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공황장애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딱 15개월이 지났다. 엄마는 이제 내가 괜찮아졌으니 그만 먹어도 될 거 같다고 말 하지만 나는 의사의 말을 잘 들으며 여전히 약을 복용 중이다 (렉사프로 7.5mg). 사실 나도 약을 끊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증상이 나아진 후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약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와 의사 선생님의 말을 신뢰하기 때문에 굳이 약을 중단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병원에서 주지 않아서였고 그 이후에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 안정제가 주는 인위적인 편안함이 약간은 불쾌하게 느껴진 것도 내가 약을 복용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 이기도 하다.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비상약으로 클로노핀 세알을 받았지만 다행히 먹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SSRI (흔히 우울증 약이라 불려 거부감을 주지만 사실은 세로토닌 재 흡수 억제제) 하나만으로도 새 삶을 얻은 것처럼 회복되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이자면 나의 공황장애가 하루아침에 나은 것이 아니다. 혼자서 친구들을 만나러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고, 20분 거리의 한인타운에 운전해서 갈 수 있기까지는 7개월이 걸렸다. 남편과 함께 하루저녁 자고 오는 주말여행을 가기까지는 9개월이 걸렸고, 다시 숨이 차게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년, 파트타임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14개월 후인 올해 2024년 2월이다 (이제 겨우 두 달 차).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고통의 시간이 과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문득 운전을 하다, 산책을 하다, 일을 하다 중간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순간을 음미하는 습관이 생겼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축복인 줄 몰랐던 아무렇지도 않은 공(空) 혹은 안(安)의 상태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해서 얻게 된 결과라는 사실이 전쟁에서 이긴 군인처럼 비장하게마저 느껴진다.
공황장애를 앓기 전 (혹은 그 이후에도 쭈욱)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나에게 노력해서 안될 일은 없었고, 무엇이든 하면 얻을 수 있고, 뻗으면 잡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나는 잠을 줄여서라도 원하는 일을 마쳤고 건강보다는 성과가 중요했고 쉬는 것을 죄악처럼 경계했다. 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부족하니 놀 수 있으려면 잠이나 운동, 제대로 된 식사 등 가장 중요한 것들을 줄여가며 여가를 위한 시간을 확보했다. 참 어리석고 바보 같은 과거의 나 반성해.
공황장애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시간을 마시듯이 살지 않고 걸음을 천천히 걸으며, 설거지를 할 때에도, 문서를 작성할 때에도,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때에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속도를 조절하며 모든 일에 나의 의식을 불어넣는다.
아프고 나니 죽일 듯이 미웠던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괜찮아진 건 아님), 모든 일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전에 없었던 아량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운동을 시작했고 명상을 즐기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휴식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던 습관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공황장애가 완치되었는가?
이에 답을 하자면 나는 공황장애가 완치가 되든 말든 상관없는 상태가 되었다. 광장공포증의 흔적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어 ‘과연 내가 그곳에 혼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0.001초 정도 살짝 스치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 생각에 대한 진짜 나 의 대답은 ‘가서 쓰러지지 뭐.’ ‘가서 약 먹지 뭐’이다. 약을 몇 년을 더 먹어야 한다고 한들 오늘처럼만 살 수 있다면 그게 뭐가 대수인가 싶다.
언제든지 다시 재발한데도 새롭게 확보한 나의 무기들과 경험들은 더 이상 공황이전처럼 나를 삼키게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절성 알레르기, 역류성 식도염, 편두통, 감기, 콧물, 귀 따가움 같이 하찮은 나의 주기적 병치레 리스트가 한 가지 늘었을 뿐, 나에게 공황은 이제 탱크까지 몰고 가며 싸워야 하는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