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너희 못 보겠다.
왜?
내가 몸이 너무 안 좋더니 코로나래.
엄마의 전화에 아... 그랬구나. 오해가 풀렸다. 엄마는 외부 활동이 없으신 분이다. 그런데 벌써 세 번째 코로나다.
며칠 전, 명절에 일 박을 안 하겠다는 심산으로 엄마께 내 몸 상태를 알렸다. 힘들고, 이석증이 재발했고... 엄마는 그래도 넌 병원에라도 가지, 아휴 니 아빠는~ 하며 하소연을 시작하셨다.
아빠가 기침도 하시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시는데 병원도 안 가셔서 혼나셨단다. 억지로 병원엘 모시고 갔더니 비염이었단다.
비염이라고라.
평생을 아들과 남편, 친손주밖에 모르는 분이시라 딸내미의 이석증은 별거 아니고 남편의 비염은 큰일이구나. 또 서운했다. 나는 자꾸 엄마한테 서운하다. 이석증이 무슨 병인지 모르시는 분도 아니다. 아빠가 이석증으로 어지러움증을 느끼실 때 엄마가 안절부절못하셨더랬다.
근데 난 도대체 어디서 걸린 거지?
아빠가 코로나셨던 거지. 비염이 아니라.
그렇지? 니 아빠 기침도 심하고 목소리도 안 나왔었어.
병원비가 아깝다고 생으로 버티신 아빠는 나중에 단순 비염 처방을 받으신 듯하다. 이제는 엄마가 고생 중이시다.
마음이 복잡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은 참 무심하다. 괜히 싱숭생숭하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집에 오는 길에 들러서 문 앞에 음식을 드리고 가자고 한다. 남편 마음 씀씀이가 나보다 낫다.
시댁 가는 길에 들러줄 수 있을까?
왜?
그래도 불고기라도 재워갈까 해서.
명절에 쓸쓸히 두 분이 계실 게 맘이 쓰였다. 어차피 들를 거라면 일찍이 낫겠다 싶었다. 남편은 알았단다. 나는 마트에 가서 소고기와 과일을 샀다.
불고기를 재우는데 또 서운함이 올라온다.
엄마는 내가 아플 때 신경 쓰셨나?
분명 신경 쓰셨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고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
엄마는 나보다 오빠가, 친손주가, 어머니가 우선이신 분이다. 오빠가 투병할 때 병상을 지키셨고 내가 아플 땐 친손주를 보시느라 오시지 못했다. 재작년 내가 근종 수술 후 겨우 퇴원을 했을 때도 엄마는 딸이 아닌 엄마의 엄마를 뵈러 가셨었다.
서운했다. 나도 아직 엄마가 필요한데 자꾸 다른 데만 보신다. 이번에도 아빠의 비염에만 안절부절못하신다 생각했다.
이제 내가 엄마에게도 엄마 역할을 해야 하나 봐.
하소연을 하려고 전화를 드렸다가 하소연을 받았다.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긴 하다. 겨우 불고기 하나 재우면서 생색내는 마음이 웃기다.
받은 사랑은 자꾸 까먹는데 서운했던 감정은 잊히지도 않는다. 엄마도 나한테 서운한 게 있으실 거다. 그래도 또 그렇게 서로 할 수 있는 걸 하며 바라고 실망하고 고마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엄마와 딸이니까.
2024.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