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그놈은 멋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나의 대도시의 사랑법

by 유혜성

28화

그놈은 멋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나의 대도시의 사랑법


요즘 나는 가끔,

<대도시의 사랑법>을 다시 꺼내 본다.


이상하지.

딱히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어떤 대사는 목을 한 번 꾹 누르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다음엔,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한 방울.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랑이 실패해서 남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어긋난 뒤에

사람이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더 따뜻하다.


그걸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내 방식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니까,

연애가 아니라 장면으로 남아버린 어떤 관계들.

설명하려 하면 유치해지고,

기억하려 하면 이상하게 선명해지는 그런 것들.


그리고 딱 그때,

조카가 댓글을 읽다 말고 고개를 든다.


“이모 근데.”


“응?”


“그 뉴욕에서 온 아티스트 있잖아.

그 사람… 완전 늑대 스타일이었잖아.”


나는 웃었다.

‘늑대’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나올 줄이야.

트렌드 보고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장면에서.


“그놈은 멋있었지.”


늑대의 유혹 같았고,

‘그놈은 멋있었다’ 같은 얼굴이었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통과한

그 시절의 남자였다.


조카는 진지하게 묻는다.


“근데 왜 안 됐어?

그 정도면 연애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어?”


이 질문은

댓글에서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그렇게 직진이었는데.

그렇게 솔직했는데.

그렇게 멋있었는데.


왜 아무 일도 없었냐고.

홍대의 그 작업실


(그날의 카메라는, 로맨틱코미디처럼 시작됐다)


그날은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차 한 잔 더 하실래요?”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정말 ‘그냥’ 자연스러웠다.


이 말이

어떤 관계의 시작이 될 때도 있고,

그냥 커피 한 잔으로 끝날 때도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아직 잘 몰랐다.


그 시절 홍대는 참 묘한 곳이었다.


낮에는 카페가 작업실 같고,

밤에는 작업실이 누군가의 집 같고,

새벽에는 집이 다시 작은 전시장처럼 느껴지던 동네.


창고를 개조한 공간들이

도시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고,

그 안엔 늘

‘진짜 밤‘이 있었다.


그의 작업실도 그랬다.


문을 열자마자

물감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커피 냄새가 뒤따랐고,

벽에는 큰 캔버스들이 기대어 있었고,

바닥에는 마르다만 붓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여기선 누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티스트들은 자기 방처럼 드나들었고,

누군가는 소파에 앉아 담배 대신 한숨을 피웠고,

누군가는 방금 떠오른 영감을 잊지 않으려고

종이컵에라도 메모를 했다.


우리는 작품 이야기,

앞으로 할 전시 이야기,

뉴욕에서의 생활 이야기 같은 걸

가볍게 주고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말이,

아주 조금, 나에게로 기울었다.


“기자님 같은 캐릭터,

한 번쯤 그리고 싶었어요.”


말이 참 이상했다.

칭찬도 아니고,

플러팅도 아닌데

듣는 사람을 괜히 조용하게 만드는 말.


그는 내 얼굴을 한 번 올려다보고,

사진을 몇 장 찍고,

연필로 슥슥 선을 그었다.


그 순간까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로.


그런데,

딱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현실적으로 들렸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 잠깐만요.”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 또라이가 왔어요.”


내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가 급하게 덧붙였다.


“기자님, 지금 마주치면

조금 시끄러워질 수 있어요.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려버린 얼굴이었다.


“잠깐만 몸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숨는 사람


나는 신발을 들고

작업실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미술품들이 쌓여 있는 공간.

캔버스와 프레임 사이,

사람 하나 숨기에는 조금 좁고

조금 애매한 틈.


나는 거기에

몸을 접듯이 끼워 넣었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무 관계도 아닌데.

마치 영화 속에서

바람피우다 들킬 뻔한 조연처럼

이렇게 숨어 있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했고,

조금은 서글펐다.


곧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울음,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쏟아내듯 터져 나오는 말들.


“나한테 왜 이래.”

“요즘 변했잖아.”

“나 잘 알잖아.”


그는

그 말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이런 밤을

여러 번 지나온 사람처럼.


그 여자는

이미 이름이 있는 갤러리 관장이었다.


