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29화. 대도시의 사랑법 2:우리는 또 다른 타락천사였다

by 유혜성

29화


대도시의 사랑법 2


우리는 또 다른 타락천사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한 번 보면 다시 보지 않는다.

너무 마음에 들면, 더더욱.


다시 보면

처음 느꼈던 감정이

조금이라도 바래질까 봐.

그 이야기가

내 안에서 다른 모양이 될까 봐.


그래서

결이 맞았던 영화들은

늘 중간쯤에서 멈췄다.


끝을 보면

이야기가 닫혀버릴 것 같아서.

그 감정이

고정돼 버릴 것 같아서.


〈타락천사〉도

그런 영화였다.


끝까지 보지 않았고,

그 이후로

다시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그 영화를 다시 틀었다.


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서.


그건

분명 변화였다.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그 이야기를 품었던

나 자신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뜻이니까.

그 시절의 나는

제대로 방황하고 있었다.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끝난 뒤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가장 안정적이었던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은 꼭 한 번

자기 자신을 잃어본다.


나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


밤을 선택했고,

혼자 바에 앉는 법을 배웠고,

섞인 술 대신

데킬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칵테일처럼 예쁜 술은 싫었다.

위로하는 척하는 맛도 싫었다.


데킬라는

정직했다.


손등에 소금을 올리고,

혀로 핥고,

술을 넘기고,

마지막에 레몬을 깨무는 순서.


그 안에는

덜어낼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필요한 감정만 남아 있었다.


도망칠 틈이 없었다.


그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마치

상실을 대하는 태도 같아서.

그날도

홍대의 바에 혼자 앉아 있었다.


주변 테이블에서는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온더락 위스키들,

천천히 녹는 밤들.


나는

얼음 없는 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데킬라, 스트레이트.


그때

문이 열렸다.


찬 공기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긴 코트를 휘날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머리는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멀쩡했는데

어딘가 하나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딱 보는 순간

이상한 겹침이 일어났다.


아,

금성무 닮았네.


아니,

<타락천사> 속

밤에만 살아 있던

그 얼굴 같네.


그는 바에 앉았고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데킬라요.”


그 말이

귀에 오래 남았다.


잠시 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데킬라… 드세요?”


그건

작업도 아니고

유혹도 아니고

그냥

같은 밤에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그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무 약속 없이 시작됐다.

<타락천사> 속 인물들은

모두 밤에만 살아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

그를 짝사랑하는 파트너.

말을 잃은 남자,

상실을 웃음으로 덮는 여자.


그들은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고,

사랑하면 안 되는 관계였고,

그래서 더

미친 듯이 뛰고 웃고 울었다.


그날의 우리도

딱 그랬다.


우리는 술집 문을 나서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홍대 골목을 가로질러

자연스럽게 시합이 됐다.


네온사인이 번지는 골목,

젖은 아스팔트 위로

신발 소리가 엉켜 튀었다.


“야, 그건 반칙이지.”

“이게 왜 반칙이야.”


숨이 차서 욕이 먼저 나왔고,

욕하다가 웃음이 터졌고,

웃다가 또 속도를 냈다.


폐 깊숙이 공기가 차올라

더는 달릴 수 없을 때쯤

우리는 다시 바에 돌아왔다.


술은 이미 반쯤 깼지만

이번엔 다트를 들었다.


과녁을 맞히면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고,

빗나가면

그게 더 웃겨서

의자에 기대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또 웃었다.


왜 그렇게까지 웃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 순간 멈추면

각자의 상처가


숨 고를 틈도 없이

우릴 따라잡을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왜 데킬라를 마시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그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은

너무 멀리 가 있었고,

너무 복잡했고,

그래서 그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걸.


그는 말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같은 밤을

같은 속도로

건너고 있었을 뿐이다.



문제의 그날 밤도

그랬다.


술을 마시고

각자 계산을 하려는데

그의 카드가 멈췄다.


삑.

다시 삑.


