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ggles Feb 09. 2024

연봉 1억 5천에서 백수로

돈을 못 벌면 가치가 없는 건가요?

코로나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그날, 사실 나는 새로운 직장에 취직 합격 통보를 받았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병원일을 그만두고 조금 더 편한 연구직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코로나에 걸렸을 땐 2주간 휴식을 하고 바로 새 직장을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에 아주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미뤄볼 만큼 일을 시작할 날을 미뤄 보았지만 내 건강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새 직장에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통보를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원래 다니던 직장 역시 지금의 몸 상태로는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웬만해선 결근 한번 해본 적 없는 나였는데 하루아침에 백수가 돼 버렸다.


이제 조금 편해지나, 그동안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커리어가 이렇게 보상을 해 주는구나 하는 찰나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남은 것이 없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일구어 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제는 쓸모 없어진 내 몸뚱이 하나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 몸뚱이는 지금 혼자 양치질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데 말이다.


내가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나의 경제적 가치는 0원이 되었다. 아니지, 병원비나 생활비가 들으니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그동안 내가 분명 가계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을 텐데, 당장 이번 달부터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자 남편도 부담을 느꼈는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자상하고 친절하던 남편은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차라리 자기가 아픈 게 낫지 아픈 와이프를 옆에 두고 있는 것이 더 부담이고 싫다고 말했다. 서운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마음 편히 원망할 수도 없었다.


사실 우리 부부의 가정경제가 나쁜 건 전혀 아니었다. 단지 원래 있었던 경제계획이 틀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주눅 들었다. 이제까지의 나의 노력과 인생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돈 잘 벌고 일 잘하는 연봉 1억 5천 와이프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진심이든 아니든 그런 뉘앙스의 말과 행동들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이전 08화 꾀병은 아니지만 병도 아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