팜므파탈.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


애인이 있었고,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사이클 속에서

그 아티스트,

그러니까, 그 늑대는

계속 싱글로 남아 있었다.


그 여자는

그를 놓지 않았다.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쥐고 흔들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그 모든 걸 받아주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그건 거의

감정적 가스라이팅에 가까웠다.


둘은 연인이 아니었지만,

분명한 동맹이었고,

서로의 뮤즈였다.


나는 창고 안에서

아주 작게 숨을 쉬었다.


소리 나지 않게.

존재감이 들키지 않게.


그리고

그때 알았다.


아,

이건

내가 들어갈 자리가 아니다.

조용히 빠져나온 밤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지금… 나가셔도 돼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의 나는

말을 하면

뭔가 무너질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왔을 때,

홍대의 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였다.


간판들은 여전히 반짝였고,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사이에서

나만

조금 느리게 걸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도시는 그대로였는데

내 마음만

조금 식어 있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딱 이만큼.


손바닥 하나만큼.


그는 이후에도

전화를 했고,

미안하다고 했고,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에서

숨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고,

조연으로 남고 싶지도 않았다.


그놈은 멋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날 밤

조용히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운이 좋았다.


그리고

그게

내가 그날 한

가장 멋있는 선택이었다.

남자 사람 친구, 나의 솔메이트


나의 대도시의 사랑법


그 시절,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홍대에서 기획 탐사를 하던 때였다.

게이바, 레즈비언 바, 트랜스젠더 바.

사람들은 “왜 굳이 그런 데를 가?”라고 물었지만, 나는 거기서 오히려 가장 ‘사람’ 같은 얼굴들을 봤다.


누구는 립스틱을 바르기 전에 한숨을 쉬었고,

누구는 가발을 고쳐 쓰면서 “오늘은 좀 덜 들키겠지?” 하고 웃었다.

처음엔 웃음이었고, 그다음엔 생활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공기 중에 처음 떠다니던 시기였다.

홍석천이 2000년에 커밍아웃하고, 세상이 한 번 크게 술렁였던 이후.

편견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도 있다”는 말이 ‘처음으로’ 뉴스 밖으로 걸어 나왔던 때.


나는 그 현장에서,

성별보다 정체성보다 먼저 도착하는 무언가를 봤다.


사람의 외로움.

사람이 사람을 찾는 방식.

그리고 말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시간.


그래서였는지, 그 무렵의 나는

연애를 ‘사건’으로 보지 않게 됐다.

연애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사랑보다 대화가 먼저였다.


그러다

정말 의외의 곳에서

그를 만났다.


철학 강의에서.


니체 이야기, 푸코 이야기.

어떤 날은 일본 만화 얘기하다가,

다음 날은 뜬금없이 “도시는 왜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까” 같은 질문을 던지던 사람.


처음부터 느꼈다.

말이 너무 잘 통했다.

취향이 너무 비슷했다.


그는 딱,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고

그저 ‘같이 앉아 있을 줄 아는’ 사람.

조카가 이 대목에서 늘 끼어든다.


“그럼 이모, 그 사람… 작가 지망생이었어?”


“응. 글을 썼어. 소설.”


“헐… 대도시의 사랑법 남자 같다.”


조카 말이 맞았다.

내 이야기는 그 작품과 다르지만,

어떤 결의 공기가 비슷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와 흥수는

서로의 이상형은 아니지만

둘만 이해하는 ‘모먼트’ 때문에 동거를 시작한다.

나는 그걸 보면서,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장면 하나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슬픈 이야기라서 운 게 아니었다.


“아, 나도 저런 시간이 있었지.”


그걸 인정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그는 연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제일 내 편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항상 말했다.


“야, 그 정도면 사귀는 거야.”

“아무 일도 없다는 게 말이 돼?”

“둘 다 문제 있는 거 아니야?”


그때는 ‘남사친’ ‘여사친’ 같은 단어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설명하기 애매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우리는 호텔을 좋아했다.


숙박이 아니라

호텔 로비 카페를.


한 달에 한 번쯤은

우리끼리 큰 결심을 했다.


“오늘은… 사치 부리자.”


호텔 뷔페.

로비 커피.

