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니 공황이 사라졌습니다.
안녕, 나의 반려공황장애
내가 요즘 우쭈쭈 해가며 키우고 있는 공황장애라는 놈은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다. 혹시 나타나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하며 어떻게든 나에게서 떼어내려고 노력할 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 오든지 말든지'라고 힘을 탁 놓아버리는 순간 아무리 찾아봐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이 공황과 불안이라는 녀석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녀석은 분노와 짜증보단 한 수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뇌신경학에 대해 내가 뭐 대단히 알리는 없겠다마는 배운 바로는 분노, 화, 짜증, 원망, 두려움, 공포, 불안, 공황 모두 뇌의 편도체라는 곳이 활성화되면서 표출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겉으로 표현되고 내가 느끼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사실은 생리학적 발생 기전은 같다고 이해해야 하나?
어쨌든 한참 광장 공포증이 심해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던 언젠가,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내가 대단한 짐이라고 느껴져 점점 부부의 갈등이 심해졌을 무렵이다. 남의 편은 결국 꾹꾹 눌러왔던 자신만의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렸고 반은 진심이고 반은 호르몬 탓이었을 모진 말과 행동을 아파서 불쌍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다 쏟아버린 후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다.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만 서술한 것이다.)
한바탕 난리가 난 뒤, 처음에는 이미 무기력한 내가 혼자 남겨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너무 두려웠다. 조금 후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한 팀이라면서 내가 약해지고 쓸모없다고 해도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라며 원망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계속 이 상황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 보니,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baby가 이제껏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지금 내가 고작 몇 달 아팠다고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기운이 안개처럼 확 퍼지더니 승질이 났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아주 오랜만에 그동안 매일 나를 싸하게 옭아매고 있던 불안과 공황의 안개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래 나도 나 혼자 살 수 있다 이거야.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그냥 공황발작이 오든 말든 그냥 밖에서 콱 죽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너한테는 더 이상 부탁 따위 하지 않을 거다 이 baby야.”라며 울화가 치밀었을 때는 이미 나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다시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그때이다. 내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혼자 차를 끌고 30분이 넘는 거리로 드라이브를 다녀온 것이.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너 따위는 나도 필요 없다고 씩씩거리며 고속도로를 타고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을 거리로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차를 끌고 돌아다녔다. 그 두 시간 내내, 그리고 다녀와서도 며칠 동안은 분노와 화를 원료 삼아 마치 내가 한 번도 광장 공포증 따위는 느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분노와 화가 가라앉고 상황이 지나가자 공황과 불안은 다시 빼꼼히 얼굴을 내려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녀석들이 그전보다 조금 더 하찮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분노의 신경전달 물질에 순식간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릴 느낌이라면 이 녀석들이야말로 언제든 나타날 수도, 다시 사라질 수도 있는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결과일 뿐이라는 걸 내가 직접 겪었으니 말이다.
그 경험이 있은 후 불안과 공황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얘네들은 어쩌면 약간은 짜치는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령 내가 계속 이 불안함과 공황상태를 계속 느끼며 살아야 된다 하더라도 나의 행동의 모든 결정권은 그것들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자신감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 공황장애를 멍청하고 겁 많은, 그렇지만 귀여운 햄스터 같은 반려동물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겁이 많아 모든 게 무섭고 작은 일에도 세상 무너질 듯 크게 반응하는 나의 공황이는 그렇게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안녕, 하찮고 귀여운 나의 공황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