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늑대를 말하던 시대:욕망이 로망이던 시절의 얼굴들
조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모, 요즘 이모 글 있잖아.
휴먼 인 더 울프…
나 솔직히 그 제목부터 놀랐어.”
“왜?”
“늑대라는 단어를 지금 쓰는 게 신기했거든.
근데 읽다 보니까
2030한테도 완전 필요한 얘기더라.”
나는 웃었다.
‘늑대’라는 단어를
트렌드 보고서 말고
일상 대화에서 쓰게 될 줄은
나도 예상 못 했다.
분석은 이성이었고,
늑대는 감정이었다.
한때는 너무 흔해서
굳이 설명도 필요 없던 말.
그러다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진 단어.
늑대.
조카는 말을 이었다.
“근데 예전엔 말이야,
짐승남 이런 말도 있었잖아.
좀 세고, 직진이고,
영화 같은 캐릭터.”
잠깐의 뜸.
“난 그런 캐릭터,
지금 봐도 솔직히
멋있는 것 같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땐 진짜 그랬어.
좋아하면 숨기지 않고,
다가가면 ‘대시’였고,
조금 세면
‘늑대 같다’고 했지.”
그리고 덧붙였다.
“적어도 그땐,
그 감정들이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다뤄지진 않던 시절이었어. “
말이 끝나자
기억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이,
이미 몸 어딘가에
저장돼 있던 장면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욕망을 조심하기보다
차라리 로망처럼 소비하던 시절로
생각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갔다.
적극적이라는 것이 로망이던 시절
그 시절엔
정말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돌았다.
“그놈은 멋있었다.”
2004년, 같은 해.
같은 작가의 인터넷 소설에서 출발한
두 편의 영화가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
〈늑대의 유혹〉
그리고
〈그놈은 멋있었다〉.
제목부터 지금 보면 웃기다.
늑대, 놈, 유혹, 멋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둘 다 원작은 귀여니.
둘 다 그 시절
10대와 20대의 심장을
정확히 겨냥한 이야기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과하고,
조금 만화 같고,
조금 위험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그 시절 우리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얼굴을
‘늑대’라고 불렀고,
그걸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먼저 〈늑대의 유혹〉.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비 오는 날.
패싸움을 피해 달리던 남학생이
갑자기 멈춰 선다.
이유는 없다.
설명도 없다.
그냥,
길가에 서 있던 여학생의 우산 속으로
몸을 들이민다.
우산 아래는 좁고,
피할 틈도 없이
어깨가 닿는다.
빗소리만 남고,
시간이 잠깐 멈춘다.
바람이 불고,
우산이 살짝 들리면서,
보인다.
믿기지 않게
잘생긴 얼굴.
강동원.
그 순간,
도망치던 소년은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모든 게 설명된 것 같은 남자만 남는다.
말은 없고,
서사도 없다.
그런데도
이해된다.
그래서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광고에서,
현실에서까지
끝없이 복제됐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가
사귀게 됐다”는 이야기.
농담 같기도 하고,
어쩐지 진짜 같기도 한 말들이
그 시절엔
자주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하지만 그땐
이상하지 않았다.
우연이
로맨스가 되던 시대였고,
적극성이
무례가 아니라
용기로 읽히던 때였으니까.
같은 해,
<그놈은 멋있었다>가 나왔다.
이번엔
송승헌, 정다빈.
이쪽의 남자는
우산 속으로 들어오진 않는다.
대신
가만히 서 있지도 않는다.
말수는 적고,
태도는 직진이고,
좋아하면 숨기지 않는다.
싸움도 많고,
질투도 많고,
조금은 거칠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불편할 수 있는 장면들도 많다.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그놈은 멋있었다고.
두 영화의 결은 다르지만
남자 주인공의 핵심은 닮아 있다.
잘생겼고,
주저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남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건
이야기보다
캐릭터였다.
그래서 그 시대를 설명하는 말은
굳이 길 필요도 없었다.
“늑대의 유혹.”
그리고
“그놈은 멋있었다.”
조금 거칠고,
조금 마초적이고,
좋아하면
숨기지 않는 남자.
그게
그 시절의 로망이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심스럽게 다시 읽히는 장면들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영화 같은 사랑을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저런 남자를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는 욕망.
그건
지금보다 더 무모했고,
지금보다 덜 계산적이었고,
지금보다 조금 더 솔직했던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가끔,
요즘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이제 저런 우산 장면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게 됐을까.
시대는 더 안전해졌는데,
로망은
조금 작아진 건 아닐까.
그 장면을 이야기해 주자
조카가 바로 끼어들었다.
“와… 미쳤다.”
