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
내가 공황장애에 걸리고 나니 가장 힘이 들었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어디 한 곳 부러진 것도 아니고 멀쩡히 잘 걸어서 다니는데도 혼자 슈퍼를 갈 수도, 병원을 갈 수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게 인생에 그렇게 큰 제약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아무도 가둬 둔 사람 없이 나 혼자 보이지 않는 새장에 갇혀 힘든 날들이 오래되자 영영 이렇게 살아야 할 까봐 덜컥 겁이 났다.
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나의 남편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 제치고 도와줄 단 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기자 현실은 내가 예상하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한때는 섭섭하고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지. 남편은 나와 인생을 같이 하는 동행인이지만 동시에 철저한 외부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에게는 남편 말고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할 나의 부모님과 둘도 없는 여동생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몇 천 끼로 미터 떨어져 있는 가족들은 아무리 원해도 나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손과 발이 되어준 사람들은 의외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었다. 평소에 그냥 알고만 지냈던 지인들, 오며 가며 안부만 묻던 오래된 친구들, 몇 번 만난 적도 없던, 그냥 일상적인 관계 이외에 내가 특별히 챙겨준 적도 없었던 직장동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과연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 싶은 부탁들을 흔쾌히 들어주고 나와 같이 울며 누구보다도 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을 주었다. 음식을 해 날라주고 운전을 못하는 나를 위해 병원에 함께 가 주었다. 내가 새장에서 나올 수 있게 기꺼이 몇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 우리 동네에 까지 와서 내가 활동 반경을 점점 넓혀 갈 수 있도록 몇 번이고 함께 식당을 가고 산책을 가고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동행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딱히 좋은 이웃이거나 특별한 친구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도움은 참으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들에게 이러한 도움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던가 되뇌어 봤지만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한 곳으로 흘러 가는 거구나.'
내가 특별히 여기고 온 마음으로 나의 것을 나눠줬던 사람들에게 그동안 내가 베푼 것을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보통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베풀거나 선행을 행하는 건 아닐 테지. 그리고 그 사람은 나에게 돌려주지는 못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또 어떠한 친절과 사랑을 나누어 줄테다. 주고받지 않아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아마도 그런 도미노 효과 덕분이지 않을까?
내 편인 내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 숨어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촤라락 나타나선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 덕분에 오늘 내가 다시 하루를 살 수 있었다고, 정말 고마웠고, 나도 꼭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받은 사랑과 위로를 흘려보내겠다고 다심하게 된다.
낮선이여. 내가 당신의 친한 친구가 아니라도 내가 너의 편이 기꺼이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