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걸 나만 몰랐네
정확히 5일 동안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신경계 부작용을 겪은 후 6일째 되는 날 아침, 나를 괴롭혔던 모든 부작용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다리가 떨리지도, 심장이 쫄 리지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 가장 기본값인 0인상태. 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는 사실 아프기 전 매일매일 경험하던 일상인데, 한 번도 이런 상태가 축복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몇 달 만에 경험해 보는 무(無)의 상태. 별 다른 느낌 없이 평안한 상태가 행복임을 직감했다. 약을 먹었다고 해서 나의 공황과 불안이 한 번에 뿅 하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달 동안 나를 괴롭혔던 많은 신체 증상들이 순식간에 옅어진 것이다. 이 정도 효과 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여전히 밖으로 나가려면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대고 과호흡이 올 것 같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를 붙들어 메었던 어떠한 에너지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집 밖에 나가기가 너무 두려워서 나갈 시도조차 못했는데, 여전히 두려워도 나가보고 싶은 오기와 용기, 그 중간의 어떠한 힘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건 줄 알았음 진즉 먹을걸”
10년 전에 약을 먹었더라면 내 인생이 훨씬 수월했을까? 진심으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내 인생엔 다 때가 있고 과거의 나도 나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최선을 다 했으니 지금이라도 얻는 약의 도움에 감사하기로 했다.
보통은 자신에게 맞는 정신과 약을 찾는 과정이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약을 바꿔 먹어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5mg 렉사프로 한 알로 일주일 정도의 부작용을 겪었을 뿐, 바로 효과를 체감했다. (비록 그 일주일이 지옥 같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옭아맸던 줄을 늘어뜨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숨이 차도 조금 더 멀리 걷기, 동네 슈퍼까지 운전해서 가보기, 친구와 집 앞 식당에서 브런치 먹기, 이런 작은 일상에도 마치 번지점프를 뛰는 것 마냥 큰 결단과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다시 걸음마를 배우듯 일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