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검열되지 못한 사람들 -책을 태우는 남자, 이준익
24화에서 나는
가수 전인권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같은 선반에 올려두었다.
사랑을 계산하지 못했던 사람들.
말의 타이밍을 재지 못했던 사람들.
순수해서, 오히려 더 크게 오해받았던 사람들.
그렇게 정리하고 나서야
나는 한 사람을 더 떠올렸다.
내 기억 속
‘검열되지 못한 사람들’ 목록에
빠질 수 없는 이름 하나.
책을 읽지 않고,
책을 태우는 남자.
정확히 말하면
책을 불로 바꾸는 남자.
영화감독, 이준익.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내 취향의 동선이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부암동으로 올라가는 길.
그날은 봄이었다.
청운중학교 담장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만발’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듯
겹겹이 피어 있었다.
바로 옆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었고,
골목을 몇 번 접어 들어가면
사람들이 말하던
‘그 집’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집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아티스트,
패션지 기자,
출판 쪽 사람,
시나리오 작가,
영화 기획자.
지금은 누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 시절의 ‘현업’들이
자연스럽게 한 방에 섞여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지금보다 훨씬 단단히 무장해 있었다.
취재라는 이름으로 늘 긴장했고,
질문지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은
조금 이상했다.
사람을 가늠하는 눈이 없었고,
인맥을 계산하는 표정이 없었고,
누군가를
‘누구의 친구’로 소개하며
서열이 생기는 순간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그냥
사람으로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공간은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내가 타고 온 마을버스가
어느 순간
‘고양이 버스’가 되어
현실의 규칙이
조금 느슨해진 곳에
나를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
조카가 그때
내 말을 끊었다.
“이모, 부암동이 그렇게… 비현실이야?”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응.
현실이긴 한데,
그 집에서는
현실의 규칙이
조금 덜 적용됐어.”
이준익 감독은
나중에 이사를 했다.
부암동 다음의 집은
내 기억으로는 홍은동 쪽, 산자락의 끝이었다.
산을 깎아 올린 집이라
마을이 아니라, 거의 ‘능선’에 가까운 곳.
너무 높아서
비가 오는 날이면
아래 세상은 물안개 속에 잠기고,
집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섬처럼 고립됐다.
그럴 땐
창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도, 사람도, 시간도.
그저
구름과 나무와
천천히 식어가는 공기뿐.
캠핑용 의자 하나만 놓고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속세와의 연결선이
잠깐 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이 오는 날은 또 달랐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
고립무원이라기보다는
잠시 신선이 된 기분에 가까웠다.
갇힌 집이 아니라,
속세를 잠깐 꺼두는 집.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감독님,
돈 많이 버셨나 보다.”
하지만 그 집은
그가 가진 돈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 집에는
그린벨트 같은 규제가 얽혀 있어
시세가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투자’로서의 집이 아니라,
‘머무름’으로서의 집이었다.
계산의 결과라기보다
낭만의 선택.
세상과 잠깐 거리를 두고
숨을 고르기 위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집.
그가 그런 집을 골랐다는 사실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이준익은
계산으로 살아남는 사람이라기보다,
몸으로 버티고
마음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에 가까웠으니까.
그 집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떤 이익을 계산해서 모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줄을 서거나, 자리를 차지하려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저
그 집의 공기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이 조금 느슨해졌고,
조금 솔직해졌고,
조금 덜 포장된 얼굴로 앉아 있게 됐다.
그중에
유독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이준익 감독의 대학 동창이자,
독일과 한국을 오가던 큐레이터.
우리는 그를 별명으로 불렀다.
돈키호테.
한국 미술계의 조용하고 폐쇄적인 룰에
아무렇지 않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지 않았고,
비평을 숨기지 않았고,
말의 날을 접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불편해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필요로 했다.
재벌가 사모님들이
“좋은 자리”를 내밀며
그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그런 걸
모르는 척했다.
아니면, 정말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고상한 척하지 않는 고상함.
계산하지 않는 단단함.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에게 이준익 감독은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였고,
그래서
나를 소개할 때도
아무 설명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쪽은
내 친구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
나이 차이도,
경력 차이도,
직함도,
그 말 한마디에서
잠시 효력을 잃었다.
그때의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제가요?
친구요?’
이준익 감독이 있으면
그 사람과 나,
그리고 그를 소개한 이 사람까지
셋이 다 친구가 되는 구조였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그건
관계의 족보가 한 번에 깨지는 호칭이었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고,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족보 자체에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오래 지낸 사람 특유의 감각,
혹은
사람을 사람으로 먼저 보는 태도.
