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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ggles Feb 09. 2024

감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잉여인간으로 살기는 처음이라...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초중고, 대학교, 대학원, 직장. 순탄대로였다. 대학생 때도 여름이면 계절학기니 교환학생이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꽉꽉 채워 살았다. 대학원 졸업 후 라이선스를 따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미국에서의 신분도 불안정했기에 하루빨리 취직해서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야 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던 7년 동안 엄마아빠를 보러 간 적은 짧게 딱 세 번. 지금은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이다.


돈도 나름 잘 벌었던 거 같다. 막 몇억씩 탁탁 버는 건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에 첫 직장부터 괜찮은 연봉으로 시작했다. 10년 동안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가며 이력서 내 이름 뒤에 붙을 수많은 자격증을 늘려갔다. 직장의 어린 후배들에게는 대단해 보일 만한 나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을 했다.  


Over achiever. (오버 어치버). 안 해도 되는 것까지 오버해 가면서 다 잘 해내려는 재수 없는 인간.
그 비슷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모든 생활을 남에게 의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심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제껏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은 다 노력하면 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갑자기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뤄둔 것들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쓸모없어…


매일을 어제와 비교하며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은 나의 몸상태에 분노와 화가 치밀었다. 어쩌면 그 분노와 불합리한 생각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더욱더 병들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은 사실이 아닌 것들이 많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있기나 할는지. 생각의 굴레에 빠져 하루종일 우울하고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으로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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