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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ggles Feb 28. 2024

공황발작에 시달려도 아직 행복할 수 있다.

가장 행복한 한 달

나 홀로 인생의 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머나먼 미국땅에서 산지 어느덧 18년 차. 학교 다닐 때는 노느라 집에 갈 시간이 없었고 직장을 다닌 후부터는 마음껏 쉴 수 없어서 집에 가지 못했다. 주말이면 부모님 댁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본가에 가려면 최소 몇천 불의 거금과 꼬박 24시간은 걸리는 대장정을 걸쳐야 하는 나에게는 어쩌면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을까?


결혼하고 나서 분명 여유가 생겼어도 나의 가족을 우리 집에 선뜻 초대하지 못다. 혹시 남편이 불편해할까 봐서였다. 내가 남편의 가족들이 어렵듯 남편도 나의 가족들이 어려울까 봐, 사실은 우리 가족이 신세를 지면 시댁에게도 틈을 보이는 것 같아 한사코 가족들의 미국 방문을 말리던 나였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미 한국에서 요양을 하고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나의 건강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엄마와 동생에게 SOS를 쳤다.


“엄마, 나한테 와줘”


출근 후 매일 나를 혼자 집에 두어야 했던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나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고, 동생과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그 주말에 바로 비행기 표를 끊어 나에게 날아와 주었다. 가장 비싼 연말 성수기에,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값을 주고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와 동생이 미국 집에 오게 되었다.


심한 불안증세로 공항에 마중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엄마 얼굴을 보니 신기하게 기운이 났다. 엄마와 동생의 힘을 빌려 함께 동네 식당도, 집 앞 슈퍼도, 근처 옷가게도 나가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는 나의 손이 덜덜 떨렸는데도 불구하고 내 가족이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비록 나의 건강 상태 때문에 좋은 곳으로 놀러 가진 못했지만 엄마와 동생과 같은 일상을 나누는 경험 만으로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잠시 까먹을 정도로 행복했다.


“네가 아프니까 좋다 야”.

엄마가 말했다. 엄마와 지내는 동안 매일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길가의 꽃 이름을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슈퍼에 가서 과일을 사고, 같이 요리를 하고, 그동안 같이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컷 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넷플릭스를 보다 문뜩 아파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엄마와 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한 달씩이나 지낼 일이 과연 있었을까?' 연말 성수기라 말도 안 되는 값을 주고 비행기표를 샀는데 그 덕분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미국의 크리스마스와 뉴이어 카운트다운을 엄마와 동생과 나란히 보게 될 줄이야. 남편도 더 이상 나를 혼자 두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안심이 된 덕분인지 우리 네 사람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공황에 시달려도 아직 행복할 수 있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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