“뭐가?”
“아니, 예전 영화들 보면
남자들 진짜 직진이네.”
잠깐 멈췄다가 덧붙인다.
“요즘 기준이면
완전 테토님이잖아.”
나는 웃었다.
“그땐 그게 멋있었어.”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왜 멋있다고 했는지는
알 것 같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적극적인 남자가 로망이던 시대는
곧 이런 질문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연애의 목적은 뭐였을까.”
그 질문을
가장 노골적으로 던진 영화가 있었다.
<연애의 목적>.
그렇게
‘늑대 같은 남자‘가 로망이던 시대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다음에 등장한 건
더 솔직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연애의 목적은 뭐야?”
2005년,
영화 <연애의 목적>이 나왔다.
박해일, 강혜정 주연.
19금.
그때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설명부터 필요했다.
대사는 노골적이었고,
영화는 성적인 긴장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좋아하는 감정이 먼저가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고,
관계가 먼저 시작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아주 대놓고 묻는다.
연애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랑인가,
관계인가,
아니면 그냥, 섹스인가.
이 질문이 불편했던 이유는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이미
공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그 변화를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밥 먹다가 성 이야기,
어젯밤 만난 남자 이야기,
관계에 이름 붙이지 않는 여자들.
처음엔 다들 그랬다.
“할 얘기가 그것밖에 없나?”
“왜 이렇게 대놓고 말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건 자극이 아니라
처음으로 욕망이 공공연히 말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는 걸.
<연애의 목적>은
그 흐름을
한국적인 현실 한가운데로
툭 떨어뜨린 영화였다.
배경은 학교.
강혜정은 교생,
박해일은 정교사.
게다가 그는 유부남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때도
논란이 컸다.
불쾌하다는 말,
위험하다는 말,
“이걸 왜 영화로 만드냐”는 말까지.
하지만 이 영화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그 관계를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인물로 그려지고,
권력과 욕망이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그는 벌을 받는다.
감옥에 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야해서 ‘ 기억되는 영화가 아니다.
노골적인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끝까지 현실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불편하다.
그 시절,
<연애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자극물이 아니라
극장에 걸린 영화였다.
어둠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끝까지 봐야 하는 이야기였고,
웃고 넘길 수만 없게 만드는
정면의 질문을 남겼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이거였다.
그래서,
연애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사랑이었나,
관계였나,
아니면 그저
‘하는 것‘이었나.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피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연애를 더 이상
꿈처럼 말하지 않았다.
사랑은 사랑이었고,
관계는 관계였고,
그 사이의 욕망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기승전 ‘연애’가 아니라,
기승전 ‘관계’였고,
기승전 ‘자는 것’이었다.
‘원나잇’이라는 말이
아직은 조금 부끄럽고,
그래서 더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
늑대의 유혹이
“저런 남자, 한 번쯤”이었다면,
〈연애의 목적〉은
“그래서, 우리는 왜 만나는가”였다.
로망이 욕망으로 넘어가던 순간.
그리고
그걸 처음으로
영화가 대신 말해주던 시기였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시절,
욕망은 이미
극장 밖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홍대 클럽에서는
‘원나잇‘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돌았다.
정확히 말하면,
홍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남에도 클럽은 있었고,
이태원은 말할 것도 없이
늘 밤의 얼굴을 품고 있던 동네였다.
하지만
홍대는 조금 달랐다.
낮의 홍대는
예술가들의 놀이터였다.
프리마켓이 열리고,
밴드 음악이 흐르고,
젊은 감각들이 실험처럼 오가던 공간.
그리고 밤이 되면,
그곳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젊은 애들이,
정말 젊기만 한 애들이
모여들던 곳.
돈보다 에너지,
계획보다 충동,
내일보다 오늘을 믿던 사람들.
춤추고,
술 마시고,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흩어지는 관계.
그 모든 게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뜨겁고,
무엇보다
젊음 그 자체로 허용되던 공간.
누군가는 그걸 자유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불안하다고 느꼈다.
그 한가운데에는
‘팜므파탈‘이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위험하고,
매혹적이고,
남자를 흔드는 여자.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도 있었고,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도 있었다.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숨기지 않던 시대의 얼굴에 가까웠다.
그래서
<연애의 목적>이
스크린 위에서 던진 질문은,
사실
아주 새로운 질문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홍대의 밤에서는,
젊음이 서로를 태우던 테이블 위에서는,
그 질문이
현실로 살고 있었으니까.
그 무렵 나는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의 아티스트 몇 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를 갖게 됐다.
전시 이야기,
작업 이야기,
뉴욕에서의 생활 이야기까지.
