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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r 16. 2024

화이트데이

소소한 행복

날짜 감각을 상실한 지 꽤 됐다. 도대체가 어찌나 바쁜지 하루하루 정신이 없다. 어느 날 화이트데이 선물을 파는 편의점을 지나다 그날이 가까웠음을 인지했다.


"내가 초콜릿을 못 챙겼으니까 나 이번 화이트 데이는 기대 안 해. 3월 14일이 목요일이더라고. 어차피 퇴근도 늦는 날이고. 나는  기대 안 해. 목요일."

"엄마가 현명한 말씀 하신다. 당연히 기대하면 안 되지."

"응, 난 14일 목요일 정말 기대 안 해."


아이는 그저 웃는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고 3월 13일 저녁, 퇴근한 남편이 사탕을 내민다.

"와아!!  신난다~~ 고마워!!"

"차에 두고 출근할 때마다 한 개씩 먹어. 꼭 한 개씩"


눈에 보이면 그냥 먹어대는 걸 알아서인지, 다 퍼 주는 걸 좋아한다는 것 때문인지 남편은 하루에 한 개씩을 강조한다. 그잖아도 요즘 목이 많이 칼칼한데 잘 됐다 싶었다.


학원에 갔다 온 아이가,


"엄마 선물!!"


말랑카우를 내민다. 나는 지금, 세상을 다 가졌다.


"고마워. 아들!!! 신난다."

"아들, 아빠는???"

"화이트데이잖아."

"엄마 주려고 마트 들러서 사 온 거야? 이야~ 최곤데?"


 아들은 난처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 것은 없음이 미안한 웃음을 보인다.


"아빠 서운해!!"


남편은 언짢다는 듯이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서운하지 않다. 말랑카우는 아빠의 작품이다. 시크한 사춘기 아들이 굳이 마트를 들러 엄마 준다고 사탕을 사 왔을 리가 없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게 속아 주며!!


"아들 최고닷!!  고마워. 너무 신난다!!"


문득, 남편에게 진실을 확인해 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나는 아들에게 사탕을 선물 받은 엄마이다.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화이트데이, 수업에 들어가는 반마다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 줬다. 애들은 신난다. 작은 거 하나에도 크게 기뻐하는 아이들이 나는 참 좋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아무한테도 못 받고 넘어갔을 거예요!"

"전 무슨 날인지도 몰랐어요!"

"ㅋㅋ 다음 달에 모여서 자장면 먹었겠지. 괜찮아."


위로 아닌 위로를 보내 본다.




세상 모든 것이 단순하지 않아 고된 인생이다. 초콜릿 하나 사는 것도 백 번의 고민이 필요하다. 애들 계속 달라하면 어쩌지, 나만 나눠 주게 되면 어쩌지, 애들 수만큼 초콜릿을 사려면 얼마나 사하나... 그렇지만 또 결과는 언제나 단순하다. 줘서 기쁘고 받아서 기쁘다.


많은 것이 부족하여 고된 인생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것을 갖고 있어 행복한 인생이다. 사탕 하나만으로도 충만해지는 행복을 누릴 만큼 내 인생은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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