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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ggles Feb 21. 2024

정신과약을 처음 먹으면 생기는 일

약 먹으면 괜찮아진다며!

한국처럼 병원에서 바로 약을 처방해 주거나 혹은 병원 밑에 약국이 있어 바로 약을 받아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의약분업의 표본인 미국은 처방을 받았어도 약 얻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미국 어느 시골 촌구석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구 사백만 명의 메가시티. 그중에서도 꽤나 힙하고 화려하다는 로스앤젤레스의 중심가에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약을 받는 과정은 이러했다.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은 후 처방을 받는다.
의사가 우리 동네 내가 지정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낸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으면 순서대로 제조를 시작한다.
최소 3시간 혹은 12 시간 걸리는 조제시간
약국 퇴근시간
다음날 약국에서 20분 정도 내 순서를 기다린 후 약을 받는다.


한시라도 마음이 급했던 나는 약을 처방받고 나면 바로 약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다시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약을 얻지 못한 그날 밤, 조급함이 심해지자 나의 불안함은 극에 달했고 이게 다 약을 제때 받지 못해서라며 멍청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원망했다.


다음날, 우여곡절 끝에 렉사프로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그렇게 기다렸던 약을 받았는데 이제는 또 다른 불안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심하면 어떡하지?”

인터넷에선 약의 효능보다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았다. 자살충동, 더욱더 심해지는 불안감, 감각이상, 쇼크 등 나아지기 위해 먹는 약이 맞는 건지 싶을 정도로 찾아보는 족족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만 부각되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먹어도 불안 먹지 않아도 불안한 나의 상태가 불안장애의 증상이라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의 고민 끝에 렉사프로 5밀리그램을 삼켰다. 사실 약이 너무 작아 약간의 씁쓸함 빼고는 약을 먹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약을 먹고 30분 정도 지나자 나른해지고 졸음이 쏟아졌다.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를, 그 코딱지만한 약을 먹었다고 바로 몸에서 느껴지는 나른함이 놀라웠다. 나른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심장을 쓸어내리는 듯한 불안한 마음이 극에 달했다. 허리 아래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경련이 일어났고 다리를 움찔움찔하지 않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입은 사막의 모래라도 씹은 양 건조하고 침이 메말라 물 없이 음식을 삼키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설사가 생겨 그나마 있던 기운도 다 빠져버렸다. 더욱더 심해질 수 있을까 싶었던 나의 불안증세가 웬걸. 더 나빠져버렸다. 분명 약의 부작용임이 확실했다. 5mg의 파워가 이 정도라니.


의사에게 말하자 아주 적은 양이라도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 약 복용을 중단하지 말고 최소 3주는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블로그나 유튜브의 경험담을 찾아보니 처음 적응기간 동안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이 많았다. 의사와 사람들의 말을 믿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으면 마법처럼 뿅 하고 나아질 줄 알았는데 뭐 하나 내가 원하는 데로 되는 게 없었다. 마지막 보류였던 정신과약마저 나를 낫게 할 수 없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약 먹으면 나아진다며…

과연 난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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