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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19. 2024

고스트의 마음

죽음, 그 이후

희성이 희유가 근무하는 학교에 왔는데 마침 그녀가 결근했다. 희성은 착잡하다. 오랜만에 본 동생의 자리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슝 빠져나왔다.






"아이고, 아들아!! 아들아!!!!"


어머니의 절규를 들으며 희성은 몸을 탈출했다. 자기는 죽었고 어머니는 오열했으며 아버지는 정신을 놓으셨다. 아내는 넋을 놨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위에서 빛이 쏟아지더니 희성을 빨아들인다. 희성은 그 빛에 빨려 들어가다 이미 죽은 상태로 죽을힘을 다해 탈출했다. 미련이 남았다. 아이들을 봐야 했다.


자기 몸도 보이고 세상 모든 게 보이는데 둥둥 떠다니는 느낌만 있을 뿐 형체를 느낄 수 없다. 희성은 하늘에 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모두가 혼비백산이었다. 희유가 정신없이 뛰어왔다.


"오빠, 오빠.. 오빠..."


그리고 말이 없었다. 상황을 둘러보더니 이를 악물고 엄마를 부축했다. 어머니는 절규를 끝내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빠르게 정리됐다. 희성은 곧 빛을 따라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자기의 빈자리가 순식간에 채워지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이봐, 정신 차려. 우린 그냥 자유를 누리면 돼."

"혼자 형체도 없이 떠다니는 건 재미가 없네요."

"그러게 왜 남아서 그래?"

"그래도 아이들이 보고 싶고, 그냥 떠나기 싫어서요."

"친한 영혼이 오면 좀 지낼 만할 텐데."

"형님이 계셔서 좋습니다."

"나도 자네가 있어서 좋지만 곧 떠나야 하니."


희성이 가족을 맴돌다 만난 영혼은 6년째 세상을 떠도는 중이었다. 영혼은 서로를 보지는 못해도 느끼고 대화를 할 수 있다. 둘 다 이승에 미련이 남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희성은 오가다 다른 영혼도 느꼈지만 동일 외에는 사귀질 못했다. 동일은 희성보다 열 살 위에 세상을 떠난 영혼으로 자기보다도 젊은 나이에 영혼이 된 희성을 안타까워했고 외로움을 공감해 주며 많은 이야길 들려주었다.


"... 영화나 드라마처럼 특별한 능력은 없나 봐요. 영혼이라고..."

"있지. 사람의 몸을 뺏을 수 있어. 그러나 매우 위험한 일이지.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이미 죽었는데 영혼에게 위험할 게 있나요?"

"다른 사람을 해치면 영영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돼."

"그럼 그냥 이렇게 떠돌아다녀야 하나요?"

"인간 세상에 떠돌 수 있는 건 9년까지야. 9년이 되면 무조건 갈 길을 가야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땅으로 꺼져. 저기 봐. 저 땅의 기운이 보이나? 지금 저 땅이 또 한 영혼을 빨아들이고 있군."

"... 지옥행이군요."

"맞아. 산 사람을 해친 영혼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영혼은 무조건 대지가 빨아들이지."

"심판은 죽음 직후군요."

"그렇지. 자네는 삼 년 주기로 빛을 만날 거야. 9년째 만나는 빛은 거부할 수 없어."


희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내의 재혼이었다. 이진은 희성이 떠난 두 해 만에 재혼했다. 희성은 이진의 몸에 들어가 재혼을 막으려 했다. 싫었다.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는 이진을 보는 게 괴로웠고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 또한 싫었다. 동일이 가까스로 희성을 말렸다. 희성은 동일의 형체에 튕겼고 동일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영혼은 울 수도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다. 감정은 고스란히 느끼는데 피곤하지 않다.


"전 여행이나 갈 니다. 그동안 애들을 봤는데 이제 비켜줘야죠. 목소리가 어리고 예쁜 영혼을 만나려고요."

"잘 생각했네. 그동안 즐거웠어."

"감사했습니다."


희성은 동일에게 작별을 고하고 바로 여행을 떠났다. 사는 동안 바빠서 가지 못한 여행이다. 이제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서 세계 각지를 볼 수 있다.






희성은 두 번째 빛도 거부했다. 세계일주를 하며 여러 영혼도 사귀었지만 그렇다고 떠도는 영혼의 생활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래도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마지막으로 보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희성이 돌아온 세상에는 희성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딸 윤이와 아들 진이는 훌쩍 큰 상태로 친할머니 댁에 자주 왔고 부모님은 그 아이들을 살뜰히 봐주셨다. 그새 많이 늙으셨다. 이진이가 재혼을 했어도 아이들을 맡겨서 다행이었다.


희성은 며칠을 부모님 댁에서 지냈다. 어느 날 쿵 소리가 났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희성이 재빨리 거실에 있던 아버지 몸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숨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후 119에 신고했다. 어머니는 빠른 응급처치로 생명을 건졌다. 아버지는 희유에게 연락을 했고 희유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병원으로 왔다.


"너희 엄마 큰일 날 뻔했어. 근데 내가 응급처치를 잘했대."

"아빠 어떻게 그걸 다 하셨어요? 더할 나위 없이 잘 대처했다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정신없이 했나 봐. 나도 모르겠어. 신고한 기억도 없어."

"놀라셔서 그래요. 그래도 엄마 괜찮으셔서 너무 다행이에요."


어머니가 깨어나시고 첫 번째로 한 말은,


"윤이와 진이 보러 가야 해. 우리 희성이 아이들 보러 가야 해."


희유는 울면서 엄마 손을 잡았다.


"애들 보러 가면 되지. 엄마 괜찮아서 너무 다행이야."

"아들이 살렸어. 아들이 꼭 살아야 한다고 날 깨웠어."


희성은 안도감을 느꼈다. 어머니가 괜찮으시고 아직 세상에 자기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게 좋았다.







희성은 마지막 빛을 앞두고 있다. 희성은 이제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의 말이 들리고 마음이 읽힌다. 요즘 희성의 관심사는 희유였다. 희유가 자꾸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진짜 죽고 싶은 것은 아님을 희성은 느낌으로 알았다. 그래도 희유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다볼 땐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녀를 구해야만 했다. 그녀가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  희성은 희유 곁을 맴돌다 부모님께로 가 아이들을 보고 거기서 머물다 희유 학교로 왔다. 그런데 그녀가 없다. 희성은 불안했다. 희유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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