그땐 멋쩍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참 고맙다.
나를 위로 올려 세운 것도,
아래로 내려놓은 것도 아닌,
그저 사람으로 앉혀 둔 말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나보다 훨씬 어리더라도
존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그날의 그 한마디가
조용히, 오래
고맙다.
조카가 물었다.
“근데 왜 다 친구야?
다 같이 친구 하면
세상 편하긴 하겠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 집이 특별했어.
그 집에서는
정말로
다 같이 친구가 됐거든.”
그리고
그 밤이 왔다.
내가 절대 빼고 싶지 않은 장면.
이 화의 진짜 포인트.
그날은 유독
사람들이 늦었다.
원래는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였는데,
차가 막힌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
핑계는 달랐고,
결론은 하나였다.
그날, 집에는
나와 이준익 감독만 남았다.
나는 가방 속에 질문지를 넣어둔 채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인터뷰를 해야 한다.
오늘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그는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불멍”이라 부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말도 없던 시절이었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만 있었다.
검은 밤 위로
불의 주황색이 천천히 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때,
그가 아무렇지 않게
책을 찢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불 속에 던졌다.
나는 벌떡,
마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감독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거 책이잖아요.”
그는 불을 보며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불이 꺼지잖아.”
“근데 책을…
찢어서…”
그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책이 왜 찢기면 안 돼?
책은…
쓸모가 있어야지.”
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반발해야 하는데,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뭐야?
따뜻한 불이잖아.
책이 그걸 해주면…
그게 책이지.”
그 말이
폭력이 아니라
철학으로 들린 건,
그가
‘책을 무시하는 인간’이 아니라
‘삶을 과장하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질문지를 꺼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꺼낼 수가 없었다.
불 앞에서
질문지는
갑자기 너무 가벼워졌다.
나는 마음속에서,
준비해 온 질문들을
하나씩 태웠다.
오늘은
인터뷰하지 말자.
오늘은
사람을 만나자.
감독을 만나기 전에,
인간을 만나자.
그 밤은
어떤 사건이 있었던 밤은 아니다.
그런데 책을 찢어 불을 피운 그 밤은
내 인생에서는
사건처럼 남았다.
조카가
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이모…
그냥 책을 태운 건데…”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
“되게 영화 같다.
막 큰 일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장면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딱 그거였어.”
조카가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그 장면이
따뜻하게 느껴져?”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게.
책을 태웠을 뿐인데.”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그날은…
진짜 따뜻했어.
묘하게,
해방감 같은 것도 있었고.”
그는 종종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건 상처를 주려는 방식이 아니라,
‘철‘을 빼려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유 기자도…
철이 너무 일찍 들었어.
우리, 철을 빼야 돼.”
그리고 또 말했다.
“인생을 알았으면…
너도 이혼 한 번 해.”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결혼도 안 한 사람한테,
무슨 이혼.
솔직히 말하면,
웃기기도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이 ‘권유’가 아니라
분명한 ‘은유’라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이혼’은
결혼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기대했던 형태의 성공이 깨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람은
사람을 배우기 시작한다.
결혼을 해서
이혼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실과 재구성과 회복을
몸으로 겪어야
타인의 인생이 보인다는 뜻.
그는 실제로
아주 이르게 결혼했고,
아주 이르게 가장이 되었고,
그래서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했다.
대신
모든 걸
삶으로 배웠다.
영화판에 들어온 것도
처음부터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일부터였다.
그가 던지는 말에는
늘 그런 결이 있었다.
정답이 아니라 체험.
지식이 아니라 통증.
스펙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
그래서 그 말은
무례가 아니라,
삶을 통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에 가까웠다.
이준익 감독은
상업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상업을 ‘적’으로 두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영화는 돌아가야 했고,
팀은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벌었고
그 숨으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상업영화로 숨을 벌고,
그 숨으로
자기 이야기를 찍는 사람.
그게
이준익이라는 감독의 방식이었다.
그가 특별했던 건,
그 모든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집이 그랬다.
그 집에는
학벌도,
직함도,
지위도
문 앞에 잠깐 내려놓고 들어왔다.
배우들도 그 집에 오면
무장해제되었다.
사무실에서
“역할’로 만나는 게 아니라,
집에서
사람으로 만났으니까.
그래서 그 시절
그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지금도 대부분
현업에 있다.
그때 신진이었던 사람들은
지금 거장이 되었고,
그때 거장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자기 자리에 있다.
과거형으로 불리지 않고,
조용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는 것.
그게
이 이야기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그 시절
나는 기자였고,
지금 나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현업에 있다.
