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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r 30. 2024

기침을 하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어제저녁, 갑자기 마른기침이 시작됐다. 회의 중이었다. 멈출 수 없는 기침으로  따뜻한 물을 한 보틀 받아서 계속 마셨다.


J가 사탕을 줬다. 사탕도 빨고 물도 마시고 생쇼를 해도 기침은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S는 괜찮냐며 집에 갈 것을 권했지만 왤까. 버티고 싶었고 버텨냈다. <죄송합니다~ 어쩌고>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크게 아프지 않았다. 기침만 해댔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지만 찌개에 밥을 말아먹었다. 따뜻한 게 먹고 싶었다. 오늘도 잘 마쳤다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콜록콜록콜록. 뚝.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사달이 난 후였다. 새벽 6시, 기침에 눈을 뜬 것 같은데 턱이 빠졌다. 오 마이 갓이다 싶기도 했지만  턱 탈골은 내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차분히 마사지를 시작했다. 차도가 없다. 살살 턱을 움직여 봤다. 차도가 없다. 다시 마사지...


이제는 내가 낄 수 있는 상탠지 아닌지를 대충 안다. 나는 가글을 하고 얼굴을 잘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을 할 수 없었다. 마스크를 꼈다. 찝찝해서 다시 마스크를 벗고 살살 양치를 하며 턱을 밀어 넣어 보았다. 아니 되었다.


기침이 시작됐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뒤로 재껴서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균형이 깨진다는 건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턱이 빠진 왼쪽은 물도 담아내질 못한다. 시럽형 감기약까지 잘 짜 넣고 응급실에 갔다.  다행히 기침은 수그러들었다. 오래 기다릴 각오로 책 한 권을 들고 응급실에서 대기하였다. 독서는 개뿔... 눈이 감겼다. 괜찮다.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이던가. 책을 쥐고 눈을 붙인 채 의사를 기다렸다. 나는 이 병원 VIP 고객일 것이다.  간단한 처치로 십만 원을 내는.


턱이 경련이 일더니 얼얼하다. 바로 출근할 예정이라 붕대는 사양했다. 기지개를 켜대 하품은 하지 않았다. 크게 터지려는 걸 아래턱에 힘을 꽉 주며 버텼다. 이게 더 무리가 가는 건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로 향하며 J에게 톡을 했다. 8시 20분. J는 알아들었다. 루틴 하게 움직이자. 턱이 빠진 날은 특히 루틴 하려고 한다. 스스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려는 편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승용차 한 대와 버스가 사고가 나서 엄청난 정체를 겪었다.


8시 29분. 티맵 예상 시간으로 정정 톡을 다시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고 난 저들은 정말 큰일이라고. 턱은 꼈으니 되었다. 사고 현장이 외길이었어서  골목길로 빠져 한 바퀴를 돌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운전실력이 일취월장했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 나도 차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J를 태우고 턱이 빠진 이야길 했다. 턱이 빠져서 한쪽으로 돌아가  양치는 어렵게 했고 화장은 생각도 못했다고. J는 듣기만 해도 아프단다. 실제로 아프다.


주차를 마치고 올라갔더니 기침이 터졌다. 눈에다 대고 마음껏 가래침을 뱉자던 김수영의 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도 마음껏 기침을 해댔다. 마스크를 꼈다는 안도감에 말이다.




일찍 퇴근해서 단골 이비인후과에 갔다.  평소와 다르게 주차 공간이 넉넉하고 병원에 사람이 적다. 세상에, 대표원장님이 진료가 없으신 날이다. 몰랐다. 내가 이용하지 않던 사이에 일정이 바뀌었다.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분께 진료를 받으려고 굳이 학교서도 멀고 집에서도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왔는데 아쉽다. 사람의 마음은 똑같다. 비현실적으로 친절하시고 섬세하게 잘 보시며 잘생기시기까지 한 대표원장님이 안 계시는 병원은 한산했다. 대기시간 없이 진료를 받았다. 목이 너무너무너무너무 후두까지 부어서 기침과 가래가 심한 것이란다. 증상을 얘기할 때 목의 통증을 따로 얘기하지 않았었는데 의사가 매우 의아해하며


"목 안 아프세요? 엄청 부었는데."

"목은 늘 아픈 거라 특별하다 생각 못했어요."

'너무너무너무너무 부었어요. 후두까지."


열을 재고 수액과 주사, 수만 가지의 약 처방을 받았다. 엉덩이 주사를 맞고 링거를 꽂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비현실적으로 친절한 목소리가 꿈결에 들렸다. 야간 진료를 위해 나오신 대표원장님의 목소리였다. 원래 금요일은 야간 진료가 없었고 대표원장님께 진료를 받기 위해선 늦어도 5시 안에 병원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왔는데 진료 일정이 바뀌면서 금요일 야간 진료가 생겼고 대표원장님이 그 진료를 보셨다. 수액을 맞고 나왔더니 대기실에 환자가 가득했다.




한아름의 약을 받고 내 차에 올랐다. 괜찮다. 또 낫겠지.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만 어쩌겠는가. 걱정한다고 기막혀한다고 단번에 달라지는 세상이 아니다. 오늘 잘 살았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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