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30화 대도시의 사랑법 3 :식물성의 사랑

by 유혜성

30화

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3 : 식물성의 사랑




친구들은 꼭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그 남자는 어떻게 만났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길에서 주웠어.”


“뭐를?”


“사람 하나.”


유기된 강아지 같았다고 하면

다들 웃는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설명한다.


밥을 먹였고,

산책을 시켰고,

햇볕을 보게 했다고.


처음엔 눈빛이 흐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빛깔이 돌아왔다고.


사람도

잘 키우면

괜찮아지더라.


그 말까지 하면

대화는 늘

그쯤에서

웃음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질문이 따라온다.


“그럼 너희도

강아지나 고양이

키울 생각은 없어?”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바라본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한다.


“이미 키우고 있잖아.”


“어디에?”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본다.


“설마…

나?”


우리는

동시에 웃는다.


서로가 서로를

밥 주고,

산책시키고,

햇볕 쬐게 해주는 사이.


우리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키우지 않는다.


대신

식물을 키운다.


말없이 자라는 것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죽고

관심이 없으면 말라버리는 것들.


욕망 없이도 살아 있고,

속도를 내지 않아도

조금씩 자라는 것들.


그게

우리가 선택한

사랑의 형태였다.

그는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마치 오랜 시간 길거리에서

유기된 청춘이었거나,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처럼.


그가 누워 있는 방의 이름을

우리는 농담처럼

‘회춘’이라고 불렀다.


그 방에 누워

그는 말없이 회복했고,

나는 굳이 깨우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천천히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느린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밤 산책을 나갔다.


어떤 날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뜬금없이 달리기 시합을 했고,


어떤 날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생활은 있었다.


낮에는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고마워.”


“뭐가?”


“나를 주워와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마워.”


“뭐가?”


“존재해줘서.

살아 있어줘서.”


그는 잠시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을 했고,

돈도 벌어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

하루 종일 잠만 자던 사람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른이었지만

몸만 어른이었을 뿐,

사랑은 아직

식물 같았다.


하루하루

햇빛을 쬐고,

필요할 때만 물을 주며

조용히 자라는 사랑.



친구들은 종종 말했다.


“너희 진짜 이상해.”

“네가 손해 보는 거 아니야?”


그의 친구들은 말했다.


“복 받은 줄 알아라.”


하지만 우리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언제라도 떠나도 괜찮다는 마음.


마치

입양한 강아지에게

목줄을 풀어둔 것처럼.


그는

가지 않았다.


저녁때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밖에서 한참을 뛰놀다

밥때가 되면

집을 찾아오는 강아지처럼.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왔구나.”


“누구?”


“너.”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조금 더 뒤, 진실 고백


어느 날

내가 물었다.


“그날 카드가 됐어도

우리는 계속 만났을까?”


그가 말했다.


“아마 만났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는 잠시 망설이다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날 카드가 두 장 있었어.”


폐기해야 할 카드 하나를

그냥 넣어둔 채였고,

그날

실수처럼

그 카드로 계산했단다.


“그럼 일부러였어?”


“그땐

그게 맞는 선택 같았어.”


“돈은?”


“없었어.”


사실은

택시를 같이 타고

집까지 바래주고 싶었는데,

네가 거절할 것 같아서

그냥 없다고 했다고.


“만 원 주길래

그냥 받았어.

공짜잖아.”


나는 웃었다.


“나 진짜

거지인 줄 알았잖아.”


그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감동한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웃음소리 하나,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

밥을 잘 먹는 모습,

잠을 깊이 자는 밤,

묵묵히 일하러 나가는 뒷모습까지

모두가 감동이었다.


그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의 존재를

지켜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서로의 보호자였고,

서로의 임시 보호처였고,

어쩌면

아무 약속 없이도 오래 남는

영원한 소울메이트였을지도 모른다.


엔딩:초인종 장면


조카는 아직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사진도 없고,

설명도 없고,

이야기는 늘

중간에서 멈췄으니까.


“이모,

그래서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야?”


나는 부엌에서

화분에 물을 주며 말한다.


“조금 있으면 알게 돼.”


조카는 소파에 앉아

괜히 손톱을 만지작거린다.


“나 왜 이렇게 떨리지.”


나는 웃는다.


“나도 그래.”


그때였다.


띵동.


초인종 소리.


조카가 벌떡 일어나

거의 뛰다시피 현관으로 간다.