창밖 야경.


지금은 ‘소확행’이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될 테지만,

그때는 그런 말도 없었다.

그냥… 우리가 우리를 살리는 방식이었다.


그는 피지컬이 좋았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단단하고,

누가 봐도 “여자들이 좋아할 타입”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에게는 늘 여자친구가 없었다.

나도 남자친구가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연애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관심 있던 건

이런 것들이었다.


새로 나온 영화 한 편을 같이 보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번갈아 읽고,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쓸쓸할까” 같은 얘기를 하고

집에 가면 냉동실에서 얼려둔 과일을 꺼내 와그작 씹고

어떤 날은 새벽까지 철학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동시에 잠드는 것.


(맞다. 냉동 블루베리.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그런 장면이 지나갈 때,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의 손톱은 늘 깔끔했다.

정돈된 손끝이 좋았다.

그에게서 나는 샴푸 냄새, 바디로션 향이 좋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는 걸 좋아했고,

그는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스킨십이 없었던 게 아니다.

있었는데도

그게 ‘사건’이 되지 않았다.


그게… 신기했다.

그리고 좋았다.


우리는 서로를 욕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로를 좋아했다.

소유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이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 일도 없이

평생 살아도 되겠다.


그런데

인생은 꼭 그럴 때

한 줄을 더 써버린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 군대 면제 얘기, 사실은.”


그는 조심스럽게

자기 성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이름이어야 하는지,

그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이미

홍대의 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백 속에서

‘정체성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괜찮아. “


나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더 슬펐다.


마치 “괜찮다”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인 사람처럼.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떠났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슷한 걸 한다고 했고,

그곳에서 조금 쉬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묻지 못했다.

왜 떠나야 하냐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차인 것도 아니고,

잡을 명분도 없었다.


조카가 이 대목에서 분노한다.


“아니 이모, 그럼 이건… 헤어짐이야?”

“응. 헤어짐이지.”

“근데 사귄 적이 없잖아!”


나는 말했다.


“사귄 건 아니야.

우리는 연인이 아니라,

서로의 곁에 존재했던 사람이었거든.”


조카가 잠깐 멈췄다.


“그래서 더 이상한 헤어짐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식이 하나 들렸다.


그가 결혼했다는 말.


“여자랑.”


조카는 거의 소리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잖아.”


그는 바이였고,

그 선택은 그의 인생이었다.


이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아이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금은 멀리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어떤 문장이 목에 걸렸다.


“우리는 연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잃지 않았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그날 처음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대도시의 사랑법>의 마지막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


끝을 보면

내 이야기까지 끝나버릴 것 같아서.


알아도, 모른다.

모르는데도, 안다.


나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화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클럽도, 원나잇도 아니었다.

우리의 낭만은

로비의 낮은 조명,

뷔페의 접시 소리,

야경을 보는 침묵,

그리고 “오늘은 네 편”이라는 말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내 인생에

딱 한 명,

무작정 전화하면 달려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연인이 아니라

‘친구’였다는 게

오히려 더 애잔하다고.


왜냐하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우리는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그게 바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방식이었을 테니까.




조카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모, 그럼… 그 사람은

이모 인생에서 뭐야?”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한다.


“그냥…

내가 세상에 덜 외로워도 된다고 믿게 해 준 사람.”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인다.


“그놈은 멋있었어.

근데… 우리는 아니었어.”

TMI


대도시의 사랑법, 그리고 그 시절의 공기


• 2000년 홍석천 커밍아웃 이후,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개인의 비밀이 아니라 문화적 언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과 정체성,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던 시기였다.


•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2019)은 연애보다 관계, 로망보다 욕망을 먼저 말한 소설이다. 사랑의 성공담이 아니라, 도시를 함께 통과한 사람들의 시간과 동거와 우정을 기록한다.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은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의 ‘둘만의 동거’에 집중한 이야기이고,

티빙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2024)은 원작 연작을 확장해 ‘고영’이라는 인물의 시간으로 관계의 결을 더 깊게 다룬다.

•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연애 서사가 아니라,

연애가 아니어도 충분히 깊을 수 있었던 관계들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

https://youtu.be/JCstoNZbutM

Die Boy ‘Ba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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