우리는
끝난 사람들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사람들이다.
여전히,
ING.
조카가 물었다.
“근데 이모.
필라테스한다고 왜 그분들한테 말 안 했어?
도와줬을 수도 있잖아.”
나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연락을 끊은 건 아니야.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조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나도
무에서 시작해보고 싶었거든.”
도움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의 이름으로 시작하면
내가 내 발로 걷는 감각을
잃을 것 같았다.
그의 방식이 떠올랐다.
배워서 증명하지 않고,
살아서 증명하는 사람.
자기 체험으로만
자기 위치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내가 덧붙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아.”
“뭐?”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만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길을 걷다가도
어떤 순간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거.”
조카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이모도…
철 빼는 중이네.”
나는 웃었다.
“응.
2026년엔,
좀 더 제대로 빼 보려고.”
24화에서 나는
‘말해지는 순간 다시 검열되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전인권과 〈번지점프를 하다〉는
말이 늦어서,
사랑이 계산되지 않아서
오해받았던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25화에서 나는
그 반대편을 꺼낸다.
검열을 피하지 않는 대신,
아예 규칙을 무력화시키는 방식.
직함과 위계를 태워버리고
사람만 남기는 방식.
책을 태워 불을 만들고,
질문지를 태워
마음을 꺼내는 방식.
그래서
25화의 제목은 이렇게 이어진다.
검열되지 못한 사람들
-책을 태우는 남자, 이준익
삶이 곧 영화가 된 사람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배워서 만든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영화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줄거리보다 ‘어떤 사람을 통과해 왔는가”가 먼저 남는다.
주요 작품 한 줄 소개
• 키드캅 (1993, 데뷔작)
청소년을 전면에 내세운 범죄 액션물,
상업영화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첫 영화
• 황산벌 (2003)
백제와 신라의 전투를 사투리와 인간 군상으로 풀어낸
역사 코미디의 변주
• 왕의 남자 (2005)
광대의 눈으로 권력을 바라본 사극,
흥행과 예술성을 동시에 넘긴 전환점
• 라디오 스타 (2006)
한물간 가수의 재기를 통해 말하는
인생 2막과 우정의 가치
• 즐거운 인생 (2007)
중년 남자들의 밴드 결성기,
“철을 빼야 인생이 즐겁다”는 선언문
• 님은 먼 곳에 (2008)
베트남전 속 여성의 성장 서사,
전쟁을 ‘기다림’의 얼굴로 바꾼 영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
혁명과 배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들,
이념보다 인간을 묻는 사극
• 평양성 (2011)
고구려·백제·신라의 대치를 유머로 풀어낸
전쟁 삼국지의 완결 편
• 소원 (2013)
피해자 가족의 회복을 그린 작품,
울음을 강요하지 않는 연민의 시선
• 사도 (2015)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
역사를 통해 지금의 가족을 다시 묻다
• 동주 (2016)
윤동주의 청춘과 침묵,
저항을 소리 대신 시로 남긴 흑백 영화
• 박열 (2017)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
웃음으로 권력을 비트는 투쟁기
• 변산 (2018)
실패한 청춘의 귀향기,
도망쳤다가 돌아오는 세대의 초상
• 자산어보 (2021)
유배지에서 피어난 사제 관계,
지식보다 삶이 먼저였던 배움의 기록
“상업영화를 찍되, 목소리를 잃지 않는 사람”
이준익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오가며
‘찍히는 영화’가 아니라 ‘남는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으로 평가된다.
특히 〈왕의 남자〉 이후
“흥행으로 숨을 벌고, 그 숨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뚜렷한 궤적이 이어졌다.
2025년 현재: ING, 여전히 현역
2025년 이준익 감독은
영화 <교산>을 준비 중이며,
역사와 인간을 동시에 품는 콘텐츠 〈알로하, 나의 엄마들〉 연출 합의 소식도 전해졌다.
그는 과거의 이름으로 소비되는 감독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책을 태우는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TMI
• 그는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읽은 것을 태워서 몸에 남기는 사람에 가깝다.
• 그 밤, 모닥불에 던져진 것은
책장이 아니라
폼과 격식, 잘난 척,
지식을 무기로 삼는 태도였다.
• 그래서 그의 영화는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살면서 건져 올린 말,
배우의 눈빛으로
관객에게 조용히 도착한다.
이준익은 책에서 배운 사람이 아니라
삶이 책이 된 사람이었다.
그가 불에 던진 것은 진리가 아니라
폼과 격식이었고,
그래서 그의 영화는
감독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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