술잔은 천천히 돌았고,
조명은 낮았고,
대화는 적당히 흘렀다.
그런 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가 늑대라는 걸
전혀 숨기지 않는 사람.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원하면 원한다고 말했다.
망설임도, 예열도 없었다.
“난 네가 좋아.”
“난 너랑 있고 싶어.”
말은 짧았고,
속도는 빨랐다.
그 태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 노골함이
순수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다.
사랑을 숨기는 법보다
표현하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조금 불편했다.
그는 어느 날
전화로도 말했다.
“나 진짜 사랑해요.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그 말은
그 사람에게는
꾸밈없는 고백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언어를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아티스트로서는
꽤 정확한 사람이었다.
필터링되지 않은 욕망,
아이 같은 솔직함,
좋은 건 좋다고 말하는 태도.
그는 나를 좋아한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말했고,
주변 사람들도 그걸 알았다.
“작가가 좋아하는 분 오셨어요.”
“오늘 뮤즈 오신 날이네.”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은 묘하게
사람들 사이에 작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고,
나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는데도
어디를 가면
이미 무언가가 시작된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남의 연애를 참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 연애가 아닌 상태를
가장 흥미로워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다 일어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그는 순수하게 달려들었고,
나는 순수하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그가 나쁘거나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그림으로 옮겨버리는 사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작품 안에 먼저 남겨버리는 사람.
그의 그림 속 어딘가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건
로맨틱하다기보다는
조금 숨이 막히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창작의 원천으로
호명되는 일이
항상 축복은 아니라는 걸.
그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걸
거리 조절이 필요한 감정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불편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마저도 하나의 장면이고,
하나의 풍경이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보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 흐름 위에
유밀레가 있었다.
밀레니엄을 상징하듯
이름을 바꾸고,
몸과 섹스, 욕망에 대해
아주 솔직한 언어로 말하던 인물.
똑똑했고,
야망이 분명했고,
여자가 성공하고 싶고
정상에 오르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 빨랐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몇 가지 논란 속에서
조용히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으로 운영하던 회사에서
이사로 함께 일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유밀레요…
사람 자체는 참 괜찮았어요.
욕심도 있었지만,
그게 나쁜 방향의 욕심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세상이 그 말을 받아줄 준비가
아직 안 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속도가 달라서
혼자가 되어버린 사람 같아서.
그리고
낸시 랭.
나는 그녀를
아주 초기에 인터뷰했다.
신인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놀랄 만큼 순수했고,
무척 예술적인 사람이었다.
퍼포먼스는 과감했지만
속은 아이 같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영원한 막내 같은 얼굴.
모든 남자는 오빠였고,
모든 여자는 언니였고,
늘 품에 안은 고양이 인형처럼
세상에 안기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하얗게 분칠 한 얼굴,
비키니와 하이힐,
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
사람들은 그걸
기행이라고 불렀지만,
내 눈에는
자기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솔직한 언어처럼 보였다.
유밀레와 낸시 랭,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했고,
여자가 중심에 서고 싶다는 말을
검열하지 않았다.
너무 솔직했고,
너무 빨리 알려졌고,
시대보다 앞서 있었다.
그래서 오해받았고,
그래서 쉽게 소비됐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들은 실패한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먼저 통과해 버린 얼굴들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워졌던 사람들.
그 사실만은
조용히 남겨두고 싶다.
조카가 물었다.
“이모,
그럼 지금은 뭐가 달라진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라진 게 아니라
관리되고 있는 거야.”
조카가 짧게 물었다.
“뭐가?”
“욕망.”
지금은
늑대처럼 달려들지 않는다.
대신
표현을 조절하고,
언어를 관리하고,
욕망을 설계한다.
그래서
짐승남은 사라졌고,
조심스러운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저
말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해졌고,
조금 덜 웃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편지를 몰래 읽고 있는 너에게)
너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했고,
망설이기보다 먼저 다가갔고,
속도를 줄이기보다
몸을 던지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서툴렀고,
조금은 거칠었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건,
너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
마음이 생기면
계산부터 하지 않았고,
상처를 예상하면서도
한 번쯤은 움직였다.
결과보다
순간을 더 믿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말을 고르고,
타이밍을 재고,
마음을 한 박자 늦춘다.
그래서 가끔은
그때의 네가
너무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지금의 기준으로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은
멈출 줄도 알고,
말을 아낄 줄도 안다.
한 번쯤은
진심을 끝까지 써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조금 조용해졌다고 해서
너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늑대여도 좋고,
늑대였던 시간을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어도 좋다.
만약 지금
이 편지를 읽다가
입꼬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갔다면,
그건 아직
그 시절의 네가
네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식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 시절의 늑대에게.
