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받던 남자, 밥상을 차리던 여자, 그리고 남는 온도
25화를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한동안 ‘현역‘이라는 단어를 입안에 굴렸다.
그 시절 우리는
사람을 쉽게 과거형으로 부르지 못했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그때의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조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모… 안성기 선생님 돌아가셨대.”
그 한 줄은
뉴스처럼 빠르게 읽혔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국민 배우’라고 불렀다.
너무 익숙한 호칭이라
가끔은 그가 정말
우리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떠나고 나서야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우리 마음 어딘가에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말없이 머물러 있었는지를.
조카는 잠시 뒤
한 줄을 더 보냈다.
“나 갑자기 그 영화 생각났어.
<라디오 스타>…그리고… ‘비와 당신’.”
그 말에
나는 오래된 기억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이건,
사람이 떠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남긴 온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그때는 아직 90년대였다.
나는 매일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세상은 논리와 일정과 역할로
내 숨구멍을 조금씩 막아오던 시절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세미나가 있던 날도 그랬다.
말들이 빽빽하게 쌓여 공간을 채우고 있으면,
나는 문득,
내가 숨을 너무 얕게 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의 나는 나를 돌볼 줄 몰랐다.
심리라는 말을 배운 적도,
불안에 이름을 붙여본 적도 없었다.
그저 “답답하다” 한 단어로
모든 걸 뭉뚱그려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깐 자리를 빠져나왔다.
햇살이 있는 쪽으로.
눈이 편안해지는 쪽으로.
사람 소리가 멀어지는 쪽으로.
세종문화회관 뒤편.
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운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빛을 조금 쬐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나는 무심코 일어나
교수님인 줄 알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상대도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 인사는 짧았는데,
이상할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위로를 들은 것도 아닌데,
마치 “괜찮아요”라는 말을
눈빛으로 건네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몇 걸음이 지나고 나서야
내 머리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안성기.
그 순간, 묘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유명인을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를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미소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이 아니라
사람을 감싸는 눈이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경계‘ 대신 ‘여유’를 먼저 내어주는 얼굴.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저래서 ‘국민 배우’구나.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말 한마디 없이도
사람을 잠깐 편안하게 만드는 힘.
그 짧은 인사 하나로
나는 오래간만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몇 년 뒤
나는 〈라디오 스타〉 시사회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무대 위에서
박중훈 배우, 이준익 감독과 함께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 때,
그는 여전히 ‘배우’라기보다
그냥 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카메라 앞의 웃음이 아니라,
카메라가 없어도 그대로 남아 있을 웃음.
그는 아역배우로 시작해
청춘의 화면에도 있었고,
중년의 화면에도 있었고,
늦은 밤 TV 광고 속에도 있었다.
어느 시대의 화면을 켜도
안성기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했다.
늘 있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가 떠났다는 소식이 오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애도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건 스타를 잃은 슬픔이 아니라,
한 시대의 안정감이 빠져나간 슬픔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려진 사실들,
그는 혈액암 투병을 해왔고,
후배들과 동료들도 그 시간을 함께 걱정했다고 한다.)
그날은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저녁 자리였다.
감독이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가 있었고,
기자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대단한 자리는 아니었다.
정해진 메뉴 몇 가지,
서로 얼굴은 알지만
굳이 말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나는 그 자리에
우연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따라 들어온 자리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용히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 앞의 잔보다
사람들을 먼저 보았다.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대화 속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사람은 없는지,
괜히 더 작아져 있는 얼굴은 없는지.
그리고 아무 티도 내지 않은 채
후배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잔 하세요.”
그 말은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말도,
분위기를 띄우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말이었다.
그러다
내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잔이 채워졌다.
나를 한 번 보고,
그때와 똑같은 얼굴로
같은 말을 건넸다.
“한 잔 하세요.”
그 순간,
나는 세종문화회관 뒤편이 떠올랐다.
아무 말 없이
인사를 받아주던 그 얼굴.
말을 건네지 않아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던 그 눈빛.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늘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얼굴이었으니까.
