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며 힘이 되었던 책과 영화

책『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와 영화 <케빈에 대하여>

by 유쾌한 주용씨

고등학생 큰아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고등학생 큰아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반가울 리 없다. 역시나… 큰아들이 반 친구와 전자 담배를 피우다 적발됐단다. 다음날 선도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으며 나는 문제아의 엄마로 아주 작은 몸이 돼버렸다.


『톰 소여의 모험』의 톰과 허클베리 핀을 생각했다. 해적이 되겠다고 집을 나간 두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부분을 읽으며 그들의 자유로움이 규율에 얽매인 삶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큰아들이 친구와 전자담배를 피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다.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쳐 온 학원 강사로서의 경험이 날 비교적 쿨한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많은 책에서 읽은 좋은 부모, 바람직한 교육에 대한 가르침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녀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난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래도 좀 기운이 빠졌다. 이 감정이 뭘까 생각해보니 큰아들에 대한 서운함인 것 같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No라는 말 대신 Yes로 마음을 열었던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나 하는 섭섭함, 앞으로 난 어떤 엄마여야 하나 하는 답답함으로 한숨이 나왔다.


서점으로 갔다. 다른 엄마들 얘기를 좀 읽고 싶었다. 아들을 둔 다른 엄마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떻게 해결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늘도 책에서 위안을 얻고 지혜를 구한다. 평소 같으면 읽지 않을 책을 자식 때문에 집어 들게 된다. 제목부터 무시무시하다. 내 자식이 가해자라니... 학교에서 담배 핀 일로 적발된 아이의 엄마가 읽기엔 좀 쎈 것 같지만 이런 엄마의 마음은 도대체 어떨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책까지 쓸 수 있는지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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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1999년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2명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미국 콜럼바인(Colombine) 고등학교에서 평소 '트렌치코트 마피아'라 자칭했던 에릭과 딜런 두 학생이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발생 16년 후 딜런의 엄마는 가장 고통스러운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썼다.


어느 날 갑자기 악마, 괴물이 되어버린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함께 밥 먹고, 엄마를 향해 웃던 아들이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욱 놀라운 건 엄마가 기억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는 것이다.


10대 청소년이 살인마가 되었다면 그건 사이코패스나 조현병 그리고 열악한 집안 환경, 부모의 학대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이 바탕이 됐을 거라 흔히들 추측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다. 적어도 나의 가족이, 나의 아이가 이런 사건의 가해자가 될 리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딜런은 그 나이 남자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딜런의 엄마는 나보다 더 조심스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었다. 약자를 위해 봉사하고 이웃에게 친절한,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아들이 사람들을 해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오래 전부터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단다.


두려웠다. 딜런의 엄마가 기억하는 아이에게서 내 두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두 아들 때문에 고민스럽고 힘들 때면 남편과 함께 그래도 우리 집은 비교적 괜찮은 환경이라고,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말썽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거라며 위안을 삼았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딜런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말한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면 어땠을까?'를 수도 없이 생각했다.


또다시, 내 삶이 산산이 부서졌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딜런의 불타는 분노와 죽고자 하는 의지를 끝없이 생각한다. 딜런은 우리에게,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감정이 없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쓴다.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든 신에게 분노한다.

-1999년 10월 일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p.225


엄마는 한동안 아들이 순간적인 충동이었거나 약물에 의한 행동이었거나 함께 한 에릭이라는 친구의 조정에 의한 것이었거나 아무튼 스스로 선택한, 계획범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철저히 계획된 범죄라는 증거가 된 비디오를 눈으로 확인하고 엄마는 조각조각 부서졌다. 와르르 무너졌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로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분노를 엄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두려움에 손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좋은 엄마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엄마라고 자부했던 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도무지 자신이 없어졌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굵직한 얘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끄집어내서 용기를 낸 엄마의 메시지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내 아이의 깊은 곳에 있는 것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어쩌면 지금 엄마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딜런의 엄마는 말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막막한 고통의 길을 통과한 엄마의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나와 다르지 않은 엄마의 고통을 느끼고, 자책에 공감하고, 조언에 귀 기울인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이라고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은 이제 버려야 할 듯하다. 자식의 속까지 내가 만들어낸 건 아니었다.

자식 겉 낳지, 속 낳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뒤 자살을 택한 아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는 없다. 아들을 사랑했던 기억 위에 아들에게 하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다. 감히 수 클리볼드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알 수 있다. 자식이 한 행동은 미워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큰아들 덕분에 '선도위원회' 첫 경험을 했다


나이 탓일까? 독서 덕분일까? 엄마이기 때문일까? 아들의 교내 흡연으로 선도위원회에 불려가면서도 난 담담했다. 고등학생 아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였고, 잘못에 대한 경험이 큰아들에게 성숙의 기회를 선물할 거라 믿었다.


