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청환
닳고 해진 비누들 양파망에 모였습니다
세숫비누 여러 개와 빨랫비누 한 개
한 평생 제 살을 깎아 남을 씻겨온 것들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먼 산을 바라봅니다
마지막 살 한 점까지 내어놓으면
큰 놈 윗도리에 묻은 얼룩도
소식 없는 작은 놈 작업복 해진 무릎도
다시 말쑥해질텐데
원래는 네모 반듯했습니다
물에 불은 살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고
때로 빨래 방망이에 헛맞아 아찔했던 순간순간
제 살을 깎아 견뎠습니다
이리저리 깎여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못 되고
그저 볼품없이 찌그러진 모양입니다
평생 물가에서 한뎃잠 자던 비누는
제 몸 누이던 수돗가 좁디좁은 비눗갑마저 내어주고
빨래터 양파망 속에 엉겨 붙어
서로의 품을 파고듭니다
까끌까끌 늙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