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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Sep 28. 2024

교사

푸른 가을 날의 백일장

큰일 났다. 그만둬야 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어찌나 예쁜지 집에 걸어가는데 울컥  울렁거림이 솟구쳤다.


동료에게 실망하고 박봉에 시달리며 오 만 군신경이 뻗어나가 이제는 진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미련을 두지 말자. 나는 지쳤다.




오늘 학교 아이들 둘을 데리고 백일장에 나갔다. 현장에서 제를 받고 글을 쓴다. 학생 두 명이 신청했고 난 별 필요 없는 어른이지만 현장에 함께 갔다.


행사장 앞 전철역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선생님도 일반부 참가하세요?"

  "나 진짜 열심히 고민했어. 국어 교사로서 나갔다가 떨어지는 것과 왔는데 놀기만 하고 참가하지 않는 것 중 어느 게 더 창피할까..."

 "선생님, 상은 운이죠~"

 "그렇지? 그래서 나도 쓰려고."

 "우와~"


아이들에게 글쓰기 자체를 즐기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내가 수상작에 들지 못할까 봐 쓰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당당하게 탈락하기로 했다.


백일장 시제


백일장 글제가 전광판에 떴다.


 "선생님, 뭐 쓰실 거예요?"

 "나 지금 기념일 하나 만들려고."

 "하하하, 제가 너무 어려워요."

 "그러게 말이다. 일기에도 쓰지 않는 말을 여기다 어떻게 쓰냐."

 "ㅎㅎ 그러니까요."


우리는 조용히 쓰기 시작했다. 하늘은 푸르렀고 조금 뜨겁긴 해도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은 연습장에 초안을 쓰고 서로의 작품을 바꿔 보며 감상을 나누는 듯했다. 시를 네댓 편 쓰고는 내게 무엇이 좋냐고 묻는다. 매우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제일 마음에 드는 두 작품 정도를 말해 줬다.


오히려 내가 시간에 쫓겼다. 아이들 작품 음미하랴, 전화받으랴... 공사가 다망한 어른이라서 온전히 대회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글쓰기를 마치고 중국집에 들어갔다. 고생한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 이러니 돈이 없지, 싶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엔 마음이 불편하다. 함께 맛있는 짜장과 탕수육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가까워지는 데는 함께하는 식사만 한 것이 없다.


 "선생님은 지도교사 안 하세요? 내년에 하세요?"

 "글쎄~ 모를 일이지."

 "언제 정해져요?"

 "마침식 전에."

 "아하하하. 이미 정해졌죠?"

 "ㅋㅋ아니. 아직 안 정해졌어 사실이야."


우리 학교는 12학년제로 1~8학년까지는 한 명의 담임이 키우고 9~12학년을 또 한 명의 지도교사가 맡는다. 즉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담임 선생님을 딱 두 명 만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려준 교사 모습

 "저희끼리 도벤저스 뺏기지 말자고 했어요."

 "응? 나만 남았네?"

 "그니까요. 영쌤만은 안 뺏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ㅎㅎ 천상 지도교사는 너희 졸업하고 해야겠구먼."


도벤저스는 도서관에 상주하는 네 명의 교사들에게 아이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넷이 한꺼번에 복도를 걷는데 멋있어 보였단다. 넷 다 요 아이들이 속한 반을 참 예뻐하는데 지도교사가 되면 그 사랑이 본인이 맡은 반으로 갈 거라는 거다. 이미 세 분은 전, 현직 지도교사이셔서 나만 남은 것이다. 나를 후배들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말이 참 고맙고 예뻤다.


밥을 사줬더니 자기들이 커피를 사 주겠단다. 나는 기분 좋게 편의점에서 커피를 얻어 마셨다.




학교를 옮길 뻔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이 년 전 방학 중에 급하게 진행된 일이었어서 이 학교를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여 고심 끝에 이직을 포기했다. 그때도 이 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차마 나 몰라라 옮길 수가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직의 문이 좁아진다. 나는 한 학기씩 재계약하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5년째 근무 중이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직 결국 못하겠구나. 그러다 얘네가 졸업하면 또 어떡하지. 언제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교사는 학생이 전부다. 동료가 실망스럽고 복지가 어떻고 해도 학생을 보며 사랑을 채우고 위로를 얻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여전히 나의 앞날은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이 학교 교사여서 좋았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다른 감정들로 쌓이다 보면 나는 훗날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2024.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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