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ggles Mar 02. 2024

정부 보조금으로 1억을 준다고요?

인생은 새옹지마

나의 인생은 불안의 구렁텅이에 갇혀 기약 없이 멈춰서 있는데 세상은 나 하나쯤 빠져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잘만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직장을 그만뒀고 한국을 다녀오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와 동생이 미국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 후에도 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뚱이로 다시 홀로 하루를 시작하고 (남편은 일하느라 바쁘니까) 온전히 내가 나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했다.


나의 공식적인 병명은 코로나 후유증과 그로 인한 불안장애. 다행히 그때만 해도 미국에는 아직 코로나로 인한 특별 휴가가 유효했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나 손해를 국가적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실행되고 있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부 보조금 신청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 건 누가 받나 싶었는데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줄이야.


캘리포니아주 노동부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개인사로 일을 못하게 될 경우 그전 해 연봉을 기준으로 아픈 12개월 동안 단기 장애 정부 보조금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요한 서류는 의사나 관련 의료전문가의 소견서, 그리고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의 기록이면 충분했다. 의사와 심리상담가의 도움으로 단기 상해 보조금 (Short-term Disability) 신청을  마무리 한지 몇 달 뒤,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게 되었다. 비록 미국 특유의 늦은 일처리 덕분에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데 세 달이나 걸렸지만 그 결과는 과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단기 장애가 인정되어 지난 연봉의 70% 정도, 무려 1억이 넘는 액수의 돈을 12개월 동안 나눠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이 지정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한 것이지만 너무나도 큰 액수에 이걸 받아도 되나 싶어 얼떨떨했다.

‘정말 이 큰돈을 준다고?’

나라가 거대하다 보니 보조금도 스케일이 남달랐다. 사실 그동안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많이 힘들었는데 감사함과 안도가 동시에 느껴졌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코로나에 확진되고 일을 못하기 시작한 후부터 나와 남편의 사이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금전적인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아파서 쉬는 중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사실 못하고) 집에만 있다는 사실이 여간 어색하고 민망하고 불편해 견딜 수 없던 참이기도 했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불편했던 많은 문제들이 사라졌다. 남편은 더이상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고 나도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왠지 타당하게 노동을 쉬어도 된다는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후련했다. 역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돈이 부족해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코로나 후유증에 당첨되어 모든 걸 내려놔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허우적 대던 그 순간 내 인생에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혜택들도 함께 찾아오다니.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몇 주 뒤 미국정부는 더 이상 코로나를 팬데믹이 아닌 독감과 같은 계절성 질환으로 분류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내가 코로나로 인해 받은 모든 정부 혜택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운이 좋게도(?) 그 역사의 끝물에 다신 없을 혜택들을 내가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어쩌면 어이없기도 했다.


인생은 새옹지마 라더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