 진인 이진이가 잘 키우잖아. 애들 새아빠도 있고 엄마 아빠도 봐주시고. 넌 너나 잘 챙겨.”

“나……. 챙겨야지.”

“희유야,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마. 그냥 편하게 살아. 울지 말고 잘 살아.”

“그럼, 나 잘 살게, 로또 번호 좀 알려줄래? 드라마 보면 막 귀신이 알려주고 그러던데.”

“내가 귀신이냐?”

“아닌가?”

“하긴, 사람은 아니니까. 으이구. 보자. 그래. 2, 10, 6, 25. 4, 30”

“뭐라고? 진짜?”

“두 번 말 안 해. 이제 그만 가.”

“힘들어서 못 가겠어.”

“엄살 피우지 말고 얼른 가.”

“가기 싫은데. 더 얘기하고 싶은데.”

“가야지. 매제랑 신이가 기다린다.”

“로또 번호 뭐라고? 2, 10, 6?”

“크크.  25, 4, 30! 꼭 잘 살아. 너 자신을 소중히 여겨. 절대 죽으려고 하지 말고. 천국에서 나 만나야지...”




“희유야, 오늘도 벌써 다섯 명이 자살을 했나 봐.”

“응?”

“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난 진짜 너무 살고 싶은데.”


병원에서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 희성은 스마트폰을 보며 공허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유는 당연히 오빠가 살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기적이 있으니까. 아니 오빠가 떠난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오빤 살 거야.”

“.....”


희성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슬프던지, 희유는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살 거라고 말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들어온 병동이다. 그런데 희유는, 그래도 믿지 못했다. 희성이 떠날 것이라는 걸. 세상엔 기적이 있고 희성은 기적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철떡 같이 믿었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희성은 떠났고 희유는 종종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때마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난 진짜 너무 살고 싶은데.”라는 희성의 공허한 목소리가 들리며 죄책감을 느낀다. 희성은 희유를 세상에 묶어 놓았다.




“그래, 2, 10, 6, 25, 4, 30. 꼭 로또 사서 잘 살게.”

“응. 박희유, 너도 이제 많이 커서 나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고마워”


희유는 어지러움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껴 눈을 감았다.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편안함 속에서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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