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남들이 뭐래도 엄마는 아들을 사랑해

by 유쾌한 주용씨

우리 중3 아들, 담임 선생님이 싫단다


죽다 살아났다! 며칠 전 자동차 브레이크가 툭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브레이크를 좀 깊게 밟아야 했다. 그래도 브레이크가 아예 들지 않는 게 아니니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 카센터 사장님이 내 차를 시운전해 보시더니 하늘이 도왔단다. 브레이크가 터진 거란다. 길거리에서 차가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큰일 날 뻔 했다고 하신다. 차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죽다 살아났으니 두 번째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더 잘 살아야지 생각하는 순간 중3 작은아들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 아이의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들이 수업 중에 선생님 앞에서 두 번이나 욕을 했단다. 교권 침해에 해당하는 심각한 상황이라 학교에 직접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큰아들을 키우며 예방 주사를 맞은 덕분인지『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같은 쎈 책으로 단련이 되어서인지 생각보다 담담했다. 내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한 건 분명 잘못한 일이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막내의 선한 얼굴을 떠올리니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예전 같으면 남편에게 전화해 어떡하냐고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직장에서 일 하는 사람에게 미리 걱정을 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로서 이 정도의 일은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직접 적은 거라며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셨다. 선생님 앞에서 내뱉었다는 두 마디의 욕설을 포함해 당시 상황이 아들의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평소 내 앞에서는 거센 말투 한 번 쓰지 않았던 아이가 선생님의 단순한 지적에 대놓고 이런 심한 욕을 했다는 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나의 아들을 설명하셨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며 나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방임적 태도)을 꾸짖는 듯했다.


그동안 학교나 학원 어떤 선생님께도 생활 습관이나 인성에 대해 지적을 받거나 문제시되어 본 적이 없는 터라 당황스러웠다. 담임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의 안일한 지도와 대처를 지적하셨다. 학원 선생님들은 학부모에게 좋은 말밖에 할 수 없는 생계형 교육을 하고 있지 않냐며 내게 반문하기도 하셨다. 이제라도 내 아이에 대해 제대로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꼼꼼하게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23년 동안 학원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사교육자를 무시하는 듯한 공교육자의 권위 의식에 기분이 좀 상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 온 본인에게 우리 아들은 계획한 대로 지도되지 않는 골치 아픈 아이였다. 1시간 가까이 선생님의 엄격한 교육 방식을 설명하셨고, 나의 안일한 교육 태도를 지적하셨고, 우리 아들이 고쳐야 할 부분들을 나열하셨다. 교무실에서 잠깐 만난 아들은 나와 한 번 눈을 마주쳤을 뿐 무표정한 얼굴로 선생님의 지적을 다 인정하고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너무 피곤한 스타일이라며 싫단다. 다른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을 안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 그런 심한 욕을 두 번이나 했다는 건 평소 아들답지 않다고 꾸짖었다. 아들 왈, 혼잣말처럼 나온 거였고 그렇게 심한 욕이 아니었단다. 아들이 직접 쓴 걸 봤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분명 입모양을 봤는데 왜 인정을 안 하냐며 다그쳤단다. 선생님이 직접 이런 욕이었다고 했고 그냥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 했단다. 선생님 말씀이 길어지는 게 싫어서 인정해버렸다는 말이다.


상황 이해가 됐다. 아들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성향상 담임 선생님과 우리 아들이 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깐깐한 성격에 우리 아들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태도가 거슬렸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학교까지 불려갔다 온 엄마에게 미안해하며 고개 숙인 아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네 할 일 제대로 하면서 부당한 거에 대해선 무조건 '예'라고 하지 말고 '아니오'라고 말하라고.

무조건 고개 숙이고 잘못했다고만 하지 말고 너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똑바로, 제대로 전달하라고.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엔 네 맘과 다른 사람들, 너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과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당당히 행동하고, 비겁하게 숨지 말라고.

잘못한 것에 대해선 진심으로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엄마는 언제나 널 믿는다고, 항상 엄마는 네 편이라고.


우리 아들은 내가 알던 아들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원칙에 벗어난 우리 아들이 난 여전히 괜찮았다.




스승의 날에 반성문 쓰는 아이


스승의 날이었다. 다른 날보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떠올려야 할 날인데 우리 작은아들은 반성문을 써서 학교에 갔다. 선생님 앞에서 욕을 했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께 호되게 처벌을 받는 중이다. 교직 생활 30년이라는 중3 아들의 선생님은 아빠보다 엄격하고 엄마보다 깐깐했다.


아들이 등교 준비로 씻는 동안 전날 밤에 혼자 써 놓은 반성문을 몰래 읽다가 울컥했다.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우리 아들이 생각이 큰 아이가 되어 있었다. 국어 강사 엄마의 아들답게 구성과 표현, 맞춤법까지 흠 잡을 데 없이 잘 쓴 글이었다.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로 집에서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 욕설은 물론 거센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로 아들의 반성문은 시작됐다. 그런데 학교생활은 다르더란다. 중3이 되면서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단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 무의식적으로 안 좋은 말이 나온 것 같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들을 고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반성문은 마무리됐다.


무엇보다 죄송하다는 말로 가득 채우지 않은 반성문이라 좋았다. 사실 담임 선생님의 교육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머리 숙이는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아들이 잘못은 했지만 정답을 강요하는 듯한 선생님의 교육 방침을 무조건 따라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내 바람대로 할 말 다 하는 반성문을 보니 우리 아들에 대해 마음이 놓이고, 잘 자라준 아들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남편에게 살짝 보여주니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책도 안 읽으면서 반성문은 잘 쓰네. 우리 아들 많이 컸다." 하며 기분 좋게 출근하는 남편을 보니 자식 때문에 울고 웃는 세상 모든 부모의 약한 등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큰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길, 작은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스승의 날에 반성문을 내며 또 한 번 담임 선생님께 머리를 숙여야 할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날도 아니고 스승의 날인데 아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오래 갈까봐 걱정도 되었다.

SE-2e6ea2e3-d9c8-42bc-8a5a-320b6d7ba9c1.jpg 스승의 날, 중3 아들에게 보낸 문자


나의 중2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고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힘들었던 내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던 장태일 선생님을 추억하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스승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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