선도위원회에 참석하기 전 대기실에서 전자 담배를 제공한 아들 친구와 그 어머니가 오셨다. 분위기가 어색해질세라 "아들들 덕분에 선도위원회라는 곳에도 와 보네요. 첫 경험이라 그런지 살짝 긴장되는데요? 하하하"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도위원회는 담임 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을 포함해 여섯 분이 참석하셨다. 아들과 나는 나란히 앉아 죄송스러움을 얼굴과 몸에 가득 담고 차례대로 진술을 해야 했다. 먼저 아들이 비교적 침착하게 당시의 상황과 반성의 뜻을 전했다. 혹시라도 아들이 긴장할까봐 오른손을 뻗어 아들의 다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으로 엄마의 진술. 아들의 잘못에 대한 부모로서의 송구함과 아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음을 담담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은 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내게 물으신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우리 아들에게 들려주는 말인 듯 평소 우리 큰아들에 대한 나의 믿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아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쇄신하는 기회를 삼을 것임을 어필했다.


선도위원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말문을 못 여는 아들에게 요즘 혹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는지, 아빠엄마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닌지 물었다.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라며, 그냥 호기심에 그랬던 것이고 이런 일로 학교까지 오게 해서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단다. 나는 앞으로도 잘못은 할 수 있다고, 엄마는 우리 아들이 잘못했을 때 거짓말이나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끝까지 쿨한 태도로 의연하게 일을 마무리한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남편이 함께 저녁 먹으며 소주 한 잔 하잔다. 고생 많았다고, 큰아들이 엄마에게 고마워 할 거라고 나를 토닥인다. 호스피스에 입원중인 아빠를 지켜보는 일로 하루하루 눈물을 달고 사는 아내가 아들 문제로 더 힘들어할까봐 걱정했었나보다. 남편의 위로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참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인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원치 않는 곳에서 고개를 숙여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당황할 순 없다. 센 주먹 한 번 맞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견딜 만하다. 그래서 나는 책이나 영화로 예방 접종을 한다.




엄마로 산다는 것! 영화 <케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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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1999년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2명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의《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기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가 되기 전 에바는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사랑의 결과로 임신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로서의 삶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했던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에바는 엄마가 되었다는 걱정과 불안 속에서 케빈을 키운다. 에바도 엄마는 처음이라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말썽꾸러기 케빈에게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케빈은 엄마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꼬마 케빈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엄마에게 말한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한테 익숙한 거야.


케빈의 애정 결핍은 엄청난 증오의 씨앗이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엄마의 평범한 양육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케빈의 엄마 에바는 참을성 많은, 꽤 괜찮은 엄마였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딜런 엄마처럼.


곰곰이 생각해본다. 케빈이 엄마에게 증오를 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에 매달리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을까? '네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어.'라고 무심히 던진 말이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걸까?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여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걸까? 엄마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낀 걸까? 선물을 사 주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도 있었는데 청소년기 케빈은 도대체 왜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케빈의 몸은 컸는데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작아 보이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소홀함을 꾸짖는 듯 보였다. 나도 오랫동안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두 아들의 준비물을 못 챙겨 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옷 치수를 자주 잊곤 했다. 그런 일들이 혹시 아들들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탓하기에 바쁘다.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내게 주어진 일이라고 여겼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연이고 운명이니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너뿐만 아니라 나도 행복하길 바랐다. 엄마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 '나'로서도 살아야 하니까.


'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너에게 물은 적이 없다. 겁이 났다. 내 아들로 태어나서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이 많았다고 말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 아들은 케빈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내가 케빈의 엄마가 되어보는 상상은 집어치우라고 나를 위로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모기 한두 마리가 단잠을 방해했다. 모기입도 비뚤어진다는 가을이라 물려도 크게 부풀어 오르지도 않고 심하게 가렵지도 않다. 문제는 얼굴 주변에서 '윙' 소리를 내며 약을 올린다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불을 켜고 모기를 잡고 개운하게 자거나 귀찮으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애써 잠을 청하거나.

엄마 에바는 불을 켜고 모기를 잡는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얼룩진 집을 청소하고 일도 시작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 케빈을 안는다. 끝까지 아이 곁을 지키는 건 결국 엄마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매일 두 아들 생각을 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은 후부터,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나서는 더욱 '아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전보다 깊게 생각한다. 전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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