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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r 23. 2024

교사 문영씨의 일일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뜨는 해를 바라보며 봄이 왔음을 느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둠을 뚫고 출근했었더랬다. 곧 꽃잎이 날릴 것이고 깨끗한 공기를 그리워하겠지.


하루가 쌓여 계절이 변한다.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을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감상하며 아이들의 원성을 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함축이 심해요, 보기에 답답해요.  


실은 나도 그리 생각한다.

김용성 옮김, <<한국시로 다시 쓰는 네익스피어 소네트>>, 북랍.

그래도 한편으론, 보기가 예뻐요. 신기해요. 의 의견이 있었다. 아이들과 열띤 토의와 감상을 마치고 자리에 왔다. 재밌다, 피곤하다, 활기차다, 진 빠진다. 반복되는 양가적 감정으로 커피를 내리며 잠깐 눈을 붙였다. 해야 할 일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커피를 마시며 A, B 교사와 생활수칙을 논의한다.


복장에 대해서는 수업에 적절한 복장을 한다.로 할게요.

네, 좋아요.

그런데 복장을 한다가 맞아요? 취한다? 착용한다?

ㅋㅋㅋ어렵네요. 갖춘다?

오호, 갖춘다 좋네요.


우리는 수칙 전면 개정 중이다. 자율성을 주되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양가적 감정처럼 양가적 속성을 아우르기가 쉽지 않다.


합성어 [손발, 낯설다, 한두]는 다시 <손발, 낯설다>와 <한두>로 나눌 수 있어요.  기준이 뭘까? 왜 이렇게 나눌 수 있는지 밝혀낸 학생은 하산해도 좋습니다.


7교시, 드디어 마지막 수업이다. 아이들은 생각하느라 정신없다. 시작할 때는 날이 좋다고 산책하자고 이런 날 문법 공부 안 된다고 아우성 이더니 주제를 던지자 푹 파고든다. 아이들은 언제나 예쁘다.  나는 웃으며, 이봐. 생각하기 좋은 날이잖아. 오늘은 문법 하기 좋은 날이야.  아이들도 뭐예요~ 하며 까르르 웃는다.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회의실로 향했다. 학생부에서 1차 만든 생활수칙을 확인하고 논의, 그 외 여러 안건을 처리한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무거운 안건들에 골머리를 앓으며 하나씩 처리한다. 우리는 빨리 끝내고자 애쓴 것 같은데 시간은 어느덧 여덟 시다. 난장판인 책상 위를 다독이기만 하고 가방을 든다.


12시간 안에 출근할 건데 안 치워도 되겠죠?


어차피 이 실에 내가 제일 먼저 온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건다. 우리는 고기를 먹을 것이다. 고기고기고기 앗싸.


S, J, H와 맛있는 고깃집에 갔다. 나는 비록 사이다로 연명했지만 쫄깃한 목살구이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 줬다. 요즘 내가 제일 편하게 여기는 동료들과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다로 기름칠하며 하하 호호 웃고 떠든다.


자~ J. H 쌤은 제가 모실게요.

진짜? 우와. S쌤만 안 태우네요?

S쌤 차를 태울 곳이 없어서ㅎㅎ 아쉽네요.


S의 대리 기사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 하나씩 빨고 우린 진짜 퇴근을 했다.


문데렐라 성공. 영 시를 넘기지 않았다. 남편과 잠깐 수다 떤 후 씻고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긴긴 하루가 끝났다. 오늘도 잘  살았다, 내일은 칼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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