아,
이 사람은 늘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구나.
그 말에는
격려도, 조언도, 생색도 없었다.
그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날도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
인생을 논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배운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리를 나설 즈음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왜 ‘국민 배우’로 불리는지.
연기를 잘해서만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한 번 더 확인했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만이 아니라
카메라가 없는 자리에서도
같은 얼굴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부고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남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태도와 온도는
지금도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오간다.
그게
안성기라는 이름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안성기 선생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카가 말했다.
“이모… 미안한데 나 진짜 배고파.
이런 얘기 들으면… 왜 이렇게 배가 고프지?”
나는 웃었다.
“그래? 그럼 라면 끓일까.”
조카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오케이.
이모는 라면 끓이고,
나는 밥상 차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 조심해서 꺼내.
우리 집 김치는 ‘금치‘야.
농담처럼 했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늘 조금씩 아껴두는 편이었다.
조카가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뚜껑을 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모,
이 김치… 왜 이렇게 파란 이파리가 많아?”
그 순간,
라면 냄비 위로 김치 냄새가 올라왔고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거…
안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잠깐 말을 고르고 덧붙였다.
“파란 이파리만
내가 따로 모아둔 거야.”
조카가 나를 봤다.
“왜?”
나는 잠시 웃었다.
“그 얘기는…
조금 이따 해줄게.”
그리고 그 파란 이파리를 보는 순간,
기억이 아주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데려왔다.
김수미 선생님.
나는 조카에게 말했다.
“나 사실…
김치 먹을 때마다
그분이 생각나.”
“누구?”
“김수미 배우.”
그날은
인터뷰 때문에 그녀를 만났던 날이었다.
김치 사업, 간장게장, 식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배고프지?
밥 먹고 가.”
질문도, 설명도 없었다.
그 말은
후배를 맞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앉히는 말이었다.
밥상에는
흰쌀밥이었을 수도 있고,
잡곡밥이었을 수도 있다.
솔직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나는 게 있다.
김치.
그리고 간장게장.
전라도식으로
속이 깊게 밴 김치,
손으로 쭉쭉 찢어
밥 위에 올려주던 손길,
비벼주던 간장게장.
그녀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자, 이렇게 먹어봐.”
그러다 김치를 집으며
갑자기 웃었다.
“사람들은 김치 먹을 때
파란 이파리 잘 안 먹잖아.”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질기기도 하고…
보통은 하얀 줄기만 먹죠.”
그녀가 잠깐 내 그릇을 내려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거봐.
우리 유 기자도
지금 하얀 줄기만 먹고 있잖아.”
그제야
나는 멈칫했다.
의식해서 고른 적은 없었는데,
내 젓가락은 늘
부드럽고 깔끔한 쪽으로만 가 있었다.
파란 이파리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파란 이파리를 집어
천천히 씹으며 말했다.
“난 이게 좋아.
제일 싱싱하잖아.”
그리고 잠깐,
말의 속도를 늦추며 덧붙였다.
“질기긴 한데…
그게 인생 같아.
청춘도 그렇고.”
그 말은
단지 김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영원히 늙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말,
끝까지 젊고 싶었던
한 여자의 고백처럼 들렸다.
우리는 김수미를
‘엄마’의 얼굴로 오래 기억해왔지만,
사실 그녀는
한 번도 ‘여자’이기를
내려놓지 않은 사람이었다.
현장에서,
화면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그녀는 늘 움직였고,
자기 온도를 스스로 지켜냈다.
그래서
그녀가 2024년 가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유난히 현실감이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심정지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졌지만,
사람들이 더 오래 말을 잃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까지도
‘현역의 얼굴’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조카가 김치를 집으며 말했다.
“이모…
나도 이파리 먹어볼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먹어봐.
싱싱한 게 진짜야.”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김치를 먹다가
파란 이파리를 집어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럴 때마다
김수미 선생님이 떠오른다.
청춘을 먹듯이,
기억을 먹듯이.
