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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ggles Mar 20. 2024

“살쪘다고 또 지랄하기만 해 봐”

나에게 가장 큰 위로는 T발 C

내 동생과 나는 서로에게 T발 C 이자 힘들 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동생도 나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불안의 유전자를 품고 사느라 꽤나 고생해 봤기 때문에 서로의 불편함도 고통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한참 코로나 후유증과 공황장애로 인한 신경계의 비정상적인 증상 때문에 체중이 쑥쑥 빠졌을 때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또 내려가있는 몸무게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공황발작과 불안으로 눌려있는 나의 몸은 아무리 밥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해도 필요한 양의 음식을 모두 받아들이기 역부족이었다.


몇 주 사이에 6킬로가 빠져버렸고 이미 마른 편에 속했던 나는 더 이상 몸무게가 내려가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건강에 더욱더 무리가 올까 봐 겁이 났다.


“나 너무 무서워. 아무리 먹어도 살이 계속 빠져”


동생에게 거의 울먹거리며 전화했다. 그러자 숨 쉴 틈도 없이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 말은 예상 밖이었다.


“너 또 그러냐? 나중에 살쪘다고 지랄하기만 해 봐, 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는 둘이 서로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내 걱정은 민망함으로 바뀌고 동생의 한마디는 그 어떤 전문가의 처방이나 말 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 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나지 않던 체중은 더 이상 공황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건강을 되찾자 저절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노력해서 열심히 먹을 때는 무섭게 빠지던 살이 이제는 먹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가며 다이어트를 시작해도 변화가 없는 아니러니라니…


“아 나 스트레스받아. 살쪘어”

“내가 작년에 뭐랬어. 너 그럴 줄 알았다 이 또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로 들인 반려 공황이를 돌보느라 운동을 하고 건강한 것들을 챙겨 먹다 보니 이제 몸무게가 예년보다는 조금 더 나간다. 몸에 부피가 생기고 무게가 적정선으로 늘어나자 근력운동을 할 때 무게를 드는 게 훨씬 수월 해 지고, 같은 양의 활동을 해도 확실히 덜 피곤한 것을 느낀다. 그동안 내가 골골했던 것은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말랐어서였을까? 이제는 외모를 위해서랍시고 지금보다 더 살을 빼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응. 아니. 막상 하면 일하기 싫다고 징징댐”


“나 다시 여행 같은 것도 다닐 수 있을까?”

“응. 돈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감.”


“나 지금 또 호르몬이 난리인가 봐. 다 짜증 나고 너무 스트레스받아.”

“응. 내일이면 너 이거 기억 안 남”.


매정하게 보이지만 우리 자매가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방법이다. 물론 서로에게 진심으로 조언도 하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들어줄 때도 많다. 하지만 급한 마음의 불을 끄기에는 요즘말로 MZ 화법이 직방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나는 함께 어쩌냐며 유난 떨어주는 것보다 그게 뭐 대수라는 듯 개그로 받아쳐 주는 동생의 말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일 년 전 동생의 예언데로 나는 요새 살이 쪘다고 징징대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다시 시작해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남편과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몇 주간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한때 나를 옥죄었던 병적인 불안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무서워서 마치 내가 그 안에 갇혀 영원히 못 나올 것 같았는데, 어느덧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계절의 냄새를 느끼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갈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다니… 이것이야 말로 나에게는 기적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 됐든 나름의 어두움과 불안에 눌려 “나 다시 할 수 있을까?”라고 자신 없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응. 너 다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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