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동반자로, 사랑에서 연민으로
함께 20년을 살았다
가벼운 삶을 살고자 했던 여자와 무거운 삶을 묵묵히 견뎌내던 남자가 만났다.
주변에선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롭고 싶었던 여자는 자신의 방황을 기다려준, 표정없던 남자와 결혼했다.
둘은 가난했지만 몸은 건강했고 다행히 착한 사람들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작은 방에서 남자의 부모, 동생과 기꺼이 한 가족이 되었다.
그 작은 방에 식구가 하나 더 생겼다.
넓은 집으로 옮겨 가기 전 어머니가 갑자기 떠나셨다.
아버지는 작은 집에 홀로 남고 남자와 여자는 네 식구가 되어 큰 집으로 옮겼다.
남자에게서 여자의 마음이 멀어진 틈에 아버지도 떠났다.
네 식구는 결국 작은 방이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20년의 세월 속엔 이별과 만남이 있었다.
공식처럼 이별은 슬펐고 만남은 기뻤다.
그 시간동안 여자는 단 한 번도 가벼울 수 없었다.
결혼이란, 가족이란 한없이 무겁기만 한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에겐 그 무게를 견뎌낼 만한 나이테가 생겼다.
날개 달린 옷을 감추는 대신 변함없는 산처럼 여자의 손을 잡아 준 남자 덕분이다.
표정 없던 남자는 사는 동안 웃음도 말도 많아졌다.
서로를 지켜보며 울고 웃었던 20년.
철없던 여자와 서툴렀던 남자가 중년이 되었다.
사람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란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우리 부부의 결혼 20주년을 찡한 맘으로 축하한다.
2018년 11월 8일 결혼 기념일 새벽에...
우리 부부는 따로 잔다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 가끔 남편이, 더 가끔 둘째아들이 내 옆에 이불을 깔고 잘 때도 있지만 주로 혼자 잔다. 언제부터인가 방에서 잠을 자는 게 답답해졌다. 처음엔 내가 함께 자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서 남편이 서운해하면 어쩌나 신경쓰였는데 남편도 이제는 나의 갱년기 증세거니 생각하는 것 같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부는 반드시 한 방에서 자야한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싸우지 않는 이상 부부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게 정상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다. 아주 가끔이라도 남편의 팔베개를 베고 자면 우리가 아주 금슬 좋은 부부라는 걸 증명한 것처럼 흐뭇하기도 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갱년기라는 게 내게도 올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수시로 더웠다 추웠다 하고 갑자기 정수리부터 땀이 솟기도 한다. 한낮에 거울을 보면 볼터치가 필요없을 정도로 볼이 붉어져 있기도 했다. 밤에는 한 두 번씩 잠에서 깨고 쉽게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 날이 밝기도 했다. 숙면을 하지 못하니 몸이 항상 피곤하다. 예전처럼 하루에 여러 가지 일정을 소화하는 게 이제는 버겁다.
달라진 내 몸을 인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시 그럴 뿐이라고, 다른 사람은 그렇다 해도 나만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며 내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평소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었으니 갱년기라는 것도 나를 비껴 갈 거라고 정말 굳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도저히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 몸은 더 약해지고 예상하지 못했던 병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 예전 같지 않은 나의 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엄마를 챙기듯 약해진 내 몸을 보살피며 함께 사는 수밖에 없다. 본인이 암이라는 것을 밝히신 이어령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암과의 투병이 아니라 친병을 하신다고. 나도 나이 들어가는 내 몸과 친하게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남편도 나도 따로 자는 게 편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가슴으로 인정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한 방에서 자지 않아도 부부 관계는 더 좋을 수 있고, 한 이불을 덮고 자지 않아서 각자 하루의 마무리가 자유롭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먹는 저녁을 건강한 식단으로 차려 볼 생각이다. 잠은 따로 자도 밥을 함께 먹으니 우리 부부는 분명 식구다. 서로의 약해진 몸을 인정하고 사이좋게 노년을 맞이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괜찮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주용아"
새벽녘 잠깐 잠에서 깬 남편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내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가슴이 철렁했다. 한참을 대답도 못 하고 그냥 누워 있는데 남편도 내 이름만 불러놓고 그 다음 말이 없다.
"왜...?"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두려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듣긴 들어야 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럼!'하고 밝은 목소리로 명쾌하게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선뜻 그렇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불안한 마음을 나라도 위로하고 진정시켜 주면 좋겠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괜찮은 길로 가고 있는 건지… 남편과 나,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어제 친구를 만나 과음한 남편에게 누룽지 한 그릇 끓여주고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우리 그냥 웃으며 삽시다!"하고 노인네처럼 말해 버렸다.
함께 산 지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연애하고 결혼할 때 남편과 나는 지금의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편안한 중년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긴 살았는데 뿌듯함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다.
나이는 먹었고 체력은 달리고 가진 건 별로 없다. 그래도 가족이 재산이고 큰힘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가끔은 가족이 짐이고 부담이다. 남편도 내 맘 같겠지. 어깨가 처진 남편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안쓰럽다.
"우리 앞으로도 잘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