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혹이 최고조에 달하던 고3 시절에는 몸무게도 덩달아 정비례 상승 곡선을 그렸고, 비로소 정점을 찍었을 때 다행히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늘어난 몸무게 탓인지, 여자 보는 눈이 영 쓸모없던 짝사랑 하던 선배 탓이었는지,
그 시절 난 더는 달콤한 청량음료에 유혹이 되지 않았다. 조금씩 살이 빠졌고, 인생도 달콤한 것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던 날. 선배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 친구에게 고백했고,
그날, 우연처럼 고등학교 때 친구가 검은 비닐봉지에 맥주 두 캔과 새우깡을 사서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의 방문 선물은 정말 웃긴 것이었는데, 더 웃긴 것은 당시 나는 그 친구가 정말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톡 쏘아 목구멍을 자글자글 자극하다가, 토도독 탄산이 빠져나갈 때의 청량감.
거기다 인생을 닮은 듯한 쓴맛과 알 딸딸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성의 힘까지….
그게 바로 유혹의 시작이었다.
맥주와 유혹이라는 단어를 짝지어 놓고 보니, 어쩐지 술꾼이 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알코올에도 약한 편이고, 맥주 이외의 주류는 그리 즐기지도 않는 편이라 꾼이라 지칭하기에는 한 10%쯤 부족하다고 애써 변명을 해 보려 한다. 단지 맥주가 있는 곳에서 부르면 좋아서 달려 나가고, 마트에서 맥주 판매대를 서성이다 슬쩍 한두 캔을 장바구니에 넣고는 미소 짓는 정도^^
사실 지금은 맥주를 대하는 생각이 많이 정리되고 정선된 편이지만, 솔직히 한때는 혹시 내가 중독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대학 시절, 갑작스러운 친구의 방문으로 맥주의 맛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그 유혹에 빠진 것은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였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주변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퇴근하며 어린이집과 개인 육아로 맡긴 아이들을 각각 찾아 먹이고, 씻기고, 잠시 놀아주다 보면 그야말로 체력은 바닥났다. 아이들을 재우고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고,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려면 맥주 한 캔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건 마치 예전 어릴 적 만화영화에서 나온 뽀빠이가 시금치 통조림으로 원기를 보충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매일 먹던 맥주 한 캔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도 저녁이 되면 먹고 싶어 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중독”이 아닐까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탄산음료의 유혹을 뿌리쳤던 대학 입학 이후 줄어든 몸무게는 다시 서서히 상승 곡선을 긋기 시작하였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쓴맛보다 단맛이 더 좋은 법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맥주의 쓴맛에 대한 유혹은 정말 강력한 것 같았다.
늘어나는 몸무게가 걱정된 탓도 있지만 “중독”이라는 단어를 걱정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졌다. 그래서 나는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 맥주에 대한 나만의 취향과 원칙이 필요했다. 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산도가 있는 커피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듯이 나는 맥주 이외의 다른 맛이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과일 향이라든가, 단맛이라든가…. 그저 깔끔하고 청량한 맛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 맥주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이런 종류가 “라거”라고 했다.
또한, 나의 주량은 750mL 정도 된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이 주량을 넘기게 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후회하게 된다. 웬만하면 이 부분의 유혹은 이겨내 보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습관적으로 먹는 버릇을 없애는 것이다. 참았다 먹는 마시멜로가 더욱 달콤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맥주니까 맛있게 먹고 싶다.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나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유혹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