그녀가 생전에
“영정사진은 웃는 얼굴로 남기고 싶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울지 말고 웃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했다는 기사들을
나는 뒤늦게 읽었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남긴 온도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직 현역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조카에게 말했다.
“이모는 사람 볼 때
온도를 먼저 봐.”
몸의 온도,
말의 온도,
그리고 침묵의 온도.
안성기 선생님은
눈빛으로 사람을 쉬게 했고,
김수미 선생님은
밥상으로 사람을 살게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은 내 삶 안에서
여전히 ‘현재형’이다.
조카가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뜨고 말한다.
“그럼…
현역이란 건
무대에 서 있는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하루를 계속 움직이면
그게 현역이지.”
밖에서는
비가 올 것처럼
공기가 천천히 눅진해지고 있었다.
조카가 폰을 꺼내
‘비와 당신’을 틀었다.
영화 〈라디오 스타〉를 통해
다시 불리게 된 그 노래는
방 안을 조용히 채웠다.
라면 냄비의 김이 올라오고,
접시 위에는
김치의 파란 이파리가 남아 있다.
그 순간
나는 확실히 알았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남긴 온도는
누군가의 하루를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도
아직 식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은
어떤 말로,
어떤 음식으로,
어떤 얼굴로
당신의 하루에
다시 나타나나요?
“국민 배우”라는 말이 덜 어색했던 사람
안성기는
단순히 연기를 잘한 배우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대표작의 흐름
• 아역 배우로 출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스크린에 서며
“배우로 성장한 배우”가 되었고
• 시대의 얼굴
〈태백산맥〉, 〈실미도〉 등 굵직한 작품에서
한국 남성의 시대적 얼굴을 담아냈으며
• 이미지의 변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선한 얼굴’에 머무르지 않는 배우임을 증명했고
• 대중성과 인간미
〈투캅스〉 시리즈에서는
코미디와 생활 연기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 현역의 상징
〈라디오 스타〉에서
끝까지 존엄을 지키는 사람을 연기했는데,
그 얼굴은 연기라기보다
이미 살아온 삶에 가까웠다
그의 연기에는 과장이 없었다.
대신
눈빛 하나, 고개를 숙이는 각도 하나,
말의 속도로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의 별세 소식과 함께
혈액암 투병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그 대목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현역이란,
버티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온도를 잃지 않은 사람에게
붙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밥상으로 철학을 말하던 여자
김수미는
‘엄마’나 ‘할머니’ 캐릭터로만 남은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늘
자기 자신을 여자로,
현재형으로 놓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거칠게 웃다가도 섬세했고,
세게 말하다가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대표적인 얼굴들
• <전원일기>
‘국민 엄마’ 이미지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았다
• 예능과 토크
말의 에너지로
또 다른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 요리·식품 사업
김치, 간장게장 등
먹이는 방식으로
대중과의 연결을 확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은
대단히 생활적이었다.
“사람은 먹여야 정이 남는다.”
그는 실제로
끝까지 바쁘게 움직이다가
심정지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건,
그가 생전에 했다는 이 말이다.
“영정사진은 웃는 걸로 하고 싶다.
사림들이 울지 말고
‘재밌게 살다 갔네’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 말을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수미는
떠난 뒤에도
여전히 밥 냄새처럼 남는 사람이다.
현역이란
나이가 젊다는 뜻도 아니고,
일을 계속한다는 뜻도 아니다.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하루를
계속 움직이는 사람.
안성기는 눈빛으로,
김수미는 밥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한 칸씩 데워놓고 갔다.
그래서
그들은 떠났지만
식지 않았다.
독자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이 글을 읽는 동안
혹시 마음이 조금 느려졌다면,
그건 아마
두 사람이 남긴 온도 때문일 겁니다.
故 안성기 선생님은
설명하지 않아도 믿게 만드는 얼굴로
우리를 오래 안심시켜주었고,
故 김수미 선생님은
밥을 차리고, 손을 내밀며
사람을 사람답게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방식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애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더 큰 말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글을 닫으며
이렇게만 적어두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래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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