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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기적

감사

by 문영

"텀블러 어떻게 하면 깨끗해진다고 하셨죠?"

"과탄산소다 넣고 10분 정도 두었다가 흔들어서 닦으면 돼요."

"오호, 저 해 보려고요."


텀블러에 물을 담아와서 마시는데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동안 텀블러 세정제를 썼었는데 똑 떨어지고 꼼꼼히 닦지 못했다.


연수 기간이라 매일 왕복 두 시간씩 청계를 다니던 중이었다. 개인 컵을 챙겨야 하는지라 텀블러는 필수품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티빙을 실행했다. 나는 주방 일을 할 때 드라마를 라디오 삼는다. 요즘 보는 것은 《선재 업고 튀어!》이다. 이제야 본다. 방학을 맞이한 나의 소소한 취미 생활이다.


드라마를 켜 놓고 과탄산소다 한 스푼을 텀블러에 넣었다. 욕심껏 커피포트로 물을 끓였다. 이왕이면 깨끗하게!! 펄펄 끓는 물을 텀블러에 담았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그걸 보면서 뚜껑을 닫았다. 쉐이킹~ 쉐이킹~


반찬을 만들고 이제 텀블러를 씻어야겠는데!! 선재가 자살을 했단다. 세상에나. 드라마에서 잠시 눈을 떼지 못한 채 팔만 쭉 뻗어 텀블러 뚜껑을 열었다.

.

.

펑!!!

.

.

"무슨 소리야?"


방에 있던 남편이 뛰어나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드라마 음악소리가 커서 폭발음이 그렇게 큰지 몰랐었다. 순식간에 뚜껑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싱크대 위로 떨어졌다.


"뭘 한 거야? 안 다쳤어?"

"아니 텀블러 이렇게 하면 깨끗해진대서..."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헉... 야 저것 좀 봐!"


남편이 천장을 가리킨다. 고개를 들어 보니 세상에, 천장이 찍혔다. 딱 텀블러 뚜껑 모양으로 도배지가 뚫렸다.


"너 안 다친 거지?"

"응..."

"야, 감사헌금 해라. 뚜껑이 네 얼굴 때렸으면 어쩔 뻔했어. 어떻게 뚜껑을 안 보고 열었나 보네."

"드라마 보느라..."

"진짜 천만다행이지 네 얼굴 때렸어 봐. 넌 진짜 감사해야 해."


기가 막혔다. 남편은 감사하라 하는데 나는 뚫린 천장이 속상했다. 남편은 내 얼굴이 뚫릴 뻔한 일이라고 거듭 다행이다 한다. 맞다. 실명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흉해진 천장에 마음이 쓰라렸다.




다음 날, 청계를 가느라 톨게이트를 지나가는데 카드를 떨어뜨렸다. 내 차는 하이패스를 부착하지 않아 현금이나 무인카드 톨게이트로 가야 한다. 교통카드를 찍으려다 놓쳤다. 사이드를 주차모드로 하고 핸드브레이크도 걸었다. 비상등을 켜고 차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숙여 팔을 쭉 뻗는데


위잉~~~


소리가 크게 난다. 무슨 소린지 몰랐다. 카드를 줍고 나서야 내가 무의식 중에 액셀을 밟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브레이크로 착각했나 보다. 헉, 주차모드로 안 해 놨으면 튕겨나갔을 일이다.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갔다. 주차를 하고 텀블러를 들었더니 텀블러 있던 곳이 흥건하다. 이건 또 뭔 일. 뚜껑은 꽉 닫혀 있다. 휴지와 손수건으로 열심히 물을 닦아내며 보니 텀블러가 샌다. 어제의 폭발로 뚜껑이 변형된 듯하다.


"오, 선생님 텀블러 닦았어요? 때깔이 다른데?"

"폭발했어요."

"네?"

"알려주신 대로 하고 뚜껑 열었는데 하늘 높이 치솟더니 천장을 뚫었어요."

"헉... 뚜껑을 안 닫았어야 하는데..."

"흔들라며요!!! 흔들려면 뚜껑을 닫아야죠!"

"아이고. 어떡해요. 뜨거운 물 넣었어요?"

"네...(펄펄 끓여서 가득)"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그는 내 텀블러에서 또 물이 새 젖은 자리를 본인 손수건으로 닦아 준다. 미안함의 표현이다. 정말 깨끗해졌으나 아주 미묘하게 뚜껑이 헐거워졌다.


오늘은 오는 길에 톨게이트에서 카드를 떨어뜨리고 액셀을 밟고~쏼라 쏼라~

쌤 어제오늘 큰일 날 뻔했는데?


그렇다. 살아있다는 건 기적이다. 무의식이 나를 살리기도 했고 죽일 뻔도 했다.


숨을 쉬며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감사를 모르고 투덜거리다 옐로 카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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