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보는 큰아들과 엄마는...

아들을 키우며 엄마도 성장한다

by 유쾌한 주용씨

수능을 보는 큰아들에게


2001년 가을에 너를 낳고 내 생애 엄마는 처음이라 너의 걸음마에 놀라고, 옹알이에 신기했어. 네가 엄마라고 처음 불러줬을 때는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 내게 세상의 신비로움을 알려준 우리 큰아들이 아빠보다 더 커서 어느새 수능을 본다고 하니 이 뭉클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수능을 보는 자식을 위해 어떤 엄마는 백일기도를 드린다 하고, 어떤 엄마는 고3 내내 비싼 보약을 먹였다 하더라. 또 매년 TV 뉴스에서는 수능 당일 학교 앞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두 손 모으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 비치곤 했지. 그런데 엄마는 우리 아들을 위해 밥 차려주는 것밖에는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미안해지네.


핑계를 대자면 엄마가 너무 수선을 떨면 우리 아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엄마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뒤에서 지켜본 거야. 주말에 우리 아들이 늦잠을 자도 한숨 쉬지 않기, 아침에 깨울 때마다 엄마에게 짜증을 내도 노여워하지 않기, 오랫동안 신경 쓰며 차린 밥상인데 밥맛없다고 수저 놓으면 얼른 누룽지 끓여주기, 넉넉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용돈 주기, 최대한 잔소리하지 않기. 엄마는 나름 애쓴 건데 혹시 서운한 건 없었는지 이제 와 마음이 쓰이네.


아들! 그동안 너무너무 수고했어. 널 키우면서 예민하고 정 없는 아이라고 서운한 적이 많았었는데 오히려 네가 고3이 된 후로는 엄마가 신경 쓰고 잔소리 할 일이 없었어. 빨리 방향을 정하고 흔들림 없이 공부와 미술을 병행하며 성실하게 입시를 준비한 우리 아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그래서 고마워.


수능에 100% 실력 발휘해서 좋은 성적 받고, 운까지 따라줘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그건 모든 엄마의 바람이고 욕심일 거야.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아. 하지만 엄마는 의연해지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어. 하루 한 번의 시험으로 그동안의 네 모든 수고로움을 평가받는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바라는 대로 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엄마도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일인지라 욕심을 내려놓고 어떤 결과에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독이고 또 다지고 있어.


우리 아들! 엄마가 누누이 말했지만 20살에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선에서 또 현명한 선택을 하면 되는 거야. 너에게는 너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는 아빠와 엄마가 있으니까 절대로 혼자 외로워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 함께 의논하고 해결해 나가면 돼.


우리 큰아들이 너무 어려운 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 부담감을 대신할 수 없는 엄마는 이렇게밖에 너를 응원할 수가 없구나. 컨디션 조절 잘 해서 최선을 다해 시험 보고, 내일 저녁에는 모든 것 다 잊고 우리 가족 맛있게 저녁 먹자.


아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우리 아들을 생각하며 이 짧은 글을 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하네. 엄마 참 주책이다.


2019년 11월 13일, 수능을 하루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아들의 몸과 마음을 걱정하는 엄마가.




수능 보고 나오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앞으로도 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세상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이토록 질긴 사랑이 어디 있을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게 가끔 답답하고 힘들고 억울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수능 보는 큰아들을 생각하면서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애틋하고 좋았다.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마음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참 이상하다. '엄마'라는 말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눈물이 담겨 있나보다. 늙고 병든 엄마를 보살피는 딸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질금거리더니, 아들을 둔 엄마가 되어서도 자꾸만 울컥한다.


새벽 5시부터 큰아들의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수능 날 아침에 아들을 시험장에 데려다 주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편하게 봐. 밥 꼭꼭 씹어 천천히 먹고, 이따 끝나면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들, 잘 하고 와."

‘알았어.’ 하며 뒤돌아서는 아들의 높은 어깨를 두드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책이다. 그래도 아들한테 눈물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교실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무겁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제야 춥다는 걸 느꼈다. 5년 만에 수능 한파란다.


