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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9. 2024

일상과 번아웃

다시 살아보기로

희유는 남편과 헤어지고 자기 차에 올랐다. 능숙한 기사님 덕분에 마음 편히 눈을 감았다. 하루가 참 길었다. 유영은 질문이 없었다. 그러나 희유는 안다. 속이 시끄러울 거라는 걸. 그래도 그만둬도 된다고 했다. 처음이었다. 일탈의 보람은 있었던 것인가.  


쉼 없이 달려왔던 삶이다. 이미 번아웃이었다. 언제부턴가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모두의 반대와 부족한 용기 및 형편이 몸만 출퇴근을 시켰다. 희유는 하루하루 시간마다 꾸역꾸역 수업을 때웠다. 몸은 힘들었고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 이상을 버티다가 오늘의 일탈을 강행했다.  


분명 희성이었을 것이다. 119에 신고해서 유영의 연락처를 알려준 사람. 희유가 다치치 않도록 살포시 눕혀 준 사람. 희유는 오빠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영은 동행이 진짜 없었는지, 신고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캐묻지 않았다. 유영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드디어 희유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듯했다.

     

희유는 지독히 외로웠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희유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떨어지며 뺨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희유가 일탈로 보낸 긴 하루에서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그녀는 떠올렸다. 희성이 알려준 로또 번호.     


"2, 10, 6, 25, 4, 30 "

"네?"

"아, 아니에요."

     

눈을 떠 보니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해 차는 달리고 있었다. 희유는 그 크고 밝은 달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인지 잊지 않은 로또 번호 때문인지 갑자기 설렘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왠지 이제부터 잘 살 수 있을 듯하다.                

  

   




희유는 피씩 웃었다. 예상한 결과였다. 아쉽지도 말라고 하나도 맞는 번호가 없다.     


2, 10, 6, 25, 4, 30     


역시 오빠...     


그 여전함이 반가웠다. 희유는 안 될 걸 알면서도 로또를 샀다. 그래야 할 거 같았다. 희유는 완벽한 낙첨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읽었다.

다시, 희유의 일상이 시작됐다. 사표도 내지 못한 채 그래도 물은 꼬박 챙겨 다니면서 먹는다. 결코 쓰러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일상에는, 오빠가 없으니까.

갑자기 희유에게 삶이 너무 아릅답거나 재밌어진 것은 아니다. 그냥, 살아보기로 했을 뿐.     

     

희유는 뜨는 해를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며 액셀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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