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엄마가 말을 잃었다
아빠의 마지막에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했다. 마지막까지 엄마 걱정만 했던 아빠를 떠나보내면서도 엄마의 울음은 그리 크지도 길지도 않았다. 삼우제를 지내고 가족 모두 갈비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엄마는 '아빠가 있었으면 맛있게 먹었을 텐데...' 라고 한 마디 했을 뿐 배우자와의 사별을 잘 견뎌내고 있는 듯 보였다.
아빠가 떠나고 일주일. 엄마가 말을 잃었다. 전화 통화도 할 수 없었다. 걱정이 되어 요양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얼굴에 마비가 와서 한 쪽 입이 일그러진 채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술만 움직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낯설었지만 메모지에 한 글자 한 글자를 힘겹게 써가며 더디게 소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희달
이희달 보고싶어
아빠가 엄청 보고싶다
여보 보고 싶어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이중섭 미술관에 들렀을 때가 생각났다. 아내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가 너무 절절해서 눈시울을 붉혔었다. 그런데 아빠를 그리워하는 울엄마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훨씬 더 애절하다.
“여보
이렇게 보고싶을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서 못가게 붙잡을걸
안타깝고 너무 자꾸 생각이 나서 못살겠다
여보”
괜찮을 거라고 맘대로 생각해버리고 엄마를 방치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5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을 이젠 다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한없이 약한 여자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내 볼을, 내 머리를, 내 귀를 쓰다듬었다. 평소 애교도 없고 살가운 표현도 못 한다고 면박을 줬는데 내 얼굴 곳곳에 닿는 엄마의 손길이 너무 따뜻하고 아팠다.
아빠와 엄마의 환한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어 갔다. 엄마는 사진 속 아빠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사진 속 아빠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액자를 두 손에 쥐고 졸린 눈으로 잠을 청하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 내 손을 붙잡는다. 펜을 들어 적는다. 아빠 사진 가져와서 너무 좋단다. 막내딸이 최고란다. 아빠가 엄마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딸은 결국 돌아가신 아빠에게 엄마를 떠넘기고 있었다. 최고는 무슨......
엄마 앞에선 소박한 미니멀리스트보다 화려한 여배우처럼...
울엄마는 요양 병원에 있다. 2018년 7월에 허리를 다쳐 말기암이었던 아빠와 함께 입원했다. 아빠는 결국 그해 9월, 말기암 판정 2년 여만에 엄마만 남겨두고 혼자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픈 아빠 곁에서 무기력하고 우울해했던 엄마는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고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아빠가 없는 요양병원에서 엄마는 말이 줄고 식욕도 줄었다. 병원에서 넘어져 다리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다시 요양 병원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잠이 많아졌다. 만사가 귀찮은 듯 딸이 찾아가도 피곤해하기만 한다.
얼마 전 병원에 찾아간 나를 보더니 불쑥 “옷이 그것밖에 없니?” 한다. 일 할 때만 해도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던 막내딸이었다. 청반바지에 면티를 입고 어디서 공짜로 얻은 듯한 에코백을 든 내가 초라해 보였나보다. "머리는 염색도 안 해?" 한다. 파마기 없는 짧은 머리에 이젠 감출 수도 없게 된 흰머리까지··· 엄마는 늙어가는 딸이 보기 싫었나보다. "얼굴에는 아무것도 안 바르고 다니는 거야?" 한다.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딸의 얼굴이 생기 없어 보였나보다.
나로 인해 엄마가 말이 많아진 건 좋은데 전부 내 외모에 대한 지적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 20년 넘게 양장점에서 다른 사람의 옷을 만들어 입혔던 나름 디자이너였다. 그 일을 그만둔 후에는 시골 5일 장에서 기성복을 팔기도 했다. 가난해도 열 벌의 옷을 살 돈을 아껴 좋은 옷 한 벌을 사 입었던 멋쟁이였다. 지금도 요양 병원에서 환자복 안에 화려한 무늬의 티셔츠를 받쳐 입는다. 병원 안에 있으면서도 조명에 얼굴이 탄다며 선크림을 바른다. 엄마가 바른 입술 보호제는 고운 분홍빛이다.
80세 엄마에게 미니멀라이프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막내딸이 소비를 지양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생각보다 당당하게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학원 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커리어 우먼으로 살았던 딸이 엄마에게는 더 자랑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얀 병원에서 하얀 가운의 의사와 간호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똑같은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생활하는 엄마에게는 잘 차려입은 딸이 더 반가울 지도 모른다.
나이 든 부모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췄다는 늙은 자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파마도 하고 염색도 했다. 엄마를 보러 요양 병원에 간다. 화장도 하고 화려한 색깔의 옷으로 차려입고 가야겠다. 딸의 예쁜 모습이 엄마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내 생각이 짧았다. 엄마는 소박한 미니멀리스트보다 화려한 여배우 같은 딸을 기다린다. 엄마가 날 보며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요양 병원에 있는 엄마는 초기 치매 환자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집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 요양 병원에서 넘어져 다리뼈 수술을 하고, 지금은 몸도 정신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딸이 찾아가도, 밥을 먹다가도 넋을 놓고 표정 없이 텔레비전만 올려다본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어 있는 듯 답답하다.
엄마는 배운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자식에게도 삶이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엄마가 아는 삶이란 결국에 부모가 되고 자식을 놓는 삶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서 엄마에게 나는 불효자식이고, 나에게 엄마는 종종 싫은 엄마다. 엄마는 늘상 말한다. 며칠 전 술에 취해 전화해서도 말했다.
배웠다는 게 엄마 아빠한테 전화도 안 하냐?
나, 헛배웠다.
김현 《걱정 말고 다녀와》 p.15
아빠는 말기암으로 2년 남짓 투병 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아빠는 가장 가까이 사는 자식인 나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먹고 싶은 것, 필요한 것들을 쏟아냈었다. 가끔 나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아빠의 요구가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점점 식욕을 잃어가던 아빠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는 하지만 딸로서 그 시간을 힘들어 했다는 게 가슴 깊이 미안하다.
요양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이상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외부 병원에 모시고 가 진료를 받는다. 일주일에 한 번 요양 병원으로 먹을거리를 챙겨가는 것도 가까이 있는 내 몫이다. 나보다 멀리서 산다는 이유로 엄마아빠를 자주 챙기지 않는 다른 형제들이 야속하기도 했었다. 가난한 부모를 가장 가까이에서 챙겨야 했던 셋째딸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도 없는데 이 정도면 진짜 할 만큼 하는 거 아니냐며 속으로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나도 헛배웠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저렇게 늙기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간 앞에서 예나 지금이나 무방비 상태다. 두 분은 조만간 시간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빈털털이가 될 것이다.
조심하세요, 시간이 모든 걸 앗아갈 거예요.
누군가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양육의 결론이란 잔인하기도 하다는 걸. 젊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고, 마침내 자신을 잃은 이야기를 그들은 들어보기나 했을까.
김현 《걱정 말고 다녀와》 p. 97
시간은 결국 엄마아빠에게서 모든 걸 빼앗았다. 나는 아빠처럼 죽어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엄마처럼 늙어가진 않을 거라고 결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빠는 자신이 말기암으로 죽을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엄마는 치매로 정신이 흐릿해지고 간병사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
무엇을 빼앗기는지도 알지 못한 채, 얼마큼이나 잃어가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나의 아빠는 떠났고 울엄마는 홀로 남았다. 자신을 잃어가는 부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코로나로 요양병원에 혼자 있는 엄마를 자주 볼 수가 없다. 엄마는 그동안 또 무엇을, 얼마큼이나 잃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