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병가는 오늘을 삼켰다. 나 홀로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착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오늘은 화요일이었고 나의 일은 그만큼 하루가 밀려 있었다.
거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기억 이래 처음으로, 나는 요즘 먹는 것이 곤혹스럽다. 입맛은 없는데 독한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밥 한 술을 뜬다. 아침도 그렇게 딱 한 술 뜨고 출근을 했더랬다.
수업 준비, 과제 검사, 도서 등록, 회의 준비... 산적한 일을 하는 중에 드디어 허기를 느꼈고 동료 선생님과 그 선생님 차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몸보신으로 메뉴는 추어탕. 막 주문을 하고, 내 차키에 달린, 아이들의 수공예품 인형을 자랑하며 기다리는데, 아들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조퇴를 하겠다 한단다. 배가 너무 아프단다. 일단 집에 보내 주십사 말씀드렸다. 보글보글 끓는 추어탕이 나왔다. 그리고 아이와의 통화.
너무 배가 아프단다. 설사를 계속 해서 움직일 수가 없단다. 겨우 집에는 왔다고 엉엉 운다. 일단 진정하라고 집에 왔으니 됐다고 화장실 갔다가 물 좀 마시고 병원부터 가라고 했다. 시간은 정오가 갓 넘었고 아이는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당장 집에 가 보고 싶은데, 식당으로 출발하기 전에만 통화했었어도 왕복 한 시간 반 거리지만 집에 가 봤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안 된다. 5교시가 있어서 음식을 팽개치고 가도 수업 시간에 맞춰 올 수가 없다.
국을 뜨고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해 봤다. 설사는 진정이 됐는데 온몸이 떨리고 기운이 없어서 병원엔 못 가겠단다. 차라리 이불 덮고 좀 쉬다가 점심시간 끝나고 두 시에 가라 했다.
결국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정신이 없었다.
아이고, 아이가 많이 아픈가 봐요.
5교시 끝나는 대로 집에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하필, 남편이 바쁜 날이었다. 남편 사무실이 지척인데 외근 나가 있는 날이라 내가 움직여야 할 거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내 차키가 없다.
헉, 선생님 저 차키 들고 나오지 않았어요?
차키?
아... 식당에 두고 왔나 봐요. 아까 제가 인형 자랑하고는..
아, 맞다! 인형! 인형이 있었어요.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갖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같이 가요.
식당에 전활 해 보니 자키를 챙겨 놓으셨단다. 우린 다시 식당을 왕복했다.
애가 아프다고 전화하니 정신이 없으시죠.
함께 식사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따뜻하다. 차키를 챙기고 5교시를 마치고 모든 일정을 다시 내일로 미루고 조퇴를 했다. 내가 출발할 때쯤 아이도 병원에 간단다. 한숨 자니 좀 나아졌단다.
나도 오늘도 온종일 기침을 해댔다. 그래서 뜨끈한 걸 먹으러 갔는데 아이랑 계속 통화하다 점심을 때우는 데 그쳤다. 기침을 하며 갈비뼈의 통증을 느끼며 집에 왔더니 병원에서 막 돌아온 아이가 기진맥진하다. 장염인데 너무 몸이 안 좋단다. 물을 먹이고 쉬게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이를 쉬라고 하고 죽을 사러 나갔다. 쌀을 불려서 끓여 주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했다. 흰 죽을 사서 덜어주고 아이를 살폈다. 다행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약을 먹이고 노트북을 켰다. 학교서 하지 못하고 나온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내일부터 시험인데 어떡하냐고. 걱정을 해 주신다. 부감독이 없어서 배가 아플 경우 답지를 내고 가야 한단다. 재입실이 안 된단다. 머리가 아프다. 알았다 했다. 상황 지켜보고 증상이 심해지면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부감독이 없어서 대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언짢았지만 그렇다니 뭐라 따질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더 이상 설사로 고생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까지는 물과 흰 죽만 먹으라 했다. 결국 우린 시험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몸이 먼저지, 시험이 대수냐. 지난 시험 잘 봤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걱정은 내가 하는 중이었다. 시험 때라고 나도 아이에게 감기를 옮기지 않으려고 각별히 조심해 오고 있던 중인데 갑작스럽게 장염이라니. 인생은 참,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어퍼컷을 날린다. 그래도 크게 아프지 않게,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저녁 약까지 먹은 아이는 병든 병아리처럼 기운이 없지만 컨디션이 심각하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이 시험 준비로 국어 정리를 같이 하고 내 약을 챙겨 먹고 뻗었다. 기침으로 뱃가죽이 당긴다. 갈비뼈 통증도 느껴진다.
엄마는 기침이 왜 그렇게 안 나아?
모르겠어. 넌 속 괜찮아?
응.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
우리는 오늘 환자로 살았다. 서로 기운 없는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안정이 돼 가고 있기에 내일은 좀 더 나은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