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ggles Feb 10. 2024

밖에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가 없어

네가 광장공포증이구나?

한국에서 가족들과 한 달 넘게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려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정도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무래도 부모님 집은 내가 원래 사는 곳이 아니다 보니 눈치 주는 사람은 없어도 불편한 것이 생겼고, 그 마음이 점점 더 커질 무렵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팔다리에 마비감각의 빈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얘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난다 해도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하니 처음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아직도 호흡곤란 증상이 남아 있었지만 확실히 처음보다는 나아진 듯했다.


미국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이 정도면 다시 혼자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용감하게 두 달여 만에 운전대를 잡고 드라이브 겸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예전에 출근하던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운전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갑자기 몸이 긴장되면서 숨이 차는 느낌이 싸하게 올라왔다. 그 기분에 지고 싶지 않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했다. 목적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길 모퉁이에서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공포가 순식간에 온 세상을 가득 메웠다. 팔다리는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생각을 똑바로 할 수 없었다. 겨우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와 통화를 하며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놀란 몸과 나의 뇌는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눈에 띄게 불안이 심해지고 공황발작의 빈도가 잦아졌다. 아파트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 만으로도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발이 떨렸다. 집 앞에 마트는 고사하고 누구를 만난다던가 어디를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이전엔 남편과 함께 나가는 길은 그나마 안심하고 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함께 나가도 불안이 극에 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광장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마치 마음속에 내가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아무리 노력해도 그 선을 넘어갈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 이야기가 생각났다. 서커스단에서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줄에 묵어두고 줄이 팽팽해질 만큼만 움직이게 허락한다고 했다. 줄보다 더 멀리 움직이려는 시도를 하면 가차 없이 매로 벌을 준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 코끼리가 되어 고작 줄 정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겨도 줄 밖의 거리로 나갈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커스장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만한 힘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코끼리의 세상은 딱 그 줄의 길이만큼이다.


내가 바로 그 줄에 붙잡혀 있는 코끼리처럼 느껴졌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아무런 위험도 문제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집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만으로도 마치 내 몸이 어떠한 거대한 자석에 끌려가는 듯한 거부감이 생겼다. 나가보려는 시도만 하면 영락없이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웬걸, 나아져가는 줄 알았는데 더욱더 나빠져 버린 것이다.        


이전 10화 감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