너는 틀리지 않았고,
지나치지 않았고,
단지
조금 솔직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지금도
누군가를 좋아할 때,
무언가를 시작할 때,
네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
“그래도 우리,
아직 무대 위에 있네.”
조명이 예전만큼 밝지 않아도,
박수가 크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이 드라마에서
아직 퇴장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시절의 심장은
지금도
네 안에서
조용히 뛰고 있으니까.
조카가 이 편지를 읽고 말했다.
“이모,
그 시절 늑대들…
지금 보면 좀 귀여운 것 같아.”
“왜?”
“자기 마음에 솔직했다는 게
요즘엔 오히려
용기 같거든.”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그 늑대들…
아직 안 사라진 거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응.
사라진 게 아니라
조금 숨 고르고 있는 거야.”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끔은…
울어도 되겠다.”
지금은
조금 조용해졌을지 몰라도,
말을 고르게 됐을지 몰라도,
예전처럼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게 됐을지 몰라도.
우리는 아직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무대 위에 있다.
조연으로 밀려난 것도 아니고,
이미 내려온 사람도 아니다.
대본이 조금 바뀌었을 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가슴 어딘가가
아주 잠깐이라도
뜨거워졌다면,
그건
아직 끝낼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
예전처럼 무모하지 않아도,
예전만큼 솔직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자기 마음 편을 들어줘도 된다.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의 심장은
아직 당신 안에서
가만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이 TMI는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욕망이 아직 관리되지 않았고
표현이 계산되지 않았던 시대를
가장 먼저 통과해 간 얼굴들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1. 늑대의 유혹 (2004)
• 원작: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
• 주연: 강동원, 이청아
• 핵심 장면: 비 오는 날, 우산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야기보다 장면 하나가 로망이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설명보다 이미지
• 대화보다 순간
• 망설임보다 행동
그 이후로
우산은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연애의 시작 장치가 됐다.
지금 보면 다소 만화 같지만,
그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저런 우연,
한 번쯤은 괜찮아. “
2. 그놈은 멋있었다 (2004)
•‘원작: 귀여니
• 주연: 송승헌, 정다빈
<늑대의 유혹>이 우산 속 한 컷의 판타지였다면,
<그놈은 멋있었다>는
조금 더 직선적인 남성 판타지였다.
• 말보다 행동이 빠른 남자
•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 태도
• 거칠지만 확신에 찬 직진형 캐릭터
“그놈은 멋있었다”라는 제목은
평가라기보다 시대의 합의에 가까웠다.
그 시절엔
이런 남자 캐릭터가
문제적이기보다
‘영화 같은 사람’으로 소비됐다.
3. 연애의 목적 (2005)
.• 주연: 박해일, 강혜정
• 등급: 19금
•‘특징: 로망을 걷어내고 욕망을 전면에 둔 영화
이 영화는 질문 하나로 기억된다.
연애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랑인가,
관계인가,
아니면 그냥, 섹스인가.
이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야해서가 아니라,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다.
연애를 처음으로
‘말해지는 욕망‘으로 끌어낸 영화
4. 섹스 앤 더 시티
•‘밥 먹으면 성 이야기
•‘어젯밤 잤던 남자 이야기
• 여성 욕망을 숨기지 않는 서사
불편하다는 반응도 많았지만,
그건 노골적이어서가 아니라
침묵을 깼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국 영화·예능·인터뷰에도
‘성‘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5. 원나잇 · 클럽 · 팜므파탈
그 시절 홍대에는
이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돌았다.
• 원나잇
• 클럽
• 팜므파탈
도덕의 문제라기보다
욕망을 숨기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
•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
그건 일탈이라기보다
캐릭터였고,
그 시대가 허용한 얼굴이었다.
6. 너무 앞서갔던 얼굴들
유밀레(남윤정)
• 밀레니엄을 상징하듯 이름을 바꾸고
• 몸·섹스·욕망을 너무 이른 언어로 말했다
똑똑했고 감각 있었지만,
시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시대랑 잘 안 맞았죠.”
낸시 랭(박혜령)
• 퍼포먼스는 과감했지만
•‘실제로는 놀라울 만큼 순수했던 사람
퍼포먼스 뒤의 얼굴은
아이 같았고,
사랑받고 싶어 했고,
예술을 진심으로 믿었다.
둘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너무 솔직했고
너무 빨리 유명해졌고
시대보다 앞서 있었다
TMI를 닫으며
그 시절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검열되기 전의 얼굴들이 있었다.
그래서 거칠었고,
그래서 웃기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늑대를 말하던 시대는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
감정을
아직 숨기지 않았던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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