카운터 위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 번만 더 해볼게요.”


다시,

삑.


마그네틱이 닳은 걸까.

그날따라

너무 추워서였을까.


그는

괜히 지갑을 다시 열었다 닫았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마신 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금이 없어요.”


나는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줬다.


그는 그 돈을

정말 조심스럽게,

마치 중요한 증서처럼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할 만큼 오래 남았다.


그날

카드가 정상적으로 됐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은

대개

이런 사소한 오류에서

시작된다.

다음 날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이번에는

꼭 제대로 대접하고 싶다고.


하필이면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대학로는

연인들로 가득했다.


길 위엔

팔짱 낀 사람들,

케이크와 꽃다발을 든 사람들,

약속된 얼굴들이 흘러 다녔다.


어디를 가도

“예약하셨어요?”라는 말이

먼저 돌아왔다.


우리는

예약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지하에 있는 조용한 바.


크리스마스 캐럴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밸런타인 17년 산을 시켰다.


어른처럼

잔을 기울이고,

어른처럼

천천히 취했다.


말은 많지 않았고,

잔이 비는 속도도 느렸다.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확 식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허옇게 퍼졌다.


“춥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웃었다.


결국

성균관대 앞 떡볶이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어묵 국물 냄새가 밀려왔다.


어묵 국물에서

김이 올랐고,

플라스틱 컵이

탁, 하고 놓였다.


따끈한 국물이

속을 데웠고,

마음까지 풀어줬다.


어묵을 집어 먹으며

우리는 웃었다.


방금 전까지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물을 후후 불고 있었다.


어른처럼 시작해서

아이처럼 끝나는 밤.


원나잇도 아니고,

올나잇도 아니고,

그저

그 시간을

함께 쓰는 사람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밤은

유난히 선명했다.



조카는 말했다.


“이모,

그 사람 거지 아니야?”


나는 웃었다.


“아니야.

그땐 그냥

밤에만 길 잃은 사람이었어.”


상실의 맛을 본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치려 들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고친다는 건

늘 폭력에 가깝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망가진 상태 그대로

같은 공간에 두는 법을

조용히 배웠을 뿐이다.


나는 마치

유기된 강아지를 돌보는 사람처럼

그의 시간을 케어했다.


밥을 챙기듯

하루를 먹이고,

산책을 시키듯

햇볕을 보여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옆에 그냥 앉아 있었다.


부르지도 않았고

끌어당기지도 않았고

다만

도망치지 않게

같은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임시 보호처였다.


입양도 아니고,

소유는 더더욱 아니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큰 약속도 없는 상태.


다만

지금 이 밤을

혼자 버티지 않게 해주는 곳.


그를 돌보는 동안

내가 회복됐고,

내가 웃는 동안

그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건

누가 더 나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맥박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그저

같은 속도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낮에도 만났다.


커피를 마시고

말없이 걸었다.


서점에 들어가

각자 다른 책을 집어 들고

같은 창가에 섰다.


책에 집중하지는 않고,

그냥 같은 속도로

페이지를 넘겼다.


햇볕이 드는 벤치에 앉아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마치

인생을 한 번쯤은

다 살아본 사람들처럼.


말이 사라진 건

지루해서가 아니라

몸의 긴장이 풀렸다는 신호였다.


혈압이 내려가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밤에 그렇게

웃고, 뛰고, 소리 지르던 사람이

낮에는

커피가 식는 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낮의 그는

반듯했고,

밤의 그는

여전히 타락천사 같았다.


어느 쪽이 진짜였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사람은

회복 중일 때

서로 다른 얼굴을

같은 몸에

잠시 함께 두고 산다.

그래서

나는 〈타락천사〉를 다시 봤다.


왕가위 감독의 1995년 영화.

금성무, 여명, 이가흔, 양채니, 막문위.


그 영화 속 사람들도

낮에는 살 수 없고

밤에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말을 잃은 남자(금성무)는

오토바이를 타고

밤의 도시를 질주한다.


