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멍 때리는 것도 업무다
가끔,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창작자에게 ‘멍’은 일이다. 멍 때리는 것도 업무다.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다가 3초쯤 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메모장을 찾는 사람.
… 그게 나다. 그리고 당신이다. 우리다.
멍 때리는 그 찰나의 순간.
그냥 지나쳤다면 영영 못 만났을지도 모르는 아이디어 하나가
“야, 나 여기 있어” 하며 고개를 삐죽 내민다.
그럼 나는 이성을 잃고 급하게 메모장이나 휴대폰 녹음 앱을 켠다.
운이 좋으면 다 적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운이 나쁘면… 잊는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그 잊은 내용을 찾아 헤맨다.
“분명히 있었는데, 분명히 있었는데…”
그러니까 멍 때리는 시간은 창작의 예열 타임이다.
멍을 때리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뜨겁다.
아이디어는 높은 온도에서 끓지도 않고, 낮은 온도에서 얼어붙는다.
딱 중간이 좋다. 나의 멍 온도.
Q. 멍 때리는데 왜 노트북을 켜고 있나요?
A. 혹시 떠오를까 봐 대기 중입니다.
Q. 왜 핸드폰 메모앱도 켜져 있죠?
A. 노트북보다 빠르게 기록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Q. 그런데 손에는 왜 펜이 들려 있죠?
A. 그래도 아날로그 감성은 못 놓잖아요.
Q. 도대체 지금 멍 때리는 거예요, 일하는 거예요?
A. 일하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어느 날 아침, 센터에 일찍 도착해서 가만히 필라테스 기구 위에 누워 멍을 때리고 있었다.
사실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 멍이었지만, 그 순간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멍 때리다가 진짜 좋은 아이디어 하나 떠오르면…”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을 무렵,
회원 한 명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 어… 왜요?”
“혹시 어지러우셨어요? 기절하신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눈이… 너무 무표정이어서요…”
아. 그렇지.
멍 때릴 땐 내 얼굴에 생기가 없다.
그날 이후 나는 멍 때릴 때 살짝 미소 짓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은 계속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마치 새가 날기 전에 바람을 가늠하는 것처럼 다음 점프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불멍, 물멍, 책멍, 사람멍…
우리는 세상을 오래 바라보다, 마음이 반응하면 손이 먼저 움직인다.
누군가는 “또 멍하니 있냐?”라고 하지만
우리는 말한다.
“업무 중입니다.”
역시… 창작자는 혼잣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그리고 멍 때리는 걸로 출근한다.
창작자의 뇌는 쉬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가끔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빙자해 몰래 작업한다.
그걸 우리는 ‘멍’이라고 부른다.
사실은 머릿속 회의 중. 아이디어는 늘 그 회의 틈에 끼어든다.
• 이동 중
• 샤워 중
• 눈 뜨고 누워 있을 때
• 눈 감고 앉아 있을 때
• (특히) 아무도 없고 조용한 공간에서 3분 이상 정적이 흐를 때
(주의: 이때 얼굴이 너무 무표정하면 주위 사람이 119를 부를 수 있음)
1. 응급 세팅 필수
노트북, 메모앱, 펜을 옆에 두세요.
멍 때리는 건 창작 대기 상태입니다.
아이디어 손님은 예고 없이 방문합니다.
2. 멍에도 종류가 있다
• 불멍: 불꽃 속에서 영혼을 태움
• 물멍: 물결 따라 감정이 흐름
• 창밖멍: 하늘과 소통 중
• 사람멍: 상대 말 듣는 척하며 브레인스토밍 중
…근데 다 결국 메모로 끝나요.
3. “일하는 거냐, 멍 때리는 거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하세요.
“네.”
(혼자 일하는 사람은 원래 둘 다 동시에 합니다.)
4. 멍 얼굴에 생기 주기 프로젝트
입꼬리를 3도 올려주세요.
안 그러면 기절한 줄 알고 오해받을 수 있어요.
창작자 체면도 체면이지만… 민망함은 당신 몫입니다.
1. 아이디어는 뛰는 당신보다, 멍 때리는 당신에게 먼저 도착합니다.
2. 멍이 길어질수록 아이디어의 질은 높아지지만, 현실 업무는 늦어질 수 있어요. 균형이 필요합니다.
3. 멍 때리는 당신, 생각보다 되게 귀엽습니다.
(단, 눈동자 초점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건 그냥 약간 공포예요.)
잊지 마세요.
멍은 창작자의 워밍업입니다.
출근길, 멍 때리는 당신,
이미 작업 중이니까 걱정 마세요.
창밖을 보며 흐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뛰쳐나가 포스트잇을 찾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고, 그건 당신에게 당연한 업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줄 적고 나면, 또 멍 때리러 갑니다.
(다음 회의는 곧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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