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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2. 2024

부부의 사정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유영이 바이어들과 만나며 지끈지끈한 두통을 느끼는 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희유다.


'일과 시간엔 전화 안 하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침 타이어 사건이 생각나,

     

"죄송합니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핸드폰을 들고나간다.

     

"여보세요."

"여기 00 병원입니다. 박희유씨가 지금 응급실로 들어와서 연락드립니다."

"네? 사고가 난 건가요? 제가 남편입니다."

"사고는 아닌 거 같아요. @@ 추모공원에 쓰러져 계셨다고 합니다. 지금 의식이 없어서 여러 검사를 해 보려고 하는데 동의하시죠?"

"네, 지금 가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 두 시간은 걸립니다. 검사와 치료 잘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이야. 유영은 두통이 심해짐을 느끼며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김 과장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지금까지 얘기 나눈 대로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 김 과장이랑 실무적인 것들을 협의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다른 스케줄로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이번 거래는 바이어들이 쓸데없이 말이 많아서 그렇지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되려 유영의 회사는 좋은 거래처를 얻는 것이다. 희유의 전화가 회의 시간을 줄여준 셈이다.  그나저나 얜 무슨 일이란 말인가.     

유영은 운전대를 잡으며 생각에 빠졌다. 출근을 했어야 하는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다 하더니 이번엔 @@ 추모공원에서 쓰러졌단다. 출장이 아니었던 거다. 유영은 마음이 복잡한 상태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 추모공원은 유영에겐 형님인 희유의 오빠를 모신 곳이다. 유영은 종종 희유에게 같이 인사 가자고 제안했으나 희유가 거절했다. 희유는 오빠와 각별했던지라 희유의 거절이 유영은 늘 이상했다.  왜 그곳에서 쓰러졌나. 왜 하필 아무 날도 아닌 오늘, 오빠를 만나러 간 걸까. 학교는 어떻게 한 걸까. 유영은 갑자기 엄청난 불안을 느끼며 부웅... 액셀을 밟았다. 희유가 의식이 없다고 했다. 제발 그냥 괜찮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희유가 눈을 뜨고 본 첫 대상은 유영이었다. 아무 영문을 모른 채 유영의 눈을 본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깼어?"

     

수많은 감정의 실타래를 뚫고 나온 목소리는 유영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부드러웠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병원이고, 왜 당신이 여기에.."

"그러니까. 여보, 어떻게 된 거야?"

     

희유는 대답하지 않고 골똘한 표정이다. 유영은 그런 희유를 가만히 본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환자분 정신이 드셨네요? 영양실조와 탈수가 심각합니다. 거기에 햇볕이 세서 일사병으로 쓰러진 거 같아요. 다행히도 같이 계시던 분이 잘 잡아 주시고 응급처치를 잘해 주셨는지 외상이 하나도 없네요."

"같이... 있던 사람이요?"

"네, 그분이 119에 신고하시면서 남편분 번호도 알려줬다는데요?"

"남자였어요? 인상착의는요?"

"일행분 아니었어요? 구급차가 도착했을 땐 환자분 혼자 쓰러져 있었다고 들었어요."     


희유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포근한 느낌이 사실이었구나. 잠에  빠져들 때 오빠가 안아준 거였다.     


"신고한 사람이 누굴까? 그잖아도 궁금했어. 네 핸드폰 패턴 걸려 있었을 텐데 나한테 바로 전화가 온 것도 신기했고. 그냥 신원 조회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희유야? 울어? 아파?"

"머리가 좀..."

"의사 다시 부를까?"

"아냐. 좀 쉴게. 여보 미... 안.... 해."     


눈을 감은 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는 희유를 유영이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얼굴이 많이 말랐다. 


희유영. 희유는 깔깔거리며 자기 이름이 앞에 오면 우리 둘을 한꺼번에 부를 수 있다고 신나 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사소한 것에도 까르르 웃던 사춘기 소녀 같던 애인이었다. 유영은 그런 희유가 마냥 귀여우면서도 신기했다. 사람이 저렇게 대책 없이 밝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유영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랬던 희유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유영은 우는 희유를 보며 착잡했다. 희유가 언제 소리 내서 웃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영은 희유를 바라보다 핸드폰이 울리고 전화를 받는다.     


"어 신이야. 집에 왔어? 응, 엄마 괜찮으셔. 곧 퇴원할 거야. 빵 먹고 학원 갔다 오면 엄마 아빠 집에 도착할 거야. 엄마? 이따 집에서 보자. 지금 주무시네."     


언제부턴가 신이는 아빠랑 소통한다.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껌딱지였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희유는 외로웠다. 유영은 희유와 병원 밖을 나서며,     


"뭐 좀 먹자. 병원 앞에 죽집 있던데."

     

희유는 말없이 유영을 따라갔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유영의 배려가 고마웠다. 둘은 말없이 죽을 먹었다. 희유는 속에 퍼지는 뜨끈함을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일은 어떻게 하고? 괜찮아?'

"지금 내 걱정이냐? 너야말로 일은 어떻게 한 거야? 학교선 아니?"

"병가 냈어."

"얼른 먹어. 묻는 건 나중에 할게."     


희유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 봤다.  


[많이 아파요? 병원 가 보셨어요?]

[선생님의 빈자리가 큽니다. 어서 나으세요.

   


[박 선생 괜찮아? 웬일로 아파?]


[선생님! 선생님 안 계셔서 재미없었어요~ ]


[흐엉 아프지 마세요]

:     

여러 개의 카톡이 쏟아진다. 그러다 발견한 신이의 문자.     


[엄마 아파? 얼른 나아]     


짧고 굵다. 희유는 피식, 웃는다.     


"왜? 다른 사람 걱정시켜 놓고 좋니?"

"응... 좋네."

"@@ 추모공원으로 갈 거야. 거기서 대리 부르자고. 너는 그 차 타고 와"

"이제 괜찮아. 나 운전할 수 있어."

"됐어. 탈수에 영양실조로 기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운전이야."

"아냐. 이제 괜찮아. 어제부터 정신없어서 먹은 게 없어서 그럴 뿐이야."

"안 돼. 고집부리지 마. 대리 불러. 주차장도 확인했고 대리도 가능한지 알아봐 놨어."

"비쌀 텐데..."

"돈이 문제니? 네가 운전했다가 또 다른 데로 가면 어떡해?"   

  

역시 유영은 다 계획이 있다. 희유는 더 고집부리지 않고 유영 차에 올랐다. @@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에 유영이 운전하면서 말한다. 목소리가 건조하다.     


"학교 그만둬도 돼."

"...."

"힘들면 그만둬. 옮길 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우선 쉬어도 돼. 오늘 거래처도 하나 더 뚫었어. 내가 벌 수 있어."

"...."

"장인어른이나 나한테 지지받진 못할 거야. 그래도 그건 네 몫이지.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희유는 말없이 듣는다. 역시, 유영답다. 그냥 따뜻하게 끝나는 법은 없다. 그래도 처음이었다. 유영이 그렇게 그만둬도 된다고 한 것은. 희유는 오늘의 긴 하루가 꽤 괜찮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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