1교시 국어 영역 시험이 시작되었구나 하면서 이따가 수능 보고 나오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하나 걱정이 되었다. 수능을 보는 우리 큰아들이 어떤 결과에도 상처 받거나 위축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엄마! 시험 정말 잘 본 것 같아!'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기를 바라지만 '너무 어려웠어. 예상보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것 같아.'하며 고개를 숙이더라도 엄마의 토닥임과 응원으로 다시 희망을 만드는 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큰아들이 이번 수능을 망쳤단다...


수능을 무사히 마쳤다고, 이젠 미술 실기만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온한 일상을 한나절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새벽에 가채점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이번 수능은 망친 것 같단다. 그럴 수도 있다고 천 번은 생각했는데 하늘이 잠깐 무너졌다. 내 마음을 하늘도 아는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고 천둥이 쳤다. 아들과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당장 미술 학원 특강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신이 목표로 한 대학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특강을 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인다. 특강비가 570만원이란다. 우리 집 형편에 그 돈을 써가며 가고 싶지도 않은 대학을 준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내게 묻는다. 자신이 재수를 하는 것도 엄마아빠에게 너무 큰 부담이겠지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바닥이 드러난 내 통장이 불쑥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동안 돈이 없어도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까불었다. 아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며 내 뒤통수를 쳤다.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수능일 저녁에는 아들에게 결과에 상관없이 수고했다고 말했다. 어떤 결과에도 함께 의논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자고 멋지게 소리쳤다. 수선 떨지 않고 담담하게 수능을 마친 큰아들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잠도 잘 잤다. 그런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나는 흔들리고 무너졌다. 갑자기 길을 잃은 아이처럼 내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에 젖었다.


학원을 그만두지 말 걸 그랬다. 일을 그만둔 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능력 있는 엄마로 재수할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다 잊고 잠시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유학은 어떠냐고 허세를 부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제 와서 내 꿈을 찾았다고, 책을 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부풀어 있던 내가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두 아들의 경제적 뒷바라지를 다 맡길 수가 없다. 내가 당장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내 꿈이 저만치 물러났다. 아들보다 내 꿈을 가까이 당길 수가 없다. 엄마이면서 꿈을 좇아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막상 '네 꿈이야? 네 아들이야?' 라며 대놓고 빨리 선택하라니 당황스럽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운 주말이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어렵게 말을 꺼내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 큰아들을 생각해서 어른인 내가 힘을 내야한다. 우리 큰아들의 장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찾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면 분명히 우리 가족 모두가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도 했다. 오늘의 위기가 내일의 기회가 될 것을 믿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엄마의 에너지가 필요한 날이다.




수능을 망친 아들과 엄마는···


생각보다 괜찮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빨리 안정을 찾았다. 나는 아들의 밥을 덜 걱정하게 되었고, 아들은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오기도 하고 잠도 실컷 잔다. 수능을 망쳤다고 했을 때 잠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절망하기에는 아들의 인생이 너무 길다. 잠깐 소나기가 와서 옷이 젖었다가 금방 날이 개어서 반짝이는 햇살에 옷을 말리고 있는 기분이다.


큰아들은 미술 학원 특강 대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한두 달 머리를 식히는 셈 치고 몸 쓰는 일을 해 보라고 권했다. 바로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 엄마가 꽤 맘에 든 눈치다. 힘든 고깃집도 해 보겠다고 한다. 시험 망쳤다고 어깨 처져 있는 꼴은 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빨리 맘을 정하고 미련을 버리니 나도 아들도 마음이 편해졌다.


남편은 아들 통장으로 용돈을 넣어줬단다. 나에게 금액을 말하지 않는 걸로 봐서 꽤 두둑하게 준 모양이다. 굳이 얼마 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아빠의 배려에 여유가 생긴 큰아들은 가족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한보따리 사 오기도 했다. 요즘 큰아들은 잘 웃고, 안방에 건너와 식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능을 망친 큰아들은 재수를 하기로 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 학과가 더욱 분명해졌단다. 그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련이 많이 남는다고,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재수의 과정이 아들과 나에게 힘든 시간일 거라는 걱정도 되고, 재수한다고 결과가 꼭 좋을 거라는 확신도 없지만 아들의 고집과 결심을 따라가 주기로 했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의 아들이라면?' 아들보다 더 신나게 놀고 이 시간을 즐겼을 것 같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잘 놀고 잘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큰아들을 지켜보는 일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괜찮다. 수능을 망친 큰아들과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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