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공황장애와 싸울 나만의 무기를 다 빼앗겼다.
처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은 2013년이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 때문에 엄마와 사이가 틀어졌고 혼자 머나먼 타지에서 첫 직장을 다니며 불안한 미국 거주 신분 때문에 한참 힘들었을 때였다. 스트레스는 심했고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신체증상 (예기치 못한 공황발작, 호흡곤란, 강박생각 등)들이 반복되어 나의 행복과 평안함을 유지하는데 지장을 주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심리상담가를 찾아갔다. 다행히 직장이나 원래 하던 일들에게는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힘들어서, 제발 좀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가의 역할이 분명히 분리가 돼 있어 정신과 의사는 주로 상태에 따라 약만 처방해 주고 자세한 상담은 온전히 Clinical Psychologist (임상심리학자)에게 받을 수 있다. 이 곳에선 심리상담도 온전히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초기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점차적으로 줄여나가 한 달에 한번, 1년에 한 번으로 상담을 받았다. 답답할 때는 약 한번 먹고 편안해지고 싶어 여러 차례 상담 선생님께 문의했지만 미국은 웬만해서는 그 어떤 약도 쉽게 처방해 주지 않기에 이번에도 역시 상담을 먼저 진행해 보고 그 이후에 약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약의 도움 없이 상담치료 만으로도 크게 호전이 되어 그 이후에는 삶에 스트레스가 생길 때 가끔 관리 차원에서의 상담을 받았을 뿐 주기적인 상담이나 다른 치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상담을 통해, 또 경험을 통해 얻은 공항발작과 불안에 대한 나의 무기는 다음과 같았다.
1. 과호흡이 오고 공황발작으로 인해 호흡 곤란이 발생하면 무조건 걷기.
: 나의 신체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공황발작이 와서 내 호흡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을 때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집 안 거실이나 아파트 복도를 20분 정도 뱅글뱅글 돌면서 걸었다. 그러면 내 몸은 자동적으로 심장박동과 호흡을 조절하게 되고 걸으면서 나의 집중은 내 호흡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믿는 방법 중 하나이다.
2. 일부로 숨을 참아본다.
: 공황발작이 오면 코와, 목,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공포 때문에 오히려 더 숨을 몰아쉬게 된다. 그래서 청개구리 요법으로 숨을 더 쉬려고 노력하는 대신 10초에서 15초간 숨을 참아본다. 숨을 여러 번 참아도 내가 호흡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 괜찮구나 안심이 되기도 하고 과호흡을 방지할 수 있다.
3. 흥얼거리거나 노래를 부른다.
: 마찬가지로 과호흡 조절을 위해 내가 터득한 방법이다. 노래를 부를 때는 우리도 모르게 숨을 참아야 하는 구간이 있는데 (해보기 전까지는 나도 의식하지 못했다.) 노래를 하면서 적당한 호흡을 조절할 수 있고 불안한 기분도 조금 나아진다. 내 최애 유튜브를 틀어놓고 한곡정도 따라부르기를 완주 하면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고 호흡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땡큐 정국, 땡큐 기리보이)
4. 엄마나 동생이랑 전화를 한다.
: 호흡이 안정되면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힐 차례이다. 엄마랑 동생은 한국에 있어 시차 덕분에 밤 새 전화를 할 수 있다. 엄마와 동생은 나의 공황발작에 크게 놀라지 않고 자기들 얘기만 하는 편이기에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엄마 잔소리랑 동생의 헛소리를 듣다 보면 어이없어서 나의 신체증상에 대해서 잊어버리게 된다. 나는 공황발작이 자기 전이나 자다가 깰 때에 가끔 생기곤 했는데 새벽시간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는 엄마와 동생이 있어서 감사하다.
5. 귀여운 거 보기/좋아하는 영상 보기
: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내가 좋아하는 토끼나 햄스터, 강아지, 고양이 등 귀여운 것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가 오늘 죽더라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 귀여운 것들이라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잘생긴 아이돌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골 영상, 요리 영상 등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보통은 위의 방법들이면 공황발작은 1시간 이내로 사그라들고, 공황발작으로 인해 과도히 분비된 호르몬과 신경물질들이 모두 사라져 내 몸이 온전한 편안함을 다시 찾는 데에는 이틀에서 삼일정도 걸렸다. 하지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기에 나만의 무기들로 공황과 불안을 잘 관리해 오며 살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공황에 대해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코로나에 걸린 후,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고 호흡기가 망가지자 첫 번째 무기부터 쓸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과도한 무기력증에 조금이라도 걷는다면 심장은 더 쿵쾅댔고 건강할 때와는 너무 다른 호흡기 증후군 이후의 과호흡은 정말 죽음이 코 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공황발작 앞에서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