“내가 열어도 돼?”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연다.


그리고,


“꺄악!”


짧은 비명.

놀람인지, 웃음인지

구분되지 않는 소리.


나는

부엌에서

물을 끄고,

천천히 손을 닦는다.


문 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식물은

잘 자라고 있다.


에필로그


며칠 뒤.


조카와 나는

동네 술집에 앉아 있었다.


조명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곳.

괜히

이야기하기 좋은 밤이었다.


우리는 웃고 있었고,

조카는 자꾸 나를 힐끔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조카가 말했다.


“이모.”


“응?”


“아직 안 죽었네.”


나는 피식 웃었다.


“왜,

벌써 죽을 줄 알았어?”


조카는 잔을 만지작거리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니…

아직도

이야기할 게 남아 보여서.”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두 분 이야기

너무 재밌게 하셔서요.

혹시…

합석해도 될까요?”


딱 봐도

서른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


조카가

나를 쳐다봤다.

묻는 눈빛이었다.


나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짧은 정적.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나는 잔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그들이

안도하려는 순간,

나는 말을 이었다.


“대신

남편이 있어서요.”


공기가

한 박자 늦게 멈췄다.


“아…

네…”


어색한 웃음.


그중 가장 용기 있어 보이던 한 명이

괜히 한 번 더 던졌다.


“그래도 뭐…

대화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한데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90년대 학번이라서요.”


그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어…

우린 94년생인데요.”


옆에 있던 친구가

툭 치며 말했다.


“야,

학번이라잖아.

우리랑 다르대.”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카는 옆에서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었다.


“이모, 진짜…”


나는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

아직 안 끝났어.”


조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이모 아직…

살아 있네.”


나는 웃었다.


〈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함께 타줘서, 고마웠습니다.


(엔딩)

90년대 학번 열차, 운행을 마치며


친애하는 승객 여러분께,


솔직히 고백하자면

90년대는 제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아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을 거예요.


바로 그 시절,

제 20대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30주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90년대라는 시간으로 향하는 열차를 운행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짧지 않은 반년.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타임머신을 타듯 그 시절을 건너갔습니다.


어떤 날은 웃었고

어떤 날은 벅찼고

어떤 날은 아련했고

어떤 날은 솔직히… 많이 아팠습니다.


젊은 날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리움이기도 했고,

후회이기도 했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연재를 하는 동안

저는 늘 몸살처럼 아팠고

자주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는 늘

무언가를 붙잡으려다

떠나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움이었을까요,

젊음이었을까요,

청춘이었을까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리워했던 사람은

그 시절의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때의 나에게

이제야 말을 걸 수 있게 되었거든요.


“괜찮아.”

“너는 불안해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충분히 흔들려도 되는 나이였고,”

“결국 너는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사람이야.”


그 말을

30년 가까이 돌아서

이제야 해주게 되었습니다.


이 열차에는

늦잠을 포기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올라탄 분들도 있었고,

읽고 댓글 달고 다시 잠든 분들도 있었고,

자신의 90년대를 떠올리며

조용히 울고 웃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 연재를 하는 동안

어디로도 여행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니, 떠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먼 여행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90년대로.


삐삐와 시티폰,

노래방과 비디오방,

IMF와 무너진 다리들,

열정과 방황,

사랑과 상처,

그리고 끝내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그 치열함이 몸에 배어

지금도 잘 살고 있으면서

“이게 사는 게 맞나?”

묻는 세대.


여전히 현역이고,

여전히 무대 위에 있고,

아직 내려올 생각도 없는 사람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고

자기 자신을 갱신하며

조용히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MZ와 알파세대를 바라보며

우리는 고개를 젓지 않습니다.

너무 닮아 있으니까요.

마치 거울처럼.


조카와의 대화 속에서

저는 자주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봅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학번은

한 번쯤은

제대로 다시 불려야 할 이름이라고.


이 이야기는

세대 차이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대와 이어지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안에

제 사랑 이야기와

제 어린 시절과

제 개인적인 고백을

조심스럽게 함께 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열차가

여기서 종착역일지,

아니면

시즌 2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영화, 드라마로 만들라고 하고,

누군가는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해줍니다.


저도…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주세요.

이 열차는

승객이 만드는 노선이니까요.


30주 동안

기관사로서

무사히 운행했는지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함께 타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90년대는 아팠고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

우리는 그만큼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제야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탑승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0년대 학번 열차

기관사 유혜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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