실연을 겪은 여자(양채니)는

그의 오토바이에 올라

아무 말 없이

그 밤을 견딘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이미 한 번 잃어본 사람이다.


킬러(여명)는

감정을 지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를 사랑한 파트너(이가흔)는

사적인 감정이 금지된 채

그의 흔적만을 정리했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면 안 되는 관계였고,


그래서

사랑을

속도와 소음으로 바꿨다.


뛰고,

소리 지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문을 부수듯 열고,

밤을 난폭하게 사용했다.


그게

그들이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으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양채니는 다시 스튜어디스가 된다.


정갈한 유니폼,

차분한 얼굴,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


금성무는

그녀를 알아보고

온몸으로 춤을 추며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애쓰지만,


그녀는

모른 척한다.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이제는

알아보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을까.


그 장면에서

나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건

회복의 증거였다.


이 영화가

타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건너는 이야기라는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랬다.


밤은

우리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견디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데킬라를 마시지 않아도 됐다.


섞인 술로

마음을 속이지 않아도,

소금과 레몬으로

아픔을 밀어붙이지 않아도 됐다.


그건

이별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정말

하면 안 되는 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잠시 같은 밤을 건너며

숨을 고른 시간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일까.


그 밤의 우리는

타락천사가 아니라

청춘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90년대 학번이었다.


TMI BOX


<타락천사>, 그리고 그 시절의 우리


<타락천사> (Fallen Angels, 1995)

감독: 왕가위

출연: 여명, 금성무, 이가흔, 양채니, 막문위


• <타락천사>는

<중경삼림>과 같은 세계관에서 파생된

도시의 밤에 대한 또 다른 변주다.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계가 어긋난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밤에만 제대로 존재한다.

킬러는 감정을 숨겨야 하고,

파트너는 사랑을 숨겨야 하며,

말을 잃은 남자는 속도로 대신 말하고,

실연을 겪은 여자는

금성무의 오토바이에 올라

말없이 밤을 견딘다.


• 평론가들은 〈타락천사〉를

“90년대 도시 청춘의 정서적 후유증”이라 불렀다.

성장은 했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

사랑은 하고 싶지만

책임질 준비는 안 된 마음.


• 그래서 이 영화엔

정상적인 연애도,

완전한 이별도 없다.

대신

달리기, 질주, 소음, 과잉 행동만 남는다.

그건 타락이 아니라

견디는 방식이었다.


• 90년대 청춘에게

<타락천사>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까지 사는 걸까”라는 질문에

가장 솔직하게 답해준 영화였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웃고, 뛰고, 미쳐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회복했다.


TMI BOX

데킬라, 상실을 삼키는 방식


• 데킬라는 멕시코 할리스코(Jalisco) 지역에서

아가베(Agave)라는 식물로 만든 증류주다.

한때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술,

값싸고 거친 술로 여겨졌다.


• 데킬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방식은

의식에 가깝다.


소금을 올리고

혀로 핥고

한 잔을 넘기고

레몬(혹은 라임)을 깨문다.


이 순서는

아픔을 우회하지 못하게 한다.


• 그래서 데킬라는

위로하는 술이 아니라

직면하게 만드는 술이다.

달콤하지 않고,

천천히도 아니다.


• 심리학적으로

사람이 데킬라 같은 강한 술을 찾을 때는

“감정을 미루고 싶지 않을 때”라는 해석이 많다.

아프면 아픈 채로

한 번에 넘기고 싶을 때.


• 90년대, 2000년대의 밤에서

데킬라는

취향이 아니라 태도였다.


섞지 않는 선택,

예쁘지 않은 잔,

짧은 한 모금.


그건 말하자면

상실을 대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었다.


결국, 타락천사란


• 타락천사는

악해진 사람이 아니다.

부서졌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절

또 다른 타락천사들이었다.


상처를 안고,

밤을 쓰고,

속도로 